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열전

[결정적 한끗]①오징어땅콩, 새우깡을 잡아라

곡산 2023. 1. 18. 08:06

[결정적 한끗]①오징어땅콩, 새우깡을 잡아라

  • 정재웅 기자 polipsycho@bizwatch.co.kr
  • 2021.12.08(수) 07:30

71년 새우깡으로 '해물 스낵' 시대 열려
4년간 연구 끝에 출시…새우깡 '대항마'
최초 '볼' 타입 과자…익숙한 맛으로 인기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해물맛' 스낵의 등장

사실 '오징어땅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징어와 땅콩의 조합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제겐 그다지 맛있는 조합이 아니어서입니다. 사람마다 입맛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징어와 땅콩의 조합은 맥주 안주로, 시간 때우기용으로 오랜 기간 사랑받아왔던 것을 생각하면 제 입맛이 좀 특이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징어와 땅콩의 조합을 이해할 수 없는 제게 오징어땅콩이라는 스낵이 와닿았을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제 입맛과는 상관없이 오징어와 땅콩은 사실 찰떡 궁합입니다. 오징어에는 타우린 성분이 많습니다. 타우린은 알코올 성분 분해에 도움이 되고 술 냄새와 숙취해소 등에 효과적입니다. 대신 마른 오징어는 생오징어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것이 단점이죠. 이 단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 바로 땅콩입니다. 역시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1971년 농심이 '새우깡'을 출시하면서 국내 스낵 시장에도 '해물 스낵' 시대가 열렸다. / 사진=농심

우리에게 친숙한 오징어땅콩은 1976년에 처음 출시된 제품입니다. 생각보다 오래됐죠. 70년대는 국내 제과 업계에 변곡점이 된 시기입니다. 그 기폭제는 농심이 1971년 출시한 '새우깡'이었습니다. 새우깡은 국내 최초로 해물을 사용한 스낵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국내 제과 업계에서는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을 활용한 스낵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새우깡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해물맛 스낵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새우깡의 등장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스낵 선택의 폭도 훨씬 넓어졌습니다. 농심은 새우깡을 발판으로 라면은 물론 스낵 부문에서도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반면 새우깡의 등장은 기존 제과 업체들에게는 큰 위협이었습니다. 특히 국내 제과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동양제과(현 오리온)에게 새우깡의 등장은 달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징어'로 맞서다

새우깡 출시에 위기감을 느낀 동양제과는 즉시 대항마 마련에 골몰하기 시작합니다. 1972년 오리온은 신제품 개발에 착수합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새우깡을 잡기 위해서는 같은 해물을 사용한 스낵이 필요했습니다. 그대로 뒀다가는 새우깡에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잠식당할 수도 있었기에 동양제과는 개발을 서두릅니다.

 

동양제과는 다양한 해물을 베이스로 테스트를 거듭합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서민들의 안주로 인기인 오징어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고심끝에 오징어를 활용한 스낵을 만들기로 결정한 동양제과는 ‘오징어 스낵 개발반’을 신설합니다. 더불어 오징어 스낵 개발에 사활을 겁니다. 하루라도 빨리 신제품을 내놔야 새우깡의 독주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76년 출시 당시 TV광고 속의 '오징어땅콩'. 동양제과(현 오리온)는 4년간의 연구 끝에 '오징어땅콩'을 출시해 새우깡과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 사진=한국광고총연합회 광고정보센터 오징어땅콩 광고 영상 캡처.

하지만 오징어만으로는 새우깡에 대항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동양제과는 오징어와 어울릴만한 다른 재료를 찾습니다. 그것이 바로 땅콩이었습니다. 오징어와 땅콩은 서민들이 가장 쉽게 접하고 흔히 찾는 술안주였습니다. 익숙한 맛이기에 이 맛을 스낵으로 구현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봤습니다. 동양제과는 이후 오징어와 땅콩을 주제로 많은 실험을 진행합니다. 

동양제과의 전사적인 지원과 오랜 연구 끝에 마침내 1976년 '오징어땅콩'이 탄생합니다. 신제품을 준비한지 4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공을 들인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오징어땅콩은 출시와 동시에 큰 인기를 끕니다. 대표 술안주였던 오징어와 땅콩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어린이와 젊은 층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동양제과의 효자 품목이 됩니다. 

 

남달랐다

오징어땅콩이 큰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과자의 모양이 종전의 스낵들과 달랐다는 점입니다. 오징어땅콩은 국내 최초 '볼(ball)'형태의 스낵입니다. 한입에 쏙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더불어 오징어와 땅콩이라는 익숙한 맛을 제대로 구현해냈습니다. 여기에는 동양제과만의 기술력이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오징어포를 활용하고 땅콩의 품질 확보에도 많은 공을 들이면서 오징어땅콩은 새우깡과 견줄만한 국내 대표 해물맛 스낵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과 더불어 마케팅도 기존의 다른 제품과 다른 방향을 선택합니다. 주 타깃을 젊은 층으로 정하고 대대적인 TV 광고에 나섭니다. 모델도 당시 하이틴 스타였던 이덕화 씨를 앞세웠습니다.

 동양제과는 오징어땅콩 TV광고 모델로 당시 하이틴 스타였던 이덕화 씨를 앞세워 젊은 층을 적극 공략했다. / 사진=한국광고총연합회 광고정보센터 오징어땅콩 광고 영상 캡처.

맛과 마케팅에서 소비자의 니즈를 제대로 저격하면서 오징어땅콩의 판매량은 꾸준히 상승합니다. 출시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징어땅콩은 초코파이와 더불어 오리온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오리온이 오징어땅콩과 관련해 특별한 광고 등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소비자들이 수십 년간 꾸준히 찾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징어땅콩의 성공을 지켜본 경쟁사들도 잇따라 유사 상품을 선보입니다. 제과업계에서 '미투 상품'은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원조의 벽을 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징어땅콩은 특히 더 그랬습니다. 많은 업체들이 오징어땅콩의 맛과 모양을 모방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소비자들이 그 차이를 제일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오징어땅콩은 그렇게 46년간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냅니다.

[결정적 한끗]②'용띠' 오징어땅콩, 용(龍)된 사연

  • 이현석 기자 tryon@bizwatch.co.kr
  • 2021.12.08(수) 14:00

한국인 '취향 저격'해 제품 기획
맛·형태 차별화로 경쟁력 확보
2000년대 들어 '젊은 이미지' 전환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제과 시장에는 '이무기'가 많습니다. 매년 수많은 신제품들이 '용(龍)'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혁신적인 제품들도 제법 많습니다. 이무기가 천 년 동안 물 속에서 수행하듯 오랫동안 개발된 제품도 눈에 띄고요. 하지만 대부분이 출시 초반 반짝 인기를 끈 후 사라지곤 합니다. 사람들의 입맛이 빠르게 바뀌고,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 많아서입니다.

그래서 오징어땅콩은 더 특별합니다. 오징어땅콩은 4년간의 수련을 거쳐 1976년 '용띠' 해에 태어났습니다. 이후로는 아시다시피 말 그대로 제과 시장의 용이 됐습니다. 성장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178억원이었던 연매출은 10년 뒤 300억원이 됐습니다. 지난해에는 500억원을 넘겼죠. 제과업계에서 대박의 기준은 연매출 120억원입니다. 오징어땅콩이 내 온 성과가 '넘사벽'인 이유입니다.

 

춘추전국 돌파한 '이름의 힘'과 '기술'

오징어땅콩은 어떻게 용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징어땅콩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국내 최초의 양산 과자는 1945년 해태가 출시한 '연양갱'입니다. 해태는 이듬해 최초의 국산 사탕인 '해태캬라멜'도 내놓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국내 과자 시장에는 이렇다 할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다양한 제조사가 비슷한 '시장 과자'를 내놓는 구조였죠. 오리온의 전신인 동양제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황은 1970년대부터 바뀝니다. 경제개발 5개년 1차 계획이 완료되자 국민 생활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자연스럽게 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과자 붐'이 일었죠. 선두주자는 롯데(현 농심)였습니다. 1971년 롯데가 선보인 '새우깡'은 엄청난 인기를 끕니다. 많은 기업들이 '브랜드의 힘'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새우깡은 또 다른 화두도 던집니다. '성분'을 제품명에 내세우는 '각인 효과'입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브랜드 과자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였던 오리온은 새우깡의 네이밍 전략에 주목합니다. 새롭게 개발 중이었던 제품명에 이를 그대로 도입하죠. 초코파이와 오징어땅콩의 이름이 이렇게 지어졌습니다. 이 두 제품은 출시 전까지 국내에 비슷한 제품이 없었던 '완전한 신제품'이었습니니다. 때문에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직관적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상품의 특징을 오롯이 담은 이름은 이 두 브랜드의 '연착륙'을 이끌게 됩니다.

물론 성공 비결이 이름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리온은 오징어땅콩 개발에 4년을 투자했습니다. 사내에 '맛튀김 개발팀'과 '오징어 스낵 개발팀'을 신설해 전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맛튀김 개발팀은 신제품을 출시에 실패하면서 해체됩니다. 반면 오징어 스낵 개발팀은 땅콩 위에 반죽을 두른 후 구워내는 '이중구조' 개발에 성공합니다. 오리온은 이를 통해 오징어땅콩에 새로운 식감과 형태을 담아냈습니다.

 

'근본'이 만든 '대박'

오징어땅콩의 초반 성공에는 광고도 한 몫을 했습니다. 특히 당시 막 보급되기 시작한 TV를 활용한 광고가 대히트를 칩니다. 오리온은 이덕화 씨를 첫 모델로 기용합니다. 지금은 근엄한 '왕'의 이미지인 이덕화 씨는 당시까지만 해도 신인급 하이틴 스타였죠. 높은 품질의 제품에, 화려한 마케팅까지 펼쳐졌으니 성공은 당연했습니다. 오징어땅콩은 1980년 오리온 총 매출의 14.7%를 차지하는 '효자 상품'으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오징어땅콩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식품 시장에는 단기 히트작, 이른바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가 많습니다. 오징어땅콩의 성공 비결은 제품 그 자체에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형태로, 시장의 니즈를 완벽히 파악해 만들어낸 제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오징어땅콩은 출시 당시 콘셉트부터 국내 시장에 최적화된 제품이었습니다.

 오징어에 대한 내용을 담은 문종 실록(좌)과 땅콩에 대한 내용을 담은 1966년 매일경제 기사. /출처=국사편찬위원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한국인의 수산물 사랑은 오래됐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수산 시장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오징어는 한국, 중국, 일본의 '소울 수산물'이었습니다. 중국 사신이 조선에 오징어를 진상품으로 원할 정도였으니까요. 조선 말기부터는 울릉도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며 서민층에도 오징어가 널리 퍼집니다. 근현대 들어 맥주와 말린 오징어의 맛이 '찰떡궁합'임이 발견되면서 최고의 술안주로 자리잡습니다.

땅콩은 근현대 시기부터 각광받기 시작합니다. 1930년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예전에는 부럼으로 밤·호두를 까먹었지만 근래에는 낙화생(땅콩)을 많이 먹는다"고 적었습니다. 다만 1970년대 이전까지는 '별미'였습니다. 출하 시기에 따라 가격 변동이 심해 주로 어른들의 술안주로 소비됐죠. 오징어땅콩은 이 둘을 합친 제품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지극히 익숙한 맛의 조합입니다. '근본'이 만든 '대박'인 셈입니다.

 

반백살 오징어땅콩, '젊은 제품'이 되다

오징어땅콩은 1990년대 들어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경제 상황이 급격히 좋아지면서 프리미엄 과자 시장이 먼저 흔들립니다. 높은 품질과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보유한 외국산 제품이 범람하죠. 2000년대 들어서는 제조 공정이 발전하며 기성 브랜드의 '미투 제품'도 쏟아집니다. 이 탓에 술집에서 '짝퉁' 오징어땅콩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에 오리온은 오징어땅콩의 포지션을 '일상 스낵'으로 전환합니다..

 

오리온은 2004년 배우 이동건 씨를 새 광고 모델로 내보냅니다. 당시 이 씨는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광고는 '심심 프리(Free)'를 슬로건으로 삼았습니다. '심심풀이' 오징어땅콩에 '자유'를 보탰습니다. '윙크'를 하거나 '돼지코'를 닮은 무늬로 유머러스함도 살렸습니다. 오리온은 이 광고로 오징어땅콩의 이미지를 맥주 안주 혹은 고속도로 과자였던 것에서 젊고 친숙하게 바꿔냅니다.

 오징어땅콩의 '장수'에는 시의적절한 '광고'도 한 몫을 담당했습니다. /사진=오리온

'정통성' 강조 작업도 이어졌습니다. 오리온은 2006년 '30년 진품' 광고를 선보입니다. 이에 발맞춰 패키지도 리뉴얼했습니다. 당시 오리온은 패키지에 'Since 1976'이라는 글자를 넣어 역사를 강조했습니다. 후면에는 제조 공정을 삽입해 '차별화된 기술력'을 어필했죠. 디자인도 바뀝니다. 전면에 바다를 연상시키는 파도 이미지와 오징어를 큼직하게 넣어 소비자들에게 '원조'가 누구인지 각인시켰습니다. 이런 마케팅을 통해 오징어땅콩은 정통성을 지켜냅니다.

이렇게 오징어땅콩은 반백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역사'를 만들어왔습니다. 화려하게 등장해 친근하게 자리잡았고 지금까지도 맥주를 마시거나 축구 경기를 볼 때 즐겨 먹는 스낵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제품이 됐죠. 아마 우리 아이들 역시 오징어땅콩을 접하며 자라날 겁니다. 덕분에 똑같은 제품을 사이에 두고 '공감'을 쌓을 수 있게 되겠죠. 다음 [결정적 한끗]에서는 이 오징어땅콩 맛의 비밀에 대해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결정적 한끗]③오징어땅콩 맛의 비밀은 '28'

  • 나원식 기자 setisoul@bizwatch.co.kr
  • 2021.12.09(목) 06:30

바삭한 식감 위해 반죽 28번 코팅
'땅콩'이 핵심…품질 관리에 심혈
겉면은 '소금 양념'…'새우액기스'도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오징어, 땅콩이 왔어요~

이 말을 듣고 추억이 떠오르면 '아재'라고 합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기차 여행을 하다 보면 간식을 판매하시는 분이 이 말을 외치며 다니셨습니다. '오징어, 땅콩이 왔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출출해집니다. 한 봉지 사서 여행 내내 '심심풀이'로 즐기기에 딱이었습니다. 짭짤하면서 쫄깃한 오징어와 고소하면서 아삭한 땅콩. 이 둘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입니다.

이처럼 오징어와 땅콩은 우리의 오랜 간식거리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간식이나 술안주로 빠지지 않는 메뉴이기도 합니다. 주로 어른들의 맥주 안주로 여겨지곤 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한번 쯤은 맛봤을 그런 조합입니다.

 오리온 직원들이 완성된 오징어땅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오리온 제공.

오리온 오징어땅콩은 이런 '전통의(?)' 간식을 스낵으로 만든 제품입니다. 모조(模造)는 원조(元祖)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하죠. 하지만 이제 '오징어땅콩'은 원조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인지도가 있는 제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징어땅콩'이라고 하면 흔히 오리온의 과자를 떠올릴 정도니까요.

그렇다면 과연 오징어땅콩은 어떤 매력으로 '원조'를 따라잡을 수 있었을까요. 단순히 오징어와 땅콩을 섞어 놓기만 했다면 굳이 사람들이 따로 찾지는 않았을 텐데요. 오징어땅콩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맛을 '재창조'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28번'의 바삭함을 입히다

오징어땅콩 맛의 핵심은 '땅콩'입니다. 사실 오징어땅콩은 과자 이름도 '오징어'가 먼저인 데다가 포장에도 '오징어'가 더 크게 쓰여 있는데요. 그런데 땅콩이 핵심이라니 무슨 말이냐고요? 일단 맛부터 그렇습니다. 오리온에 따르면 오징어땅콩에서 맛을 좌우하는 것은 땅콩입니다. 그래서 땅콩의 품질과 맛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징어땅콩의 제조 공정 역시 땅콩이 '중심'이 됩니다. 오징어땅콩의 제조는 우선 땅콩을 과자의 가운데에 두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흔히 오징어땅콩은 반죽에 땅콩을 담그어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바삭한 과자 껍질이 땅콩을 감싼 식으로만 보여서죠.

 반죽 코팅 횟수에 따른 오징어땅콩 크기 변화. /사진=오리온 제공.

하지만 그렇게 만들면 과자 원물이 울퉁불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울퉁불퉁하면 두께에 따라 식감도 천차만별이 됩니다. 반드시 땅콩이 '중심'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오징어땅콩은 땅콩에 얇은 반죽 옷을 여러 번 돌려 입히는 방식으로 만듭니다. 평균 28회 정도 코팅합니다.

땅콩은 아무래도 자연에서 수확하다 보니 크기가 일정하지 않는데요. 그래서 땅콩이 크면 27회, 작으면 29회가량 반죽을 입혀 과자의 크기를 일정하게 맞춥니다. 이렇게 여러 번 반죽을 입힌 뒤 구우면 오징어땅콩 내부에 특유의 독특한 그물망 구조가 만들어져 바삭한 식감을 냅니다.

 오리온 직원이 오징어땅콩에 넣을 오징어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오리온 제공.

그리고 마지막 반죽을 입히면서 드디어(?) 오징어를 붙입니다. 오징어 땅콩에는 0.2mm 이하의 아주 얇은 '오징어채'가 들어가는데요. 이를 껍질 겉면에 입혀 오징어의 짭짤한 맛을 강조합니다. 다만 오징어만으로는 해물 맛이 부족해 '새우액기스'를 더합니다. 오징어채는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 시각적으로도 즐거움을 줍니다.

오징어땅콩의 가장 큰 특징은 바삭한 식감입니다. 바삭한 과자를 씹은 뒤 아삭한 땅콩을 만나게 되는 묘미가 바로 원조 '오징어, 땅콩'과 가장 다른 점입니다. 그 비결은 땅콩을 가운데 두고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얇은 반죽을 28회 입히는 기술력이고요.

 

땅콩이 핵심…'품종'부터 달라

그렇다면 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땅콩'은 어떻게 관리할까요. 그냥 시중 땅콩을 구매해 넣으면 끝나는 일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오리온은 오징어땅콩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땅콩을 관리하는데 가장 공을 많이 들입니다.

오징어땅콩에 들어가는 '땅콩'은 우리가 흔히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종입니다. 국내에서 주로 생산되는 타원형의 땅콩은 '버지니아 품종'인데요. 오징어땅콩에는 원형 모양의 '스패니쉬' 타입이 쓰입니다. 타원형이 아닌 원형을 쓰는 이유는 균일한 식감과 맛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반죽을 그냥 덧대지 않고 얇게 펴서 입히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오징어땅콩의 핵심적인 원재료인 '땅콩'. /사진=오리온 제공.

땅콩은 중국산을 씁니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스패니쉬 타입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어서입니다. 오리온 내 '오징어땅콩팀'은 매년 중국을 방문합니다. 땅콩은 기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변질되기 쉽습니다. 이에 따라 기온이 낮은 중국 북부 지방 업체들과 공급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오리온 연구원들은 오징어땅콩에 들어가는 땅콩의 품질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땅콩이 함유한 기름의 평균을 측정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맛의 변질 정도를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땅콩은 주로 11월쯤 수확하는데요. 오리온은 수확 직후 1년치 땅콩을 한 번에 사들인 뒤 저온 창고에 보관해 관리합니다.

 

단단함에서 '가벼운 바삭함'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집니다. 하지만 오징어땅콩은 이런 법칙을 거스르며 꾸준한 인기를 끌어왔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오징어땅콩이 그동안 알게모르게 많은 변화를 지속해 시도해왔기 때문입니다.

 

오리온은 지난 2017년 오징어땅콩 '껍질'의 식감을 부드럽게 개선했습니다. 기존에는 다소 단단하면서 바삭한 식감이었다면, 이제는 씹기가 더 편한 식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오징어땅콩 특유의 그물망 조직을 줄여서 한 번에 쉽게 부서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곧장 눈치챈(?) 소비자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옛날보다 (그물망) 조직이 없어졌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리온은 '오징어땅콩'에 다양한 맛을 넣어 변화를 주려는 시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 사진=오리온

오리온은 또 '오징어땅콩' 브랜드로 매콤치즈맛이나 고추장마요맛, 마라맛, 고로케땅콩 등 다양한 맛의 제품을 출시해 왔습니다. 오징어땅콩에 변화를 줘서 소비자들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맛들이 여전히 원조인 오징어땅콩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 오리온의 고민이라고 하네요.

참! 여러분들이 모르셨을 또 하나의 사실을 알려드리자면 오징어땅콩의 겉면에는 별도의 양념(시즈닝)을 뿌리지 않습니다. '소금'으로만 간을 맞추는데요. 오징어와 땅콩에는 역시 소금이 가장 잘 어울리나 봅니다. 이런저런 시즈닝을 뿌려가며 변화를 시도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 오징어땅콩을 가장 많이 찾고 있습니다.

 

물론 변신을 포기하지는 않을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맛의 제품을 지속해 낼 거라는 데요. 그렇다면 앞으로 오징어땅콩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또 어떻게 맛을 유지하며 지금껏 쌓아 온 '명성'을 이어갈까요. 담당 연구원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오징어땅콩의 '맛'을 책임지고 있는 김준영 오리온 기술개발연구소 선임연구원입니다.

 

"땅콩과 은은한 해물 맛의 조화…바삭함 더해"

 김준영 오리온 기술개발연구소 선임연구원.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리온 기술개발연구소에 입사한 지 9년이 된 김준영 선임연구원입니다. 오징어땅콩은 지난 2017년부터 담당해왔고요. 생감자칩과 치킨팝, 땅콩강정 등을 맡고 있습니다. 주요 업무는 제품 품질 관리와 신제품 개발입니다.

 

-오징어땅콩만의 장점과 특징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고소한 땅콩이 가장 핵심입니다. 땅콩과 어울리는 은은한 해물 맛도 특징이고요. 얇은 반죽을 28회 코팅해 구운 바삭한 식감도 장점입니다.

 

-오징어땅콩하면 생각나는 게 바로 바삭한 식감입니다. 이를 위해 땅콩을 가운데에 두고 주변을 반죽으로 28번 굽는다고 하는데요. 굳이 28번을 굽는 이유가 있나요?

▲여러 번 반죽을 입히는 이유는 일단 바삭한 식감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더불어 땅콩을 가운데에 두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얇게 한겹 한겹 입혀주지 않고 한 번에 반죽으로 감싸면 땅콩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어 맛이 균일하지 않게 됩니다. 깨물었을 때 느낌이 매번 다르겠죠. 또 28번 코팅을 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제품이 완성된 뒤에 적정 크기가 만들어지는 횟수가 아닐까 합니다. 한입에 쏙 먹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오징어땅콩의 맛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요.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오징어땅콩을 맡은 뒤 식감 개선을 했는데요. 오징어땅콩에는 껍질 안에 '그물 조직'이 있습니다. 이 조직으로 단단한 식감이 되긴 하는데, 자칫하면 유리처럼 깨지고 단단한 식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조직 자체를 줄여서 한 번에 쉽게 부서지는 방식으로 개선을 했습니다. 그래서 과거 오징어땅콩이 '단단한 바삭함'이었다면. 지금은 '가벼운 바삭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식감이 바뀐 뒤에도 매출이 늘어난 걸 보면 소비자의 반응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땅콩을 가장 공들여 관리한다고 하는데, 노하우가 있나요.

▲땅콩 자체 원물에 대한 기준 가지고 있습니다. 땅콩에는 기름이 많은데요. 그러다 보니 변질을 방지하기 위해 기름의 평균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연구와 생산, 품질 담당 등 2~3명이 가서 땅콩을 고르는데요. 두세 군데 업체와 계약을 맺고 품질이나 가격을 확인해 할당량을 정하게 됩니다.

 

-오징어땅콩은 어떻게 먹어야 가장 맛있나요. 그리고 앞으로 계획도 소개해주세요.

▲오징어땅콩은 오리지널 그대로 맥주와 함께 먹는 게 가장 맛있는 것 같습니다. 오징어땅콩은 맛이 '단순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징어땅콩을 담당한 뒤 마라맛이나 고로케땅콩 등을 만들었는데, 아무리 해도 오리지널이 가장 맛있더라고요. 오징어땅콩에는 소금만 적용하는데, 소금이 땅콩의 맛을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땅콩에서 벗어나는 걸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품 제조 방식은 유지하되 과자 안의 땅콩에 변화를 주는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결정적 한끗]④오징어땅콩 성공 이끈 '마케팅 비법'

  • 이현석 기자 tryon@bizwatch.co.kr
  • 2021.12.09(목) 13:00

출시 직후 신인 배우 이덕화 씨 전면 배치
'익숙한 맛'으로 일상에 스며드는 전략 구사
미투 제품 봇물…'증산·마케팅'으로 대응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가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국가대표 축구 경기 중계를 볼 때 치킨을 주문하고 자기 전에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보는 것처럼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행동의 '규칙'은 대부분 정해져 있습니다. 축구를 볼 때 주문하는 치킨 브랜드는 정해져 있습니다. 침대에서 영상을 볼때 보는 유튜브도 거의 대동소이하죠.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한 답은 늘 한결같습니다. 그저 당연한 일이어서 입니다. 딱히 고민하지 않는 일이죠. 46년째 우리 곁에 있는 오징어땅콩도 마찬가지입니다. 맥주 안주로 과자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둥근 오징어땅콩을 허공에 던진 후 입으로 받아먹으며 놀아보기도 했고요. 우리가 오징어땅콩에 이렇게 젖어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마케팅'의 힘입니다.

 

같은 전략, 다른 접근

1971년 농심이 내놓은 새우깡은 과자 시장을 변화시킵니다. 양갱이나 캬라멜을 제외하면 과자라는 큰 카테고리에서 펼쳐지던 경쟁을 '브랜드' 중심으로 바꿔놨습니다. 당시에는 새우깡처럼 '원재료'를 앞세운 네이밍 전략의 효과가 컸습니다. 상품을 알리는 창구도 바뀝니다. TV가 보급되면서 신문 광고에서 TV 광고로 이동합니다. 5년 후인 1976년 오징어땅콩이 탄생했을 무렵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집니다.

 

새우깡이나 오징어땅콩은 특별한 '광고'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제품명부터 원재료를 어필한 만큼 '마케팅 포인트'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오징어와 땅콩은 오래 전부터 친숙했습니다. 1970년 1월 24일 한 신문의 '명절 백화점 쇼핑 가이드' 기사에는 오징어와 땅콩이 '안주 선물세트'로 소개돼있기도 합니다. 오징어땅콩은 출시 전부터 이미 정체성이 정해져 있던 겁니다.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던 거죠.

 오징어땅콩과 새우깡의 광고는 '콘셉트' 부터 달랐다. /사진=각 사

하지만 동양제과(현 오리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리온은 오징어땅콩 론칭과 함께 대대적인 TV 광고를 진행합니다. 모델로는 당시 '하이틴 스타'였던 신인배우 이덕화 씨를 발탁합니다. 이는 새우깡과는 다른 전략입니다. 새우깡은 출시 직후 희극인 고(故) 김희갑 씨를 모델로 발탁했습니다. 이는 젊은 이미지보다는 신뢰를 높이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두 업체의 타깃과 방향이 달랐던 겁니다.

실제로 두 제품의 광고 방식은 다릅니다. 새우깡은 초기 광고에 제품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당시만 해도 비싼 원물이던 새우를 넣었다는 점을 강조했죠. 반면 오징어땅콩의 광고는 원물을 어필하지 않습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이덕화 씨가 오징어땅콩을 공중에 던지며 즐겁게 먹을 뿐입니다. 오리온은 이 광고를 통해 오징어땅콩에 젊은 이미지를 불어넣습니다. 이런 전략은 젊은 층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큰 인기를 끕니다.

 

친숙하지만 묵직하게

오징어땅콩은 시간이 갈수록 승승장구하면서 오리온의 효자 상품이 됩니다. 제조 방법이 어려워 한동안 경쟁 제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오징어땅콩은 땅콩 위에 반죽을 약 28번 입혀 만듭니다. 이 공정은 2000년대 이전까지 '수동'이었습니다.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 효율성이 떨어지는 구조입니다. 때문에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인 미투 제품이 나타나지 않았던 겁니다.

 

이 시기 오징어땅콩의 마케팅 전략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기존의 전략을 그대로 가져갑니다. 오리온은 매번 당대의 젊은 배우들을 오징어땅콩의 모델로 기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들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을 광고에 담았습니다. 던져 먹는 '시그니처 무브'도 꼬박꼬박 삽입했죠. 이 때까지는 역사가 엄청나게 길었던 것도 아닌 만큼 역사성을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2006년 오리온은 '진품' 광고를 내보냅니다. /사진=오리온

상황은 2000년대 들어 바뀝니다. 제조 공정 발전으로 오징어땅콩 미투 제품이 등장합니다. 롯데와 해태가 비슷한 제품을 내놨습니다. 오리온은 '증산(增産)'으로 대응합니다. 2004년부터 전면 자동화 공정을 적용해 생산량을 크게 늘렸습니다. 또 다양한 맛의 오징어땅콩을 선보이면서 확장에 나섭니다. 정체성은 지키고 새로움은 추가하는 시도였죠. 덕분에 오징어땅콩은 미투 상품과의 경쟁 속에서도 오히려 매출이 크게 늘어납니다.

아껴뒀던 '역사'카드도 이 즈음 꺼내듭니다. 오리온은 2006년 오징어땅콩의 새 광고를 내놓습니다. 이 광고에는 '30년 진품'이라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패키지도 리뉴얼됩니다. 전면에 바다와 오징어를 등장시키며 '원물'을 강조합니다. 패키지 후면에는 제조 공정을 담아 기술력을 어필합니다. 소비자들은 처음으로 오징어땅콩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됐죠. 2010년에는 '오땅월드' 홈페이지를 개설해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데 집중합니다.

 

'낡음' 벗고 '젊음'으로

오징어땅콩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6년 1월 오징어땅콩의 주요 생산기지인 이천공장에 대형 화재가 발생합니다. 총 5개의 생산 라인 중 4곳이 전소됐습니다. 오징어땅콩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경쟁사들이 시장을 파고들었습니다. 매대를 미투 제품이 채웠고 TV 등에서도 활발히 광고가 진행됐죠. 오징어땅콩 역사상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생산이 막힌 만큼 대응도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원조'의 힘이 발휘됩니다. 오리온은 2016년 6월부터 익산공장에서 오징어땅콩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증산을 단행, 생산량을 30% 늘렸습니다. 미투 상품들을 밀어내기 위해 물량 승부에 나선 겁니다. 그 결과 오징어땅콩은 1년만에 '왕좌'에 복귀합니다. 전년 대비 매출이 2배 가까이 올랐죠. 차별화된 품질과 친숙한 마케팅으로 쌓아둔 이미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오징어땅콩은 변하지 않고 있다. /사진=오리온

이 때부터 오징어땅콩은 더욱 빠르게 젊은 스낵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2017년 '간장와사비맛', 2018년 '고추장마요'에 이어 2019년에는 '마라맛'까지 선보였죠. 특히 2018년에는 ‘고로케땅콩’이라는 파생 제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제품에 트렌드가 담기기 시작합니다. 이들 제품은 편의점을 중심으로 유통됐습니다. 맥주와 묶음 판매가 진행되기도 했고요. 젊은 층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징어땅콩은 '오래된 제품'입니다. 하지만 시대와 트렌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숙한 이미지는 지켜냈습니다. 덕분에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반백년에 가까운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일 겁니다. 앞으로 우리는 오징어땅콩하면 무엇을 떠올릴까요. 오징어땅콩이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문형국 오리온 마케팅 매니저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역사와 품질로 쌓은 50년 역사"

 문형국 오리온 마케팅 매니저. /사진=이현석 기자 tryon@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오리온 마케팅실에서 스낵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 문형국입니다. 현재 오징어땅콩, 꼬북칩, 썬 등 제품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징어땅콩이 긴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짭짤한 풍미의 오징어맛과 고소한 땅콩의 조화로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점인 것 같습니다. 또 대부분 스낵이 얇은 칩 또는 긴 제형인데 비해 오징어땅콩은 '볼(Ball)' 타입의 독특한 형태로 출시 직후부터 주목받았습니다. 여기에 땅콩 위에 반죽을 더한 이중 구조를 통해 색다른 재미와 식감을 선사한 점도 주효한 것 같습니다.

 

-오징어와 땅콩을 같이 먹은 것은 오래됐지만, 오징어땅콩과의 맛은 다소 다릅니다. 이 다른 둘을 하나로 만들고자 했던 배경이 궁금합니다.

▲오리온은 1972년부터 땅콩을 주원료로 하는 과자 개발에 도전했습니다. 해외 설비를 도입했지만 기술 부족 등 원인으로 독특한 제품을 개발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진미스낵', '백설스낵' 등의 연이은 실패도 겪었죠. 이에 '맛튀김 개발팀'과 '오징어 스낵 개발팀'을 신설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신제품 개발에 도전했습니다. 여기서 오징어 스낵 개발팀이 땅콩과 오징어의 결합을 생각해내며 제품이 탄생했습니다. 과자인 만큼 색다른 맛과 식감을 주는 것에도 집중했죠.

 

-오징어땅콩은 눈에 띄는 마케팅을 자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에 자리잡은 비결은 뭘까요.

▲품질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영업에 힘쓴 것입니다. 오징어땅콩은 보통 동네 마트 등의 맥주 진열대 옆에 인접해 진열됩니다. 그리고 가성비 혜택을 제공하는 '삼묶음' 제품 등도 마트에 집중 공급하고 있습니다. 안주로 각광받고 있는 만큼 주류 구매시 자연스럽게 연계 구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전략이었습니다. 또 오징어땅콩이 사랑받으면서 개인 마트 점주들께서는 자체적으로 팝업 진열을 해주시는 등 감사한 협조도 이어졌었습니다.

 

-오징어땅콩이 특히 인기를 끄는 장소가 있을까요.

▲일단 안주 시장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특이한 점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과자로 꼽힙니다. 볼 타입 형태로 한 입에 먹기 편하고, 바삭 깨물면 졸음을 없애주는 효과까지 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오징어땅콩은 많은 유사품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핵심 원동력은 결국 맛과 품질입니다. 2016년 이천 공장 화재 당시 경쟁사들이 미투 제품을 엄청나게 쏟아냈습니다만, 얼마 후 생산이 재개되자 빠르게 매출이 회복된 바 있죠. 이를 보면 아무리 이름과 패키지가 비슷해도 소비자들께서 품질의 차이를 명확히 알고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리온의 오징어땅콩을 최고로 인정해 주시는 것 아닐까요(웃음). 또 이것이 오징어땅콩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오징어땅콩의 마케팅 전략은 어떨까요.

▲소비자와 지속적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분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는데요. 때로는 오징어땅콩에서 땅콩을 빼 달라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합니다. 당장 출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벤트성 상품을 내놓을 계획도 있습니다. 이런 활동과 이벤트 등을 통해 오징어땅콩의 젊은 이미지를 점차 강화해 나가려고 합니다.

 

-긴 역사와 큰 매출을 가진 상품의 마케팅을 담당하시는 데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오랜 전통은 자칫 올드하거나 정체된 브랜드로 인식되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제 역할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탄생할 재미있는 후속작들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오징어땅콩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또 다른 연령층의 소비자들에게도 오징어땅콩을 통한 즐거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결정적 한끗]⑤오징어땅콩, 46년째 '국민간식'된 비결

  • 나원식 기자 setisoul@bizwatch.co.kr
    김용민 기자 kym5380@bizwatch.co.kr
  • 2021.12.10(금) 07:00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지금까지 '국민 간식'으로 불리는 오징어땅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46년 전 오징어땅콩이 처음 탄생한 뒤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제조 비법은 무엇인지. 또 미투 제품의 등장했을 때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등 다양한 분야를 살펴봤는데요.

 

취재하고 기사를 쓰면서 놀랐던 것은 '오징어땅콩이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지'하는 점이었습니다. 오징어땅콩은 그저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오래된 스낵이었을 뿐 연 매출 500억원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단순히 '장수 브랜드'가 아닌 그야말로 '국민 간식'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만한 제품이더군요.

 

오징어땅콩이 이처럼 인기를 지속해온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선 오징어와 땅콩이라는 한국인의 '소울 푸드'를 스낵으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성공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식거리, 안줏거리 하면 떠오르는 오징어와 땅콩을 '과자'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은 언제나 '오땅'을 집어 들곤 합니다.

 

공들여 고른 땅콩 원물을 얇은 반죽으로 28번 코팅해 바삭한 식감을 구현하는 '기술력'도 눈에 띕니다. 다른 제과 업체에서도 오징어땅콩과 흡사한 '미투 제품'을 내놨지만 소비자들은 원조 오땅만 찾습니다.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로 빚은 '맛'을 경쟁사들은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친숙하면서도 젊은 이미지를 강조해온 마케팅 전략도 눈에 띕니다. 친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낡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래 접한 브랜드는 낡은 이미지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출시된 지 반백 년이 돼가는 오징어땅콩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하지만 오리온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식감을 개선하거나 포장을 바꾸고, 또 당대의 젊은 배우들을 모델로 기용하며 '오징어땅콩'을 변화시켜왔습니다. 이를 통해 오랜 기간 '젊음'을 유지할 수 있었고요. 이게 바로 오징어땅콩이 '국민 간식'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결이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결정적 한끗] 오징어땅콩 편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