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09.08 07:55
상반기 물량 2만6650톤…작년비 45% 급증
대형 마트 등 유럽서 직도입 가격 경쟁력 높여
내년 관세 철폐 앞두고 시장 선점 마케팅 강화
2025년 국내 유제품 시장이 미묘한 기류에 휩싸였다. 원유(原乳) 가격은 동결되며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의 급한 불은 껐지만,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전반적인 생활 물가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다. 국산 우유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하는 사이, 그 빈틈을 파고든 저렴한 수입 멸균우유가 무서운 기세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올해 국산 유제품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원유 가격 동결로 인한 가격 안정세다. 특히 흰 우유는 대부분의 제조사가 출고가를 동결했으며, 일부 유통 채널에서는 할인 행사까지 더해져 작년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경우도 생겼다.
아이스크림과 딸기·초코우유 등 가공유 역시 대부분 작년과 비슷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원유 외에 설탕, 과즙 등 부재료 가격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이들 제품군은 올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가격 보합세가 유지되는 모습이다. 반면 치즈와 버터 등 고부가가치 제품군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가공 방식이 복잡하고, 최근 자연치즈를 중심으로 고급화·다양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프리미엄 제품은 가격이 소폭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국산 유제품 가격의 안정세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압박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식비, 교통비 등 다른 생활 물가가 치솟자 소비자들은 유제품처럼 '필수가 아닌 품목'부터 소비를 줄이거나 더 저렴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수입 멸균우유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멸균우유 수입량은 2만6654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같은 기간(1만8370톤)보다 무려 45.1%나 급증했다. 이는 단순히 수입량이 늘어난 것을 넘어 국내 우유 시장의 지형을 뒤흔들 만한 압도적인 물량이다.
이러한 수입 멸균우유의 공습 배경에는 세 가지 주요 요인이 있다. 첫째, 소비자들의 '가성비' 선호 심화다.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은 이제 국산 우유의 절반 가격에 불과한 수입 멸균우유를 일시적인 대안이 아닌 주된 선택지로 고려하고 있다.
둘째, 유통업계의 공격적인 직소싱 확대다. 대형마트, 이커머스 등 주요 유통사들이 폴란드, 독일 등 현지 유업체와 직접 계약을 통해 중간 유통 마진을 없애면서 가격 경쟁력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실제로 편의점 CU는 2024년 1월 편의점 업계 최초로 폴란드 최대 유업체 중 하나인 '믈레코비타'의 1L 멸균우유를 직접 소싱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브랜드 우유 대비 최대 46% 저렴한 가격(2100원, 행사가 1800원)에 판매하며 ‘반값 우유’로 큰 화제를 모았고, 초도 물량 15만 개가 3주 만에 완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롯데마트도 2024년 2월부터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폴란드에서 직소싱한 '오늘좋은 1등급 멸균우유'를 1L에 19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였다.
셋째, 2026년 ‘관세 완전 철폐’에 대한 기대감이다. 내년부터 유럽연합(EU)과 미국산 유제품 관세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앞두고 미리 현지 유업체와 대규모 직소싱 계약을 체결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수입업체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미리 물량을 늘리고 마케팅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수입량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수입·유통업체들은 단순히 2026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관세가 남아있는 2025년부터 이미 막대한 마케팅 및 물류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수입 멸균우유 유통사들은 2025년 들어 개인 카페나 중소형 프랜차이즈를 대상으로 “6개월간 우유 무상 공급”과 같은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할인 행사를 넘어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자사 제품의 맛과 운영 시스템에 익숙해지게 해 미래 시장을 선점하려는 수입 유통사들의 매우 공격적인 영업 전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결국 ‘원유 가격 동결’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업계는 소비 심리 위축과 수입 제품 공세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셈이다.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와 거세지는 수입 유제품의 도전에 맞서 국내 업계가 어떤 생존 전략을 펼쳐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 유업계 관계자는 “가격만으로는 수입산 공세를 막아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서도 “착유 후 2~3일 내 유통되는 국산 우유의 ‘신선함’과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 및 안전성은 수입 멸균우유가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입맛에 맞춰 기능성 프리미엄 제품, A2 우유 등 고부가가치 신제품 개발에 R&D 역량을 집중해 품질로 승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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