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4.14 07:52
분유 재고 2배 증가 속 외국산 공세로 삼중고
신선우유와 가격차 줄어 국산 소비 증가 가능성
서울우유 등 멸균 라인업 패키징 다변화 움직임
아셉틱·페트 등으로 원가 절감…고부가 제품 강화
국내 주요 유가공 및 식음료 업체들이 주로 사용하는 글로벌 포장재 기업 테트라팩(Tetra Pak)의 가격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유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으나, 업계 내부에서는 글로벌 원가 압박을 견디지 못한 테트라팩이 조만간 공급가를 조정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되며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현재 매일유업의 ‘매일우유’ ‘상하목장 유기농 우유’ ‘매일두유’를 비롯해 서울우유협동조합의 ‘서울우유 멸균 흰우유’, 남양유업의 ‘초코에몽’ ‘맛있는우유GT 멸균우유’ 등 상온 보관이 필요한 유제품 대다수가 테트라팩을 사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연세유업, 롯데웰푸드, 빙그레, 동원F&B, hy는 물론 무균 포장 두유를 대량 생산하는 정식품(‘베지밀’)까지 다수의 기업이 테트라팩의 핵심 파트너사로 멸균 제품을 생산 중인 만큼 포장재 단가 상승은 식음료 시장 전반의 연쇄적인 가격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테트라팩이 공급가 인상을 단행하게 된 주된 이유는 원가 압박과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우선 테트라팩 멸균팩을 구성하는 펄프, 폴리에틸렌, 알루미늄 등 핵심 원자재의 글로벌 시세가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여기에 지정학적 갈등과 인플레이션 여파로 공장 가동에 필요한 에너지 비용이 급등했으며, 전 세계 각국으로 포장재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상 운임 등 물류비 역시 크게 올랐다.
환경 규제 대응 비용도 큰 몫을 차지했다. 플라스틱 및 일회용 포장재 폐기물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종이 기반 보호층 개발 등 막대한 ESG 연구개발(R&D) 투자를 진행 중이며, 각국 정부가 부과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EPR) 분담금이나 탄소 배출 관련 세금이 증가한 것 역시 제조 원가를 끌어올리는 주된 배경이 됐다.
테트라팩 발(發) 원가 상승은 가뜩이나 소비 침체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국내 유업계에 치명타로 작용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잉여 원유의 지표가 되는 분유 재고량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상반기인 2025년 6월 기준 ‘서울우유’ ‘남양유업’ ‘매일유업’ 등 주요 유업체의 분유 재고량은 총 1만3001톤으로 전년 동월(7135톤) 대비 82.2%나 급증했으며, 특히 업계 1위인 서울우유의 재고량은 1710톤에서 4173톤으로 1년 새 두 배 이상 폭증해 위기감을 키웠다.
같은 기간 유가공협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후에도 적체 현상은 고착화돼 2025년 12월 기준 전체 분유 재고량 7098톤 중 절대다수인 6858톤이 여전히 장기 보관을 위한 탈지분유 형태로 무기한 쌓였다. 이는 시중에 소비되지 못한 잉여 원유가 갈 곳을 잃고 분유로 가공돼 고스란히 창고에 적체돼 있음을 의미한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분유 재고가 포화 상태임에도 1615톤 규모의 수입산 분유 실적이 집계되는 등 원유 수급 불균형이 더욱 심화됐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저출산 기조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와 저렴한 수입산 테트라팩 멸균우유의 공세에 있다. 소비되지 못한 원유가 고스란히 창고에 분유로 쌓이는 상황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원유 수급 불균형이 한계에 달해 다각적인 소비 촉진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포장재 가격 인상은 유가공업계의 지각변동을 가속할 것으로 분석된다. 먼저 국내 시장을 잠식해 온 폴란드, 호주 등 수입산 멸균우유 역시 원가 부담에 직격탄을 맞아 ‘초저가’ 매력이 퇴색될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국산 신선우유와 수입산 간의 가격 격차가 줄어들어 국산 우유 소비가 일부 회복될 여지가 마련됐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국내 유업체들 역시 멸균팩 라인업을 적극적으로 선봬 온 만큼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간 남아도는 잉여 원유를 장기 보관이 가능한 멸균우유나 가공유로 가공해 재고 부담을 덜어왔으나, 포장재 비용이 급증하면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된다. 원가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불황 속에서 유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테트라팩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탈피하려는 유업계의 패키징 다변화 움직임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우유협동조합, 연세유업, 정식품 등 주요 유업체 및 식음료 기업들은 기존 멸균 제품 라인업에 스위스 SIG 콤비블록 등을 적극 도입해 강력한 대안으로 활용 중이다. 특정 기업에 집중된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고, 멸균팩 시장 내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고부가가치 유제품을 겨냥한 프리미엄 무균 충전(Aseptic) 페트(PET) 설비 투자도 가속하고 있다. 초기 투자 비용은 높지만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어 동원그룹, 매일유업, 빙그레 등은 자사의 프리미엄 유음료 및 커피 브랜드에 아셉틱 공법을 선제적으로 적용 중이다. 삼양패키징 등 위탁생산(OEM) 전문 업체의 지원까지 더해져 원가 절감과 프리미엄 가치를 동시에 충족하려는 차세대 패키징 전환은 유업계의 핵심 생존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전 세계적인 ESG 경영 기조에 발맞춰 독자적인 종이팩이나 친환경 포장재를 직접 연구해 원가 절감에 나서는 업체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한 포장재 교체를 넘어 제품 포트폴리오 재편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 멸균 흰 우유의 마진율이 하락하면서 유업계는 단백질 음료, 특수 영양식, 고가 디저트 등 포장재 원가를 상쇄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 멸균 흰 우유의 마진율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단백질 음료, 특수 영양식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역량을 집중해 종합 식품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며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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