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시사

막걸리가 항암식품? 이 된 사연

곡산 2017. 10. 17. 15:23

막걸리가 항암식품? 이 된 사연

[J플러스] 입력 2017.09.28 18:11   수정 2017.10.01 18:51

막걸리열풍 사라지나?
 
좀 오래된 이야기다. 막걸리가 항암식품이 된 사연이.

한때 막걸리(생탁) 열풍이 대단했다. 그런데 그 인기가 내리막길을 걸어 이젠 옛날의 지위(?)를 회복하는 듯하다. 어쩌면 예견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막걸리의 질적 수준이 그렇게 나아지지도 않았는데 있지도 않은 기능성을 과대선전 해 댔던 탓이다.
 

생탁에는 살아있는 효모가 많고, 인체에 좋다는 유산균이 요구르트보다 몇 배가 들어있기 때문에 건강기능성이 우수하다고 했다. 이 선전이 막걸리 열풍의 단초가 됐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일조했음직은 하다. 실제 막걸리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요구르트만큼 유산균이 많지가 않다. 유산균이 소량 있긴 하나 많아지면 오히려 술이 시어져 질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나는데도 좋다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또 술에 들어있는 유산균이 우리의 장에서 정장작용을 하는 종류와 꼭 같지도 않으며 있다 해도 소화기관을 클리어(clear)하여 장에까지 도달할지도 의문이다. 유산균이 만병통치처럼 주장하는 세태에 편승하여 유산균의 함량을 가지고 음식을 평가하는 풍조도 옳지 않다. 또 효모에 대한 근거 없는 칭송도 있다. 술중에 효모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 술은 막걸리가 유일하긴 하지만, 효모를 소량 먹는다고 인체에 크게 좋을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막걸리 열풍이 사그라드니 막걸리의 효능을 과장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이는 어느 나서기 좋아하는 쇼닥터의 소행(?)으로 뭔가 의도성 있는 냄새가 풍기는 대목이다. 내용은 이랬다. 막걸리에 항암물질이 포도주, 맥주보다 25배 이상 많다는 한국식품연구원의 발표였다. 그 대상은 이름도 생소한 파네졸(farnesol)이라는 것으로 그 함량이 포도주나 맥주(15~20ppb)에 비해 10~25배(150~500ppb)나 많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ppb가 뭔지 아는가? ppm의 천분의 1(1/1,000)에 해당하는 양이 ppb라는 단위다. 즉 막걸리 1리터에 150-500ug(마이크로 그람)이 들어있다는 의미다. 1 마이크로그람은 100만분의 1그람이다. 있으나 마나 한 양이다. 측정기술의 발달하지 않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출자체가 불가능했을 정도의 양으로 부산을 떤 셈이다. 그래도 항암 좋아하는 우리국민의 심성상 이런 발표가 한때 막걸리소비를 되살리는 듯도 했다.
 
과연 막걸리를 자주 마시면 암을 예방할 수 있을까? 설령 식품연구원의 주장대로 파네졸이 항암효과가 있다하더라도 제시한 양을 맞추려면

막걸리를 고주망태로 퍼 마셔야 한다. 연구원 주장은 한번에 5∼7㎎의 파네졸을 섭취하면 항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막걸리 1L에는 파네졸이 0.15∼0.5㎎ 들어 있으니 이런 막걸리로 항암 효과를 내려면 한꺼번에 무려 13-40병(750ml)이나 마셔야 한다는 계산이다. 병 고치려다 술에 쩔어 죽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 파네졸은 알코올을 발효하는 효모의 세포속에 소량 있은 물질이다. 효모는 가라앉는 혼탁한 찌꺼기부분에 있다해서 걸쭉한 막걸리가 인기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파네졸이 항암효과를 나타낸다는 논문이 있기는 하나 파네졸의 양(농도)과 관계없이 항암효능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도 있다.
 
이 발표에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가소로웠던지 이에 대해 논평을 내 놓았다. "웬만한 채소 등에 있는 성분을 따로 분석해 보면 조금씩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막걸리라고 이와 다를 바 없다” “최근 막걸리 소비량이 줄어들자 항암효능이 너무 부각된 게 아닌가 싶다”라고.


아마도 포도주의 레스베라트롤을 벤치마킹하여 이런 주장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른바 프랑스가 포도주에 항암, 항산화효과가 탁월하다는 엉터리(?) 마케팅이 성공하여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사례 말이다. 포도주의 레스베라테롤도 역시 전립선암을 예방하려면 한꺼번에 무려 8750리터를 마셔야한다는 계산이다. 막걸리의 파네졸보다 침소봉대는 한 수 위인 셈이다. 이런 레스베라트롤의 허위 과장선전을 비꼬아서 프렌치 패러독스라 부른다.
 
그 동안 적포도주에 레스베라트롤 등 폴리페놀이라는 항산화제가 많아 심장병을 예방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렸으나 이도 억지주장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의 리처드 셈바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미국의학협회저널 내과학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레드와인에 다량 함유된 폴리페놀계 항산화물질 레스베라트롤이 성인병 억제나 장수와 별 상관이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웃기는 사건도 있다. 파네졸로 막걸리가 생각만큼 뜨지 않자 같은 연구소에서 스쿠알렌(squalene)이라는 항암물질이 또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포도주, 맥주보다 또 50-200배가 많다면서 막걸리 1리터에 1260-4660μg(1.2-4.6mg)이 들어있고 파네졸과 마찬가지로 가라앉은 찌꺼기부분에 있다 했다. 즉 이 물질도 발효효모의 세포내에 존재하는 것으로 술에는 녹아나오지 않는 소수성(疏水性)물질이라서다.
 
스쿠알렌이 뭔지 아는가? 우리의 간에서 콜레스테롤이 합성될 때 만들어지는 중간산물이다. 동맥경화, 심혈관질환의 원흉(?)으로 치는 콜레스테롤의 합성될 때 그 전구체가 되는 스쿠알렌을 많이 먹으면 좋다고 했다. 심해 상어의 간에서 추출했다는 어쩌고저쩌고 하는 구원파 세모가 판매하는 그 스쿠알렌과 동일물질이다. 건강식품으로 한때 유행하기도 했으나 효능이 신통치 않아 요즈음은 소비자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스쿠알렌의 항암효과에 대한 논문이 몇 편이나 있는지 모르지만 정식약품으로 인가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을 정부의 공적기관이 침소봉대하여 헛발질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필자는 스쿠알렌의 항암작용을 들어본 적이 없다. 김치도 항암, 된장도 항암, 뭐도 항암 하는 그런 수준인 것 같기는 하지만.

앞에 언급한 파네졸(farnesyl diphosphate)이라는 것도 역시 간에서 콜레스테롤이 합성될 때 만들어 지는 중간산물이다. 이른바 둘 다 우리 몸속에서 합성되는 물질인 셈이다(아래 그림의 화살표).   

합성되는 물질인 셈이다(아래 그림의 화살표).   

체내 콜레스테롤의 생합성 경로


이것도 식품에 뭔가 유익한 성분이 검출되기만 하면 그 양과 관계없이 항암, 항산화작용을 둘러대며 만병통치처럼 호들갑을 떠는 그런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약인지 독인지는 양이 결정한다. 인체에 유해한 것도 양이 적으면 해가 없고 인체에 좋다는 것도 지나치면 해롭게 작용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막걸리가 인기를 유지하려면 이런 터무니 없는 마케팅에 의존 할 것이 아니라 기호성을 높이고 고급화 하는 전략(기술개발)이 먼저다.  한류에 빌붙어 외국에 수출하던 그런 시대는 지났다. 막걸리 수출이 급감하고 소비가 대폭 줄었다는 소문이다. 이제 옛날의 싸구려 농주, 서민술로 다시 회귀하는 듯해서 안타깝다. 이제 막걸리열풍이 왜 사라졌는지 차분히 생각해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