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입맛에 맞춘 고급떡도 관광객에 큰 인기... 중국·일본·동남아 등서도 반응 좋아
두 달 전에 개봉된 영국의 점토인형 만화영화(그레이 애니메이션) ‘월래스와 그로밋-거대토끼의 저주’의 배급사인 미국의 드림웍스는 색다른 홍보용 이미지 사진을 한국에 보내왔다. 영화의 주인공 월래스(발명가)와 그로밋(그의 파트너인 개)이 식탁 위에 놓인 떡을 맛있게 먹는 사진이었다. 드림웍스는 당시 글로벌 마케팅을 위해 영화가 상영될 각 나라의 전통음식과 주인공을 합성한 사진을 해당국에 보내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가령 스위스는 퐁듀, 이탈리아는 피자, 멕시코는 또띠아가 식탁 위를 장식하는 식이었다. 그 사진이 한국 관객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드림웍스의 홍보팀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떡’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 음식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김치와 떡”이라고 한국관광공사 해외마케팅지원팀의 진종화 과장은 말한다. 김치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세계 20여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이제는 떡이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의 떡이 곧 일본으로 수출될 전망이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교수가 운영하는 ‘질시루’는 수출을 위해 유통기한을 늘린 ‘레토르트 떡’을 작년 9월에 개발했다. ‘햇반’처럼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 만에 데워 먹을 수 있다. 작년 독일의 쾰른 식품박람회와 대만의 타이베이 식품박람회에 출품해 호평을 받았고, 최근 일본 유통업체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질시루는 수출용 포장지에 ‘rice cake’ 대신 ‘dduck’이란 고유명사를 프린트했다.
윤숙자 교수는 “떡은 식으면 딱딱하게 굳고 금세 쉬어버리는 탓에 유통이 힘들었다. 그러나 진공포장한 레토르트 떡은 실온에서 3개월 이상 보관할 수 있어 국내는 물론 세계 어디에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떡은 밥보다 물기가 적기 때문에 통상적 떡 제조방식대로 만들면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웠을 때 제대로 익혀지지 않는다. 또한 떡가루가 부서지지 않게 질소가스를 불어넣는 진공포장 작업도 대단히 어려웠다”고 제조상의 난관을 회상했다. “가장 중요한 건 기술상 어려움이야 어쨌든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일본이 첫 수출시장으로 선정된 이유는 일본인이 한국인만큼 떡을 즐겨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치’라 불리는 일본의 떡은 한국 떡만큼 다양하지 못하고 값은 비할 데 없이 비싸다. 질시루의 레토르트 떡은 용기 하나에 3000원. 일본 떡에 비하면 절반 가격이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떡을 많이 사가는 가장 큰 이유도 값이 싸다는 것이라고 한다. 서울 강남의 떡카페 ‘미단’은 “일본인 관광객이나 재일동포가 일본 떡보다 싸고 맛있다며 한국 떡을 선물용으로 많이 사간다”고 밝혔다.
일본의 유통회사 ‘거산’의 이찬형(44) 사장은 질시루와 판매계약 체결을 희망하고 있다. 그는 도쿄 신주쿠에서 ‘종로복떡집’이란 한국식 떡집도 운영하고 있다. “아직은 일본인에게 떡이 낯설다. 그러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일본인은 단맛이 강한 모치에 익숙하지만 한국 떡의 담백한 맛에 점점 끌리고 있다. 질시루의 신제품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아직 일본에선 떡을 레토르트 제품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이 사장은 “미주와 유럽은 장담 못해도 일본, 중국, 대만, 홍콩은 한국 음식의 확실한 수출시장이다. 떡도 예외일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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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시루 “고객 40%는 외국인”
그러나 떡의 수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김치만큼 떡이 외국인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김치는 한국인의 주식이지만 떡은 요즘 한국사람도 잘 안 먹지 않는가. 외국인이 떡을 먹으면 얼마나 먹겠는가?
그러나 윤숙자 교수는 “외국인은 떡의 곁다리 소비층이 아니라 오히려 고급 브랜드 떡의 주소비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떡산업의 부활을 주도한 주요 소비자층은 첫째 20~30대 여성이며 둘째 외국인 관광객입니다. 그들이 비싼 떡을 사줬기 때문에 고급떡 브랜드 업체가 살아난 것입니다. 떡의 수출 가능성은 이미 그때부터 제기된 것이죠.”
햄버거와 케이크에 밀려 추억의 전통음식으로 사라질 뻔한 떡을 도시인의 고급 간식으로 되살린 가장 큰 공로자는 물론 소수의 고급떡 브랜드 업체다. 그 회사들은 1998~2001년에 집중적으로 창업했다. 윤숙자 교수의 질시루,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황혜성가(家)의 ‘지화자’, 조자호가(家)의 ‘호원당’, 서울 이대앞의 ‘동병상련’ 등이다. 그러나 전통 수제떡의 고급화를 내세운 이들 회사의 럭셔리 전략을 지지해준 소비층은 “비싸더라도 작고 예쁘고 맛있는 떡을 요구한 20~30대 여성과 외국인 유학생, 관광객이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이다.
양보다 질을, 가격보다 격조를, 맛보다 건강성을 따진 새로운 소비자들은 빵이나 패스트푸드보다 다이어트 효과가 높은 떡에 주목했고 질 좋은 식품에 기꺼이 투자함으로써 케이크보다 더 비싼 떡시장을 창출했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적 먹거리를 찾게 마련인 외국인 관광객에게 달고 맛있는 떡은 부담없는 간식이었고, 인공 첨가제 대신 잣, 밤, 대추, 호박 등 천연재료를 사용한 떡은 쉽게 어필했다. 케이크를 연상케 하는 떡 케이크, 생과일 설기 등 이른바 퓨전떡도 만들어졌다.
젊은 여성과 외국인은 전통적 스타일의 떡에는 익숙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것이 적중했다. 파격적인 가격에도 놀라지 않았던 것이다. 어릴 적 동네 떡방앗간에서 쪄낸 잔치떡을 이웃끼리 나눠먹던 추억을 가진 노년층이 밤톨만한 크기에 1000원이 넘는 브랜드 떡을 사먹기란 힘들지 않은가. 그렇게 본다면 떡의 고급화는 떡의 세계화와 동시에 진행된 셈이다. “우리 매장을 찾는 고객의 40%는 외국인”이라고 질시루 이민선 실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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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만 200가지 “한국은 떡의 왕국”
떡이 한국에만 있는 음식은 아니다. 쌀을 주식으로 삼아온 동양에는 떡과 같은 음식이 대부분 있다. 일본에는 ‘가가미모치’(거울떡)라는 찹쌀떡이 있고, 중국에는 ‘위엔샤오(元宵)’란 이름의 설탕 소를 넣은 찹쌀경단과, 떡보다는 과자에 가까운 ‘위에빙(月餠)’이 있다. 베트남엔 찹쌀가루 안에 돼지고기와 완두콩을 넣은 ‘뱅정’이란 떡이 있다.
그러나 떡을 가장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의 떡은 옛 문헌에 나타난 것만 200종류가 넘는데 “이 정도로 다양한 떡을 가진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요리전문가들은 단언한다. 일본인 요리강사 다마카와 아키(여·40)씨는 “한국은 떡의 왕국”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9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두 나라의 음식을 비교연구해온 다마카와씨는 “일본 떡은 찹쌀에 팥고물로 정형화해 있다. 그러나 한국 떡은 찹쌀과 멥쌀을 모두 쓰고 고물도 팥, 콩, 녹두, 밤, 깨 등 다채롭다. 조리방법에 있어서도 한국의 떡은 찌는 떡(시루떡, 설기떡, 두텁떡, 증편), 치는 떡(절편, 인절미, 개피떡), 삶는 떡(경단, 단자), 지지는 떡(화전, 주악, 부꾸미) 등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고 했다.
최근에는 중국과 동남아에서도 떡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푸드앤컬처코리아의 김수진 원장은 “요즘 우리 학원에만 하루 150~200명의 동남아 관광객이 방문해 한국음식 체험을 즐기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 덕에 이 지역의 한국음식에 관한 관심이 대단하다. 특히 떡은 한국음식 중 단맛을 지닌 간식으로 누구에게나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푸드앤컬처코리아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 음식을 가르치는 서울의 외국인 전문 한국요리학원이다. 김 원장은 지난해 12월에 중국 상하이, 광저우, 쿤밍을 방문해 한국요리강좌를 열었는데 대단한 호응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우리 문화 중 정말 경쟁력있는 문화가 음식문화란 걸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는 한국 요리를 집에서 늘 먹는 대수롭잖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외국인은 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 같아요.”
김수진 원장은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 국가와 동남아시아가 일본보다 더 큰 수출시장이 될 수 있다”며 “어쩌면 원자재인 쌀의 수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 쌀은 찰기가 많아서 떡을 만들기 쉽지만 동남아시아의 쌀은 찰기가 적어 떡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만일 동남아에서 떡을 만들려면 한국의 쌀을 수입해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외국인은 어떤 떡을 좋아하는가?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관광객을 안내하고 있는 박광근(29)씨의 설명을 들으면 외국인의 취향은 확실히 한국인과 차이가 있다. “그들은 큰 떡, 고물이 많은 떡은 싫어합니다. 먹을 때 고물이 옷에 떨어지면 화들짝 놀라요. 또 인절미나 가래떡처럼 쫀득쫀득해서 치아에 달라붙는 떡도 싫어합니다. 작아서 한입에 쏙 들어가는 떡, 예쁜 떡, 푸슬푸슬한 멥쌀떡, 당도가 높은 떡, 색채가 화려한 떡, 여러 견과류가 다채롭게 들어간 떡을 선호합니다. 떡 샌드위치, 떡 케이크 같은 퓨전떡도 외국인에게 인기 있습니다.”
다마카와씨는 “일본 떡은 이미 미국과 프랑스 시장에 조금씩 진출해 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시장에선 한국 떡이 먹힐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내 경험으로는 서구인은 일본 떡보다 당도가 낮고 푸슬푸슬한 한국 떡을 좋아합니다. 한국 떡은 친환경식품, 웰빙음식이란 점을 부각시키면 좋을 거예요. 특히 떡은 작은 모양으로 예쁘게 만들 수 있다는 대단한 장점이 있어요. 빵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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