식품전반

친환경의 역설…한국 식품업계 덮친 포장재 ‘그린플레이션’ 뇌관

곡산 2026. 6. 2. 07:37

친환경의 역설…한국 식품업계 덮친 포장재 ‘그린플레이션’ 뇌관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6.01 07:56

원료 구하기 어렵고 생산 단가 급등 제품가 인상으로 이어져
재생 페트 원료, 수급 불안정에 조달가격 올라
우유·두유·컵커피, 종이팩 전환도 원가 부담
탄산음료용 알루미늄캔은 1년 새 51% 폭등

친환경 포장재 도입을 강제하는 환경 규제가 역설적으로 원가 상승을 부추겨 식품 물가를 자극하는 ‘그린플레이션’ 현상이 국내 식품 업계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플라스틱 감축 정책에 따라 올해부터 재생 원료 사용이 의무화됐으나 인프라 미비로 원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데다, 대안으로 선택한 종이팩과 알루미늄캔마저 글로벌 공급망 마비로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여름철 음료 성수기를 앞둔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친환경 포장재 전환 압박이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그린플레이션’의 현실이 국내 식품 업계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정부의 규제 강화로 식품용 재생 페트(r-PET) 칩의 역프리미엄 구조가 심화하고 수입 펄프 가격이 고점을 지속하는 가운데, 알루미늄캔 수거 가격까지 1년 새 51% 폭등하면서 국내 식음료 업계의 원가 부담을 정면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다. (사진=생성형 AI Gemini)

포장재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Green)과 물가 상승(Inflation)의 합성어로, 환경 규제와 지속가능성 요구에 따라 친환경 포장재 생산 단가가 급등하고 이것이 전반적인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종이, 생분해성 필름 등 친환경 소재는 일반 소재 대비 생산 공정이 복잡해 공급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의 포장재 폐기물 규정(PPWR) 등 국제적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가 강화되고 재활용 의무 비율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고가의 포장재 전환 압박을 받아왔다. 이 같은 포장재 변경에 따른 막대한 추가 비용은 결국 완제품 가격에 반영돼 소비자의 구매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5월 현재 국내 식품 업계를 압박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식품용 재생 페트(r-PET) 원료의 수급 불안정이다. 올해부터 페트 음료병에 대한 재생 원료 사용 의무화가 본격 시행됐다. 그러나 정작 음료 업계가 즉각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고순도 원료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까다로운 위생 기준과 타 산업군과의 원료 확보 경쟁이 맞물린 결과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에 맞춰 식품 용기로 재활용하려면 투명 페트병을 분쇄·세척한 뒤 고온·고진공 상태에서 정제하는 ‘물리적 재활용(A-PET)’ 공정을 거쳐야 하므로 진입 장벽이 높다. 더욱이 국내에서 수거되는 고품질 투명 페트병 원료를 두고 음료 용기 시장뿐 아니라 친환경 의류용 폴리에스터 섬유 및 시트 자재 시장에서도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원료 공급 병목 현상이 심화됐다.

순환자원정보센터의 재활용가능자원 가격조사에 따르면 r-PET의 기초 원료가 되는 무색 페트 플레이크의 국내 평균 가격은 지난해 6월 1kg당 1077.2원에서 올해 5월 현재 1117.4원까지 치솟았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기준 음료병 제조에 쓰이는 신재 페트(Virgin PET) 칩의 톤당 평균 수입 가격이 올해 들어 901달러 선으로 다시 급등한 가운데, 식약처 인증을 통과한 식품용 r-PET 칩의 최종 조달 단가는 신재 가격 대비 40% 안팎의 압도적인 웃돈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색 페트 플레이크 자체 가격에 선별 인건비와 고온 정제 공정 물류비가 추가로 누적되면서 재생 원료가 일반 신재 가격을 상회하는 그린플레이션 구조가 청구서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국내의 낙후된 분리배출 인프라 환경 역시 원가 부담을 더하는 요인이다. 아파트 등 일부 공동주택을 제외하면 일반 수거 현장에서는 여전히 투명 페트병이 유색 페트병이나 이물질과 혼합 배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선별장에서 식품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순도 원료만 다시 골라내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신재보다 단가 부담이 큰 재생 원료 조달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라고 토로했다.

플라스틱 규제와 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우유, 두유, 컵커피 용기를 종이팩(멸균팩)으로 전환한 국내 기업들 역시 또 다른 원가 부담에 직면했다. 국내 음료 팩 제조에 필수적인 친환경 인증(FSC 등) 목재 펄프는 상당 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수입되는 표백 침엽수 펄프의 톤당 평균 통관 가격은 2024년 788달러에서 2025년 798달러로 치솟은 데 이어 올해도 727달러 선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대안으로 꼽히는 미표백 활엽수 펄프 역시 2024년 692달러, 2025년 674달러 선으로 톤당 600달러대 후반을 지속해서 기록해 업계의 부담을 키웠다.

탄산음료와 최근 급성장한 RTD(Ready-to-Drink) 하이볼의 필수 포장재인 알루미늄 캔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순환자원정보센터 기준 국내 알루미늄캔 희망 수거 가격은 지난해 6월 1kg당 2430.9원에서 올해 5월 현재 3672.7원으로 1년 새 무려 51% 가까이 폭등했다. 글로벌 원석 가공과 해상 운송 차질에 국내 수거 단가 폭등까지 연쇄 타격을 주면서 국산 음료 용기의 납품 단가 변동성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았다.

업계 전문가는 “단기적인 물류 악재와 친환경 규제라는 거시적 변수가 해결되지 않는 한 식품 패키징 시장의 불안정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패키징 원가 상승 압박이 장기화될 경우 결국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 물가를 자극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