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전반

회생 위한 홈플러스 ‘초저가 할인’ 전략…식품업계엔 약 VS 독?

곡산 2025. 6. 5. 06:53
회생 위한 홈플러스 ‘초저가 할인’ 전략…식품업계엔 약 VS 독?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06.04 07:52

판촉 넘어 현금 확보 위한 생존 전략
다른 유통업체 가격할인 유도 출혈 경쟁 심해질 수도
납품업체 단가 인하 압력 작용 땐 수익성 악화 우려
협력사와의 상생 전제돼야…일부 업체는 거래 중단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한 이래로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전례 없는 대규모 할인행사를 연이어 펼치고 있다. 지난 2월 말부터 ‘홈플런’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파격적인 할인 공세는 이미 다섯 차례나 연달아 진행되며, 업계에서는 이를 홈플러스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사실상의 유일한 전략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기업회생 중인 홈플러스가 현금 확보를 위해 초저가 할인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홈플러스는 매출 증가와 협력사 관계 개선을 주장하지만, 식품업계는 납품업체 부담 전가, 출혈 경쟁 심화, 일부 납품 중단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전략이 회생을 위한 '약'이 될지, 산업 생태계에 부담을 주는 '독'이 될지는 납품업체와의 상생 노력과 유통업계 전반의 공정 경쟁 의지에 달렸다는 평가다. (사진=홈플러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4일 기업회생을 신청한 후 매일 들어오는 현금으로 상거래 채권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창립 28주년 기념 할인행사인 ‘홈플런 이즈백(2월 28일~ 3월 12일)’ ‘앵콜! 홈플런 이즈 백(3월 13~16일)’ ‘창립 홈플런 성원 보답 고객 감사제(3월 27일~4월 2일)’ ‘힘내자! 홈플러스(4월 10~16일)’ ‘홈플 MEGA 골든 위크(5월 1일~7일)’ 등 대규모 할인행사를 연이어 개최했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주차별 행사를 지속할 것을 예고했다. 현금 창출을 위해 사실상 상시 할인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

 

홈플러스가 대규모 할인행사를 이어가는 표면적인 이유는 ‘고물가 시대 고객 부담 경감’과 ‘매출 증대’다. 회생절차 중인 홈플러스에게 이러한 할인행사는 단순한 판촉을 넘어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풀이된다. 고객 유입을 통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며 ‘국민 생활 기반 시설’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초저가 할인 전략이 장기화될 경우 다른 유통업체들의 경쟁적인 가격할인으로 이어져 출혈 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홈플러스가 할인행사들을 진행하는 기간에 이마트, 롯데마트 등 주요 경쟁사들 역시 유사한 규모의 할인행사나 테마 프로모션으로 맞대응하며 치열한 고객 유치 경쟁을 벌였다. 쿠팡, G마켓, 11번가 등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도 이 기간에 ‘빅스마일데이(G마켓)’ ‘가정의 달 특별 기획전’ 등 대규모 온라인 할인행사를 진행했다.

 

이러한 유통업체들의 ‘할인행사 릴레이’는 결국 식품 제조업체나 농가 등 납품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원가 부담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된 할인 경쟁은 식품 제조업체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연구개발(R&D)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제품의 질 하락이나 다양성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대형 유통업체의 할인행사 시 비용 분담 구조는 계약 조건, 상품의 특성, 행사 규모 및 성격, 그리고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의 협상력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유통업체가 자체 마진을 줄여 비용을 부담하기도 하고, 납품업체가 특정 상품에 대한 공급가를 일시적으로 낮추거나 판매 장려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참여하기도 하며, 양측이 비용을 분담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홈플러스가 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상황임을 고려할 때 할인행사를 통한 매출 증대 및 현금 흐름 확보는 중요할 수 있으나, 이것이 납품업체에 과도한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협력사와의 관계 및 공급망 안정성 유지를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대형 유통채널의 대규모 할인행사는 단기적으로는 판매량 증가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행사 비용 부담이 납품업체에 전가되는 경우가 많아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특히 원부자재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단가 인하 압박은 중소 납품업체들의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켜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산업 생태계의 건강성까지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회생 과정에서 현금 흐름 개선과 시장 경쟁력 유지를 위해 할인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납품업체와의 상생이 전제돼야 한다. 일방적인 비용 전가는 결국 공급망의 질을 저하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유통업체는 할인행사의 재원을 자체 마진 축소, 운영 효율화 등을 통해 최대한 내부적으로 흡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정부 차원에서도 대규모유통업법 등을 통해 불공정 거래 관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러한 할인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부담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것이 납품업체의 과도한 희생으로 이어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우수 중소 식품업체의 경쟁력 약화, 상품 공급 불안정, 품질 저하 등의 부작용으로 되돌아와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결국 홈플러스의 할인 전략이 회생을 위한 성공적인 자구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소비자 물가 안정에도 기여하는 ‘약’이 될지, 아니면 식품 산업 생태계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독’이 될지는 향후 홈플러스의 경영 정상화 노력과 더불어 유통업계 전반의 상생협력 의지에 달려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소상공인 상거래채권 상환을 우선적으로 상환해 협력사의 신뢰를 회복하고 납품이 안정화되면서 두 달이 지난 지금 모든 부분에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할인행사 역시 협력사와의 긴밀한 협의를 바탕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상생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재 홈플러스는 회생절차 개시 이후 협력사 상품대금 지급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으며, 협력사의 신뢰를 회복하고 납품이 안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일부턴 서울우유 등 대기업들의 납품이 재개되면서 상품 공급 이슈가 대부분 해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일 기준 2675개 협력사 중 대기업을 제외한 2407개사(약 90%)에 회생채권 지급을 완료했다. 대기업 협력사 대금은 6월부터 분할 상환 예정이다.

 

더욱이 할인행사를 통해 매출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앞으로의 유동성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지난 3월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던 지난해 3월과 유사한 수준의 실적을 냈으며, 4월에도 이러한 추세를 이어갔다고 밝혔다. 특히 온라인 부문은 4월 말 기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는 등 선전하고 있다고 홈플러스 측은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품 중단 사례도 속속 발표되고 있는 실정이다. 빙그레는 거래 조건 협의 중 이견이 있다는 이유로 지난 24일부터 홈플러스에 납품을 중단했다. 매일유업도 최근 재고 문제 등으로 홈플러스에 일부 냉장 제품을 공급하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는 해당 업체들과 거래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