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09.22 07:52
수출 애로 해소 위해 아시아권 규격 조화 필요
미국 수출, 캘리포니 아‘Prop 65’ 광범위한 규제 주의를
FDA보다 엄격…납 등 경고 라벨 없는 제품 소송 남발
식약처, 각국 규제 환경 대응 위한 ‘글로벌 해썹’ 소개
최고 안전기준 통합 152개 항목…내년 하반기 본격 추진
K-푸드가 전 세계인의 식탁을 사로잡고 있는 가운데 그 눈부신 성공 뒤에 가려진 성장통과 미래를 위한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6일 열린 ‘HACCP KOREA 2025‘ 정책 포럼은 K-푸드 세계화의 선봉에 선 기업의 성공 전략을 조명하고, 미국 등 주요 시장의 보이지 않는 규제 장벽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진단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혁신적인 식품안전 시스템을 제시하며 K-푸드의 지속 가능한 미래 청사진을 그렸다.

특히 세계 시장의 강화되는 비관세 장벽과 이에 맞서 국내 식품안전관리 시스템을 국제 표준에 맞게 고도화하는 전략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이날 포럼은 K-푸드가 세계 시장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맛과 품질을 넘어 글로벌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엄격한 '안전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임을 분명히 했다. 강화되는 규제를 '글로벌 해썹'이라는 혁신으로 극복하려는 민관의 노력이 K-푸드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CJ제일제당 박정윤 글로벌 브랜드팀장은 ‘비비고’의 성공 전략을 통해 K-푸드 세계화의 성공 방정식을 제시했다. 비비고의 전략은 영리한 제품 선택에서부터 시작됐다. 박 팀장은 “만두는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중국의 딤섬처럼 세계 여러 문화권에 유사한 형태가 존재해 현지화가 용이하면서도, ‘한국식 만두’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차별화가 가능한 품목”이라고 설명했다.
비비고는 ‘왕교자’를 시작으로 까다로운 국내 시장에서 R&D 기술력을 검증한 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갔다. 특히 미국에서는 냉동식품 기업 ‘슈완스’를 인수해 현지 유통망을 단숨에 확보했으며, 현재는 전 세계 17개의 생산 거점을 통해 56개국 이상에 100가지가 넘는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탄탄한 기반 위에 비비고는 K-컬처를 활용한 전방위적 ‘문화 마케팅’을 펼쳤다. 비비고의 마케팅은 스포츠(골프·농구)와 K-콘텐츠 및 K-팝을 중심으로, 소비자들이 K-푸드를 ‘문화’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LA 레이커스와의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농구 팬들에게 브랜드를 각인시켰고, ‘사내맞선’ ‘눈물의 여왕’ 등 인기 K-드라마에 제품을 자연스럽게 노출시켜 친숙함을 높였다. 또 2013년부터 KCON·MAMA와 같은 대표 K-POP 페스티벌을 꾸준히 후원하며 K-POP 팬덤을 적극 공략했다.
하지만 비비고와 같은 성공 사례 뒤에는 여전히 많은 K-푸드 수출 기업이 넘어야 할 현실적인 장벽들이 존재한다. 박 팀장은 국가별로 상이한 식품 규정과 복잡한 통관 절차 등 ‘비관세 장벽‘을 K-푸드 수출 확대의 주요 애로사항으로 지적하며, 국가간 규격 불일치로 인한 수출 애로 해소를 위한 아시아권 식품 기준 규격 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위생증명서 등 수출 증명서류와 관련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위생증명서 자동발급 시스템’ 구축과 같은 제도적 지원을 요청했다.
UL Solutions의 이기란 과장은 “다른 것은 잊더라도 미국에 가려면 ‘캘리포니아 Proposition 65’는 알고 가야 한다는 한 문장만은 기억해달라”고 운을 떼며 K-푸드의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의 규제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경영 리스크가 됐음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경고했다.
이 과장에 따르면 Prop 65는 식품은 물론 의류, 가구, 전자기기 등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되는 거의 모든 제품에 적용되는 광범위한 규제다. 특히 미국 연방식품의약국(FDA)의 기준을 통과했더라도 Prop 65의 기준은 더 엄격해 FDA와 주법의 기준치가 다른 납(Lead)과 같은 물질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 민간 고발자, 일명 ‘바운티 헌터’다. 이들은 경고 라벨이 없는 제품을 구매해 유해 물질 시험을 진행한 뒤 기준치를 초과하는 물질이 검출되면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이러한 소송이 급증하면서 단순한 규제 준수를 넘어 기업의 재정과 브랜드 이미지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이 됐음을 그는 지적했다.
실제로 2024년 한 해에만 관련 소송이 1382건에 달했으며, 기업들이 지불한 총비용은 약 1억 298만 달러(한화 약 1400억 원)에 달했다. 특히 전체 소송의 1순위는 납(Lead), 2순위는 프탈레이트계 물질(DEHP)이었으며, 식품에서는 납, 카드뮴, 튀긴 음식에서 나오는 아크릴아마이드가 주로 문제가 됐다. 그는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의 근본적인 전략 변화가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이 과장은 “문제가 터진 뒤에 수습하는 수동적 대응으로는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다”며 “정확한 규제 분석, 선제적인 라벨 및 문서화, 전문가와의 적극적인 협력, 그리고 전사적인 내부 역량 강화라는 네 가지 축의 사전 예방적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정애 과장은 복잡해지는 글로벌 규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핵심 카드로 새롭게 도입되는 ‘글로벌 해썹(Global HACCP)’ 제도를 상세히 소개했다.
‘글로벌 해썹‘은 기존 해썹 제도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심화시킨 버전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관리의 범위와 깊이에 있다. 기존 해썹이 생산 과정에서의 ‘비의도적’ 위해요소 관리에 중점을 뒀다면, 글로벌 해썹은 테러나 경제적 이득을 위한 사기 같은 ‘의도적’ 위해요소까지 관리 대상에 포함한다. 이를 위해 평가 항목은 기존 80개에서 식품 방어·사기 요인 관리, 식품안전 경영 및 문화 등이 포함된 72개 항목이 추가돼 총 152개로 늘어난다.
마 과장은 ‘글로벌 해썹’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국제 통용성’이라고 강조했다. 이 제도는 특정 기준 하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식품안전 기준들을 모두 아우르는 ‘합집합(Union Set)’ 형태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의 최신 지침 △미국 식품안전현대화법(FSMA) 등 미국·호주법이 규제하는 ‘의도적 오염 관리(식품 방어)’ △국제식품안전협회(GFSI)가 요구하는 인증 규격(FSSC 22000 등)의 핵심 요소를 모두 반영했다.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정부는 식품 방어·사기 계획 수립을 돕는 전산 시스템을 개발·보급하고, 영업자 대상 전문 교육 과정을 개설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기존 HACCP 인증 업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특히 이미 GFSI 규격 인증을 받은 업체는 서류심사만으로 등록이 가능하도록 절차를 간소화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GFSI의 동등성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26년 하반기 민관 추진단을 구성하고 2027년부터 평가를 신청할 예정이며, 승인까지는 약 3~5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마정애 과장은 “글로벌 해썹 제도는 단순히 규제를 따르는 것을 넘어 우리 K-푸드가 세계 시장에서 ‘안전’과 ‘신뢰’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할 핵심적인 발판이 될 것”이라며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이 새로운 기준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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