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열전

[더 헤리티지 50+] ①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곡산 2026. 4. 28. 07:54

[더 헤리티지 50+] ①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오진주입력 2026. 2. 3. 05:20
'단지우유'의 감성...지구촌 홀렸다

'단지우유'의 감성...지구촌 홀렸다

[대한경제=오진주 기자]지난해까지 ‘불닭볶음면’은 80억개 팔렸다. 전 세계인이 한 번씩 맛본 셈이다. 이 숫자는 한국의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하나의 문화로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흐름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K컬처는 대부분 새로운 얼굴이 아니다. 우리가 오래 전부터 입고 먹고 사용했던 것들이 시대의 언어를 입고 다시 전 세계에서 읽히고 있다. 김밥처럼 일상 속 음식부터 특정 세대의 추억으로 남은 브랜드까지 우리의 생활이 해외 마트 매대에 올라가고 있다.

지금의 열풍이 가능한 건 수십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빠른 변화보다는 브랜드 철학에 대한 기준을 먼저 세워왔기 때문이다. 이 느린 시간은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로 읽힌다. K컬처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하나의 글로벌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이런 시간이 필수다. 유행은 빠르게 사라지지만, 오랜 시간 지켜온 기준은 새로운 시대와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이들이 왜 사라지지 않고 지금의 ‘K컬처의 힘’이 됐는지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따라간다. <편집자>

1970년대 우유소비 권장 계기

김종희 회장, 고심 끝에 탄생

달항아리서 영감 얻은 '단지형'

상표권 등록...고유 정체성 확립

국내 바나나우유 시장 80% 장악

2004년 美 수출...30여國 판매

중국선 SNS 인증샷 열풍 일으켜

메로나맛ㆍ고구마맛 등 잇단 도전

'단지, 용기' 에디션...소통 강화도

어린 시절, 주말이면 ‘목욕탕 가자’는 엄마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엄마의 거친 때밀이를 견디고 나면 달달한 바나나맛 우유가 보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목욕을 끝낸 뒤 나른하게 나무 평상 위에 앉아 먹던 바나나맛 우유. 한국인만 공감하던 그 감성을 이제는 중국인도 미국인도 찾고 있다.

지난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인천공항에 위치한 한 편의점 매대가 바나나맛 우유로 가득 찬 모습이다.

지난 2004년 미국에 처음 수출한 바나나맛 우유는 현재 중국, 필리핀, 캐나다 등 30여개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선 바나나맛 우유가 가공유 시장을 개척했다. 바나나맛 우유가 중국에 처음 들어간 2008년만 해도 중국은 가공유 제품이 거의 없던 때였다.

이에 빙그레는 제품을 6개월로 유통기한을 늘린 멸균팩 포장으로 바꿔 노출 빈도를 최대한 높이는 데 집중했다.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편의점 위주로 입점시킨 결과 주문량이 급격히 늘었고 결국 생산설비를 늘리기까지 다.

중국에서의 성공엔 철저한 준비가 있다. 관광객들이 찾는 마트와 관광지에 중국어로 ‘한국의 1등 바나나맛 우유’라는 광고글을 노출했고, 중국인들은 마시는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바나나맛 우유는 가이드북에 ‘꼭 먹어봐야 할 한국음식’으로 소개됐다. 수출량이 늘자 빙그레는 2014년 상하이에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유통기한을 확보한 오리지널 바나나맛 우유를 선보였다.

 
'K-헤리티지 아트전' 전시회에 바나나맛 우유 용기의 모티브가 된 달 항아리가 전시돼 있다./사진=빙그레

한국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제품이 된 바나나맛 우유의 탄생에는 ‘결핍’이 있다.

1970년대 정부는 영양 보충을 위해 국민들에게 우유 소비를 적극 장려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곡물과 발효 중심의 식문화를 갖고 있던 우리에게 흰 우유는 낯선 존재였다. 게다가 낙농산업 기반도 취약했다.

한국화약그룹(현 한화) 창업주인 김종희 회장은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국민이 우유를 자연스럽게 마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연구 끝에 고급 과일이었던 바나나를 우유에 넣는 데 성공했고, 맛과 영양을 동시에 잡았다. 현재 바나나맛 우유는 바나나 우유 시장에서 8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루 평균 약 100만개 이상 팔리고 있다.

바나나맛 우유가 지금도 사랑받는 건 독특한 모양의 용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지 우유’라는 애칭이 생긴 이유다.

용기 개발 당시 개발자들은 제품이 고급인 만큼 기존 비닐팩이나 유리병과는 차별화한 용기를 고민했다. 그래서 고안한 게 폴리스티렌을 이용한 지금의 용기다.

모양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외형을 찾던 중 개발팀이 우연히 찾은 도자기 박람회에서 본 전통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배불뚝이 모양이 탄생했다.

모양만 특별한 게 아니다. 용기가 약간 기울더라도 내용물이 흐르지 않도록 입구 부분에 턱을 만들고, 바나나 원물의 노란색을 살리기 위해 반투명으로 제작했다.

실제 달항아리 용기는 사출이나 압착 방식이 아닌 분리된 상ㆍ하컵을 접합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용기에 비해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더 든다. 하지만 빙그레는 이 모양을 고집하고 있다. 용기 설비 제조사도 없어진 지금 달항아리 용기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빙그레뿐이다. 빙그레는 2016년 용기 모양을 상표권으로 등록했다.

메로나맛 우유 제품./사진=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오래됐다고 해서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2023년에는 신제품 ‘메로나맛 우유’를 출시했다. ‘메로나’와 만난 메로나맛 우유는 소비자들의 요청에 의해 탄생했다. 78%의 높은 원유 함량으로 부드러운 맛을 구현하고, 멀티팩 패키지에는 빙그레우스 인기 캐릭터인 ‘옹떼 메로나 부르쟝’을 삽입해 재미를 더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한정판 ‘고구마맛 우유’도 내놨다. 이듬해에는 ‘투게더’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투게더맛 우유’도 출시했다.

바나나맛 우유의 5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단지, 용기’ 에디션은 제품명 위치에 ‘단지 00할 용기’라는 문구를 넣어 소비자가 원하는 단어를 자유롭게 적을 수 있도록 만든 소통형 제품이다. 작년에는 ‘바나나맛 우유 무가당’을 출시하며 건강한 즐거움을 찾는 소비자들에게도 다가갔다.

빙그레 관계자는 “바나나맛 우유는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테디셀러로 1위를 지키고 있다”며 “소비자에게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브랜드로 다가가기 위해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