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전반

‘술 피하는 사회’…음주 패러다임 NOLO 대전환

곡산 2026. 1. 22. 07:15

 

‘술 피하는 사회’…음주 패러다임 NOLO 대전환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1.21 07:55

소맥 1만2000원, 가격 저항선 돌파로 발길 뚝…MZ세대는 1차 종료
저도주·제로 슈거 소주 선방…비알코올 맥주 즐겨
“양보다 질” 추세 맞춰 증류주 등 웰니스 라인업 강화
내수 한계 세계화로 돌파…소주 ‘월드 스피릿’ 육성
 

대한민국 퇴근길의 상징이었던 ‘소맥(소주+맥주)’ 문화가 저물고 있다. ‘소맥 1만2000원’ 시대라는 가격 저항선 돌파와 건강 인식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치면서 국내외 주류 시장은 단순한 불황을 넘어선 ‘구조적 침체’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주류 공급망의 최전선에서는 이미 철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유흥 채널(식당·주점)의 수요 급감에 따라 수익성이 낮은 ‘클라우드’와 ‘크러시’ 생맥주 제품의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대신 업계는 단순 제조를 넘어 위스키 베이스의 칵테일 캔 등 취향 기반의 ‘초개인화 웰니스 주류’ 라인업을 강화하며 소비자의 세분화된 니즈를 공략하고 있다.

 
소맥 1.2만 원 시대의 가격 저항과 건강 인식 변화로 내수 상권 붕괴와 글로벌 시장 위축이 가속화돼 주류 산업이 전례 없는 구조적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영토 확장과 초개인화·웰니스 제품을 대거 선봬며 단순 제조를 넘어선 “토털 베버리지” 기업으로의 대전환을 통해 생존 전략을 재편해 나가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믹솔로지(Mixology)’ 트렌드에 발맞춘 제품들이 대표적이다. 롯데칠성음료가 선보인 ‘순하리 레몬진’처럼 소비자 취향을 저격한 RTD 제품들이 편의점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이와 동시에 하이트진로는 ‘일품진로’ 등 고부가가치 프리미엄 증류주 라인업을 세분화하고 오크통 숙성 원액을 활용한 한정판 제품을 출시하는 등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소비층을 정교하게 파고들고 있다.

 

현장의 고통은 수치로 증명된다. 서울시 상권 분석 서비스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대비 2025년 3분기 서울 외식 업체 감소분(4400곳) 중 약 51%(2257곳)가 ‘호프’ 및 ‘간이주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내 주점은 2년 새 약 12%가 문을 닫았으며, 호프집(-12%, 1만8000곳→1만6000곳으로 급감)의 감소세는 치킨집(-10%, 6500곳→5800곳)이나 커피 전문점(-3%)보다 가팔랐다.

 

이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회식을 ‘노동’으로 간주하는 문화가 확산되며 1차에서 일정을 종료하는 경향이 짙어진 영향이다. 이로 인해 노래방(10년 새 30% 감소)과 숙박·여행업(-12%), 분식집(-8%) 등이 연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대기업들은 판관비 절감 등을 통해 수익성을 방어하며, 올해 1분기 국내 매출이 10% 감소했음에도 영업이익은 12% 증가하는 등 자영업 현장과는 상반된 지표를 기록하며 비정한 양극화를 보여줬다.

 

위기는 국경을 가리지 않았다. 2025년 미국 성인 음주율은 54%로 9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적당한 음주도 해롭다”고 믿는 비중은 53%에 달해 사상 최초로 과반을 넘어섰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가 알코올을 석면과 같은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이후, 주류 산업은 과거 담배 산업이 겪었던 쇠퇴기인 ‘술의 담배화(Tobacco-fication)’ 경로에 본격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이 여파로 글로벌 주요 50개 주류 기업의 시가총액이 최근 4년 사이 평균 46% 감소해 약 1200조원(8300억 달러)이 증발했다. 또한 세계 최대 주류 기업인 디아지오(Diageo)를 포함해 페르노리카, 레미 꾸앵트로 등의 주가가 고점 대비 40~70% 폭락하기도.

 

이에 국내 기업들은 내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글로벌 영토 확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24년 소주 수출액은 처음으로 2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하이트진로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베트남 타이빈성에 첫 해외 생산 공장을 건립하며 소주를 ‘월드 스피릿(World Spirit)’으로 육성 중이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2028년 해외 매출 비중 45% 달성을 목표로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오비맥주 또한 모기업 AB인베브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현지 맞춤형 K-맥주 수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주종 선호도의 변화는 업계의 체질 개선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과거 맥주와 와인을 즐기던 ‘라이트 드링크(Light Drinker)’들이 건강 인식 변화로 대거 이탈하면서 맥주·와인 선호도는 급락한 반면 증류주 비중은 상대적으로 유지되는 양극화가 나타났다.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취하지 않는 즐거움’에 주목, NOLO(No/Low Alcohol) 트렌드 대응도 필수가 됐다. 롯데칠성음료의 제로 슈거 소주 ‘새로’는 출시 3년 만에 7억 병 판매를 돌파했고, 하이트진로는 ‘진로 제로슈거’와 저도주 ‘진로 골드’로 시장을 방어하고 있다. 오비맥주 또한 비알코올 맥주인 ‘카스 0.0’의 유흥 채널 입점을 대폭 확대하며 의식적 금주를 실천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세대를 끌어들이고 있다.

 

주류 업계는 현재의 위기를 단순한 불황이 아닌 ‘음주 패러다임의 근본적 이동’으로 진단하고 있다. 한 주류업계 전문가는 “소비자가 더 이상 술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앞으로 주류 기업들은 알코올 도수를 높여 판매량을 늘리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무알코올과 기능성 원료를 결합한 ‘토털 베버리지(Total Beverage)’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해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향후 주류 시장의 전망에 대해서는 ‘양극화’와 ‘초개인화’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는 “내수 시장에서는 건강을 중시하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의식적 금주)’ 세대를 겨냥한 고품질 NOLO(무알코올) 제품이 필수재가 될 것이며, 동시에 위스키나 프리미엄 증류주처럼 경험의 가치를 중시하는 시장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결국 국내 시장의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K-푸드 열풍과 연계한 공격적인 글로벌 현지화 전략이 주류 기업들의 향후 10년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