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시사

[기자수첩] 나도 ‘블랙컨슈머’ 될 수 있다

곡산 2010. 7. 4. 07:56

[기자수첩] 나도 ‘블랙컨슈머’ 될 수 있다
2010년 04월 13일 (화) 09:17:08 전지현 기자 cjh@newsprime.co.kr

[프라임경제] 며칠 전 식품회사 B사의 제품에 이물질이 들어있다는 한 제보를 접했다. 다소 경직된 제보자 A씨는 본인의 실명과 연락처를 밝히며 B사 측으로부터 받았던 모멸감과 억울함에 대해 호소했다.

A씨는 B사의 제품 속에서 이물질을 발견하고 고객상담실에 신고했다. 며칠 후 B사 고객담당자가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A씨를 찾아갔다.

A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담당자가 과자나 상품권 등으로 보상을 해주겠다며 단지 보상을 노리고 악의적으로 신고한 것처럼 입막음하려는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고 털어놨다.

취재과정에서 B사 관계자는 “제보자(A씨)가 거액의 보상금을 노린 ‘블랙컨슈머(악성을 뜻하는 블랙 Black 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 Consumer 를 합성한 용어로 고의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였다”며 “통화내역이 녹음됐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B사의 주장대로라면 A씨는 돈을 노리고 제조사에게 접근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였다.

하지만 A씨의 주장은 B사 입장과 달랐다. A씨는 B사 측 ‘결론’에 대해 “현금보상에 대해선 (말을) 꺼낸 적도 없을 뿐더러 먼저 요구했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대기업 상대로 싸워 뭐하나’ 싶어 그만뒀다”고 억울한 마음을 토로했다.

기업을 상대로 고의적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블랙컨슈머. 그러나 소수의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가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실제 경기도 소비자정보센터가 올 2월 발표한 ‘블랙컨슈머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51개 식품업체 중 48개 업체(94.1%)가 블랙컨슈머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겪은 블랙컨슈머의 대표적인 부당한 요구 유형으로는 근거 없는 피해보상 요구(43.1%), 보상기준을 넘는 피해보상요구(23.5%), 간접적 피해보상요구(15.7%), 상담자에 대한 부당한 언행(15.6%), 불만사항을 근거로 언론 유포 협박(2.0%) 등이었다.

물론 업체 입장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식품가공제조업체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블랙컨슈머 사례로 인해 선량한 소비자들을 가려내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선의의 피해자들조차 블랙컨슈머로 의심하고 대하는 태도에 소비자는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입고,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불신과 반감을 갖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업체와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본인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어느새 블랙컨슈머가 돼버릴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물이 검출된 제품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중도에 협상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한다.

C씨는 분유에서 이물질을 발견하고 고객상담실에 신고했지만 분유통이 아닌 분유병에서 이물질이 나올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회사 측 답변에 제조업체의 과실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며칠 뒤 해당 업체와의 만남을 취소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C씨는 제조업체 과실로 입증할 자신이 없었다고 기자에게 털어놨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기업들은 소비자와의 입장차를 줄이기 위해 기업내부에서 정한 법적 해석을 공개하고,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분쟁해결기준도 세밀하고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블랙컨슈머라는 정의가 모호하다. 의도성을 가지고 대가를 바래 기업에 접촉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보상을 받아야 하는 줄 알고 기업에 무조건 항의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피해를 입었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식음료업계에 따르면 제품에서 이물질이 발견되는 사고는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제조업체는 한결같이 “제조사의 문제가 아니라 유통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측면이 크다”고 답변한다. 보상금을 노리고 업체를 협박하는 진짜 블랙컨슈머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사법당국과 업체는 이들을 가려내는데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블랙컨슈머 실체에 대한 경계선이 매우 모호하다. 업체를 상대로 ‘제품 몇 개 주면서 없던 일로 하자는 당신네들과 협상 못 하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답했다간 자칫 ‘거액을 노리고 협상을 다짜고짜 내팽개치는 블랙컨슈

   
   
머로 몰리기 십상이다. 앞서 언급한 A씨의 경우가 딱 그렇다.

B사는 기자에게 A씨를 블랙컨슈머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통상 블랙컨슈머라면 자신의 실명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 공개하면서 언론사 등에 제보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식으로든 업체와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한다. 이물질 현상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입막음을 전제로 일정한 이득을 취하려 하기 때문이다.

기자의 눈에 비친 A씨는 정말 억울해서 하소연 하는 소비자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