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경영

오랜 친구 같은 상품명 뒤에는

곡산 2016. 8. 12. 16:03
참치는 ‘동원’ · 즉석밥은 ‘햇반’이라 부르는 비결?
오랜 친구 같은 상품명 뒤에는
‘첫 · 인 · 상’ (처음 개발 · 각인시키고 · 항상 혁신)있다


1. 사진제공: CJ / 2. 사진 : 조선일보 DB

“으악! 호치키스에 손이 찍혔어. 대일밴드 좀 줄래?”
“피가 많이 나는데 일단 크리넥스로 닦아봐.”

위 대화 중에 상품명이 많다. 호치키스, 대일밴드, 크리넥스 등 3개다. 호치키스는 ‘스테이플러(stapler)’라는 버젓한 이름이 있지만 이를 제조한 브랜드 ‘호치키스’로 더 많이 불린다. 대일밴드도 가장 많은 반창고 판매량을 자랑하는 회사 이름이고, 크리넥스는 킴벌리클락크의 브랜드다. 이와 같이 유명한 브랜드명 자체가 제품군 전체를 대표하는 보통명사가 되곤 하는데, 특히 식품 분야에서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브랜드가 보통명사화 됐다는 것은 그만큼 그 브랜드가 소비자의 뇌리에 강력하게 각인됐다는 의미다. 따라서 대부분의 보통명사 브랜드들은 오랜 시간 변함없이 소비자에게 사랑받아온 장수 브랜드다. 몇 십 년부터 많게는 100년이 넘게 사랑받아온 보통명사 브랜드도 있다.

 

초코파이 변천사

- 사진제공: 오리온

숙성 노하우와 ‘情’으로 1등 지킨 오리온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가사만 봐도 익숙한 멜로디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재생된다. 지난 1974년 출시된 오리온 초코파이의 CM송이다. 롯데, 해태, 크라운에서 아류작을 출시했지만 ‘그래도 초코파이는 오리온’이라는 것이 정설(定說)이다. 원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오리온 초코파이도 사실 미국의 ‘문파이(Moon Pie)’를 벤치마킹한 과자다.

오리온 과자개발팀의 한 직원이 미국 출장 중 문파이를 사먹었는데, 그 맛에 감동받은 나머지 한국에 돌아와 그 맛을 재현해냈다고 알려졌다.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끝에 결국 찾아낸 최상의 초코파이 맛은 다른 경쟁사에서는 따라할 수 없는 ‘원조의 맛’이 됐다. 

초코파이의 마시멜로를 감싸고 있는 빵은 원래부터 촉촉한 것이 아니라 딱딱한 비스킷 형태다. 마시멜로의 수분이 비스킷으로 옮겨가면서 딱딱했던 비스킷이 촉촉해지는데, 이 적당한 촉촉함을 위해서 약 3일 동안 숙성과정을 거친다. 물론 숙성방법, 숙성시간은 오리온의 영업비밀이다. 여러 초코파이를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본 결과, 오리온 초코파이의 빵이 가장 찰지고 촉촉하며 마시멜로의 식감도 더 쫀득하다는 평도 있다.

오리온 초코파이의 위기는 경쟁사들이 너도나도 초코파이를 내놓으며 시작됐다. 상표등록을 ‘오리온 초코파이’라고 해놓는 바람에 경쟁사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오리온은 차별화를 위해 ‘정(情)’이라는 감성적 가치를 제품에 녹여내며 돌파구를 찾았다. 김정남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초코파이의 광고 전략은 쌍방향커뮤니케이션”이라며 “전 국민이 공감하고 느끼고 싶어 하는 정서를 초코파이를 통해 느끼게 했다. 빅 모델보다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초코파이는 2015년 1분기에 1120억 원어치가 팔렸다. 이 중 중국에서 550억, 베트남에서 230억, 러시아에서 100억 매출을 올렸다. 이쯤 되면 국민브랜드를 넘어서 글로벌브랜드라고 할 만하다. G20(세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때 청와대가 간식으로 준비한 초코파이를 러시아 기자들이 순식간에 싹쓸이 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베트남에서는 초코파이가 제사상에도 오르고 중국에서는 결혼식 같은 행사의 답례품으로 쓰이고 있다.

초코파이가 해외시장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는 지역에 따라 맛과 마케팅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1997년 중국에서 초코파이를 현지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파란색 포장지를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으로 바꿨다. 한국 포장지에 쓰인 ‘정(情)’이라는 글자를 중국 제품에서는 ‘인(仁)’으로 바꿨다. 또한 상품명을 ‘하오리요우(좋은 친구)’로 바꿔 출시한 것도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법이다.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변천사

- 사진제공: 빙그레

항아리병에 담긴 노란색 우유의 신선한 충격
‘뚱바(뚱뚱한 바나나우유)’, ‘항아리 우유’라고도 불리는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가공우유시장에서 8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원톱이다. 1970년대 초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정부는 낙농업 육성정책과 더불어 우유소비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는데, 한국인은 체질상 흰 우유를 소화시키는 효소(락타아제)가 부족해 우유소비량이 늘지 않았다. 우유소비를 늘리기 위해 업체들은 딸기맛, 초코맛 우유 등 신제품을 내놨지만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당시 바나나는 지금의 친근한 이미지와는 달리 ‘쉽게 먹을 수 없는 고급과일’의 인식이 강했다.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바나나를 사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유로나마 바나나의 맛을 즐길 수 있게 해준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출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항아리를 연상케 하는 포장은 산업화바람으로 고향을 떠나 상경한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줬고, 폴리스틸렌 소재의 반투명 용기를 사용해서 보기만 해도 바나나맛이 느껴지는 노란 우유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 미각의 시각화를 이뤘다.

이런 바나나맛 우유에도 위기는 있었다. 바나나맛 우유는 노란색인데 정작 바나나과육은 하얀색이라는 아이러니를 공략해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가 인공향, 인공색소를 사용한 점을 공격한 신제품이 나왔을 때다. ‘무색소 천연과즙’을 내세운 매일유업의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의 출시로 잠시 빙그레의 1강 독주는 주춤하는 듯 했으나 오랜 시간 사랑 받아온 만큼 빙그레는 보란 듯이 1위를 탈환했다.

냉장고에서 바나나맛 우유가 우르르 쏟아지는 설정, ‘마음까지 채운다’라는 광고카피, 그리고 멕시코 출신 가수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의 라밤바(La Bamba) 멜로디에 ‘바나나나맛 우유~’라는 가사를 덧씌운 CM송으로 이미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바나나맛 우유의 보통명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빙그레는 바나나맛 우유의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토피넛, 멜론맛, 딸기맛 등의 신제품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퇴근시간대에 두 손 가득 10개가 넘는 바나나맛 우유를 사가는 진풍경이 벌어질 정도로 중국에서 바나나맛 우유의 인기가 높다. 중국산 유제품보다 2배 이상 비싸다는 핸디캡을 가지고도 날개 돋친 듯 팔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에서 온 믿을 수 있는 식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관광지에 광고를 지속적으로 노출한 마케팅 때문이다. 덕분에 2010년 7억원이었던 매출이 2013년 150억원으로 20배나 상승했다.

축구선수 지동원, 영화배우 강동원의 별명은 ‘참치’다. 전국의 모든 ‘동원’이들은 ‘참치’라고 불릴 숙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원참치’의 브랜드는 강력하다. 1994년 당시 북한 박영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국장의 서울불바다 발언 직후 겁에 질린 국민들이 가장 많이 사재기한 제품 중 하나였던 동원참치는 참치통조림의 보통명사다.

요즘에는 너무나도 흔하게 보이는 탓에 참치통조림을 당연한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1982년 동원참치가 처음 출시될 때만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은 참치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다. 생선통조림이라면 꽁치가 전부였던 당시, 참치통조림은 선진국형 식품이었지만 점차 선진국화되는 국민소득과 식생활의 변화에 따른 참치의 대중화를 예견한 동원은 참치통조림을 출시했다.

 

활명수 변천사

- 사진제공: 동화약품

참치, 즉석밥, 소화제 하면 ‘이것’ 저절로 떠올라
생소함과 비싼 가격(당시 1000원) 탓에 시장 반응은 좋지 않았지만 동원 임직원들은 공휴일에 유원지와 기차역에서 참치김치찌개 시식회를 펼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또 꾸준한 제품개발을 통해 국민식품에 등극했다. 하지만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고급식품보다는 간편식의 이미지가 커졌던 동원참치는 2000년대 중반 웰빙 열풍이 불면서 매출이 주춤했다. 하지만 등푸른 생선의 영양학적 강점을 어필하고 여러 가지 맛이 가미된 2세대 가미참치를 출시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려 2010년에는 수산캔 사상 처음으로 50억 캔 판매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2008년에는 세계 최대의 참치회사인 미국 스타키스트를 인수하고, 2011년에는 아프리카 시장에도 진출하는 등 세계시장에도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

밥솥이 텅텅 비었을 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즉석밥. ‘오뚜기밥’, ‘쎈쿡’ 등 여러 브랜드가 있지만, 모든 즉석밥은 ‘햇반’으로 불리는 게 현실이다. ‘갓 지은 밥’이라는 뜻의 햇반은 사실 최초의 즉석밥은 아니다. 1993년 천일식품에서 볶음밥 형태로 내놓은 냉동밥이 즉석밥의 원조 격이고, 이후 1995년에 비락과 빙그레에서 레토르트 공법을 이용한 즉석밥을 출시했지만 냄새가 나고 맛과 식감이 별로라는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았다.

이들의 실패를 본 CJ는 우리나라보다 상품밥 시장이 10년 이상 앞선 일본의 ‘무균포장밥’을 벤치마킹해 1996년 햇반을 출시했다. 1990년대 이후 기혼여성의 취업률과 독신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였고, 전자레인지가 보편화되는 시기였던 만큼 햇반의 성공은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즉석밥은 맛과 위생면에서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타파한 것은 햇반의 광고였다. 김병선 CJ 조리식품 CM팀장은 모 신문에 쓴 칼럼에서 “ ‘국민엄마’ 김혜자와 순풍산부인과 출연진을 광고에 기용해 소비자 인식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또 농심과 오뚜기 같은 후발업체의 등장으로 시장점유율이 하락했을 때도 자가도정시스템 등의 품질개발로 위기를 헤쳐 나갔다. 1등 브랜드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오곡밥, 찰보리밥 등의 잡곡즉석밥으로 제품군을 넓히고, 국밥, 덮밥 시리즈도 출시해 제품의 다양성을 넓힘으로써 저변을 확대해나갔다. 1997년부터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식으로 사용돼 기내식 한식 메뉴의 다양화에 일조했다.

‘소화제’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국내 최초의 등록상표, 118년 역사를 가진 최고(最古) 브랜드 ‘까스활명수’는 장수브랜드 중의 장수브랜드다. 이 ‘생명을 살리는 물(活命水)’은 급체, 토사곽란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았던 대한제국시절 만병통치약으로 사랑받았다. 1897년, 궁중선전관이었던 민병호 선생이 한방(韓方)식 소화제에 양약을 섞어 탄생시켰는데 이후 탄산음료의 유행에 발맞춰 탄산을 첨가해 지금의 ‘까스활명수’가 됐다. ‘까스명수’, ‘까스회생수’ 등 유사품이 범람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까스활명수는 활명수의 상징 ‘부채표’를 1910년 우리나라 최초로 상표등록 했고, 상표보호를 위해 ‘활명액’까지 등록해버리는 치밀함도 보였다.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문구를 통해 ‘동화약품의 부채표 까스활명수가 오리지널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시장점유율 70%, 연간 매출 460억 원에 이르는 소화제계의 보통명사가 됐지만, 제품개선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잘 나가는’ 글로벌 100대 기업들도 평균 수명이 약 30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30년 넘게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들 보통명사 브랜드의 비결은 무엇일까? 세계적인 마케팅의 대가 알 리스(Al Ries)와 잭 트라우트(Jack Trout)가 정립한 마케팅 원칙을 보면 이들의 성공에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선도자의 법칙’은 시장에서 ‘최초’가 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위에 소개된 보통명사 장수브랜드들 모두 국내 시장에서 최초의 초코파이, 바나나맛 우유, 참치통조림, 즉석밥, 소화제로서 입지를 굳혔다. 맥도날드의 ‘골든아치’, IT기업 인텔의 ‘딩동’ 소리 등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강력하게 인식할 수 있는 시그널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법칙’도 있다. 머릿속을 맴도는 중독성 있는 CM송, 그리고 쉽고 한 번에 쏙 들어오는 광고문구 등으로 소비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특정 브랜드를 연상시킬 수 있게 한 것이다.

끊임없는 변화에 대한 시도도 이들의 인기 유지 비법 중 하나다. 리스와 트라우트가 집필한 마케팅 저서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 따르면, 브랜드가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변화를 할 수 있는 융통성이라고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맛, 새로운 공법을 개발함으로써 변화하는 시장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시장을 개척하고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강렬히 각인시켰으며, 제품개발을 소홀히 하지 않은 이들 다섯 가지 보통명사 브랜드야말로 브랜드 마케팅의 정도(正道)를 걸어온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기사: 양지윤 인턴기자·연세대 신문방송학과 3학년 (yjy939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