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유에 분유 가미, 균일한 맛·적정 가격 위한 고육책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4.30 07:54
고가의 국산 원유 사용하면 1000~2000원대 불가능…영양 차이도 없어
분유 재고 심화 속 수입산 무관세로 유업계 생존 위협
시장 수요 반영 없는 의무 매입 부담…예산 지원 필요
매입가 국제 수준 맞추거나 가공용엔 연동제 폐지를
가변적 쿼터제·시장 친화적 수급 시스템 도입 절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된 ‘가공유 원유 함량’ 논란에 대해 유업계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소비자들이 ‘가짜 우유’라고 비판하는 ‘원유 0% 가공유’는 사실상 국산 원유의 경직된 가격 구조와 2026년 ‘수입 우유 무관세’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탄생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유업계는 일부 가공유에 원유 대신 탈지분유나 유청분말을 사용하는 것이 품질 저하나 소비자 기만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한다. 원유를 가루 형태로 만든 분유는 보관이 용이해 수급 조절에 유리해 단순히 원가를 낮추기 위한 목적뿐 아니라, 제품의 ‘균일한 맛’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공정이며 단백질과 칼슘 등 핵심 영양소 면에서도 원유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원유는 계절에 따라 수급량은 물론 유지방 함량 등 맛의 편차가 발생해 분유의 역할이 중요하다. 분유는 보관이 용이하고 성분이 일정해 제품이 일관된 풍미를 내는 데 기여한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원유는 생산량이 계절에 따라 들쑥날쑥하지만 수요는 일정치 않아 남는 물량을 분유로 만들어 보관해야 한다”며 “이 재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제품의 맛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분유를 사용하는 것이지, 결코 인공적인 성분으로 만든 가짜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유업계가 수입 원재료 비중을 조절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국산 원유의 높은 원가’가 있다. 한국의 원유 가격은 생산비 연동제 등의 영향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 왔다. 반면 올해인 2026년부터는 미국산 우유에 대한 관세가 0%로 철폐됐으며, 유럽산 역시 무관세로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현재 원유 가격은 우유 생산비 변동분의 10% 내외를 반영해 결정된다. 유업계는 이 공식에 ‘시장 수요’를 직접적인 변수로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소비가 줄어들면 원유 가격 인상을 억제하거나 하락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비뿐만 아니라 유제품 재고량, 수입 제품 점유율, 가계 소비 동향 등을 가격 결정 공식에 명문화해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값싼 수입 멸균우유와 분유가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고가의 국산 원유만을 고집하는 것은 유업체에 ‘동반 자살’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모든 가공유에 비싼 국산 탈지분유를 사용하면 현재의 1000~2000원대 가격 유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유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고통은 수요와 상관없이 낙농가의 생산 물량을 무조건 사줘야 하는 ‘의무 매입 구조’에 있다. 우유 소비가 해마다 급감하며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유업체는 쿼터제에 묶여 남는 원유를 전량 매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결국 팔리지 않는 원유를 비싼 값에 사서 다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분유로 건조해 비축하는 만성적 재고 적자가 유업계의 생존을 위협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유업계는 무관세 수입 우유에 대응하기 위해 시장 수요에 맞춰 매입 물량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가변적 쿼터제’와 ‘시장 친화적 수급 시스템’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선 국산 원유가 남는데도 수입산 분유를 사용하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유업계는 이를 ‘이윤 추구’가 아닌 ‘가격 방어’를 위한 절박한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실제로 국산 원유를 건조해 만든 탈지분유는 네덜란드나 미국산 수입 분유에 비해 가격이 3~4배가량 높게 형성돼 있다. 2026년 무관세 시대를 맞아 수입 멸균우유와의 가격 경쟁이 생존의 핵심이 된 상황에서 대중적인 가공유는 수입 원료를 통해 소비자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이원화 전략이 불가피하다.
유업계 관계자는 “국산 원유 잉여분을 탈지분유로 만들어 비축하는 것은 맞지만, 이 ‘비싼 재고’를 저가형 가공유에 투입하면 회사는 팔 때마다 적자를 보는 구조가 된다”며 “결국 국산 분유는 단가가 맞는 제과·제빵 등 B2B(기업 간 거래)나 고가 기능성 유제품에 주로 투입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2023년부터 도입한 ‘용도별 차등가격제’로 음용유와 가공유의 가격을 분리한 것은 진전이지만, 업계는 여전히 보완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가공용 원유 가격이 음용유보다 낮게 책정됐다 하더라도 관세가 철폐된 수입산 유제품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싼 원재료’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정부 보조금을 확대해 유업체의 실질 매입가를 국제 가격 수준으로 맞추거나, 가공용 원유에 한해 생산비 연동제를 폐지하고 국제 시세와 연동하는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한 유업계 관계자는 “정부 예산이 현장의 생산 물량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현행 가격 체계가 시장의 논리로 지탱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정부 보조금 없이는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에서 기업에만 국산 원유 소비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유업체가 분유를 섞는 것은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하기 위한 경영 판단의 결과”라며 “낙농 산업의 공멸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에만 책임을 전가할 게 아니라 글로벌 기준에 맞는 구조 혁신과 실질적인 예산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유업계는 수입산 공세에 맞서 국산 원유의 신선함을 강조한 프리미엄 가공유 라인업을 확대하는 등 시장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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