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스크랩] 소설가 한승원의 ‘해산토굴(海山土窟)’

곡산 2006. 1. 21. 18:56

늙은 감나무 그늘 아래, 화엄의 바다를 사는 집

영혼의 무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것은 식물이나 바지락이나 가리비나 전복이나 소라고둥의 나이테처럼 만들어진다.

그것을 만드는 것은 겨울과 봄과 여름과 가을이다.

고통스러웠던 시간의 단단함과 유복했던 시간의 부드러움의 결정,

자기 가두어 기르기와 자기 풀어놓기 혹은 초월하기의 발자국이다.

혹은 머물기로 침잠한 채 살찌기와 그 살찜을 바탕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기의

궤적이 아니겠는가.

파도가 밀려온다. 밀려와서 갯바위나 모래톱에서 거꾸러지면서 흰 거품을 토해낸다.

산중 토굴에서 산을 마주하고 수도를 하는 스님들에 비해

망망대해의 파도를 향해 앉은 채 수도하는 스님들이 더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동어반복 같은 파도. 그러나 파도는 결코 동어반복이 아니다.

파도의 갈피갈피에는 한 발짝씩 더 높은 삶으로 나아가려는 꿈과 음모가 서려 있다.

우주적인 율동. 달려와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무수한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그것은 우주 시간의 시계추이다. (한승원 산문집 <바닷가 학교> 중에서)


▲ 창을 열면 늙은 감나무가 밑둥에 가득 바다를 끌어다 놓는다.

처마 끝에 걸린 바다, 그 바다 위에 선 감나무

당신은 바다 냄새를 아는가?

바다는 어떤 냄새를 풍기는가? 사람들은 바다의 냄새를 비릿하다고 한다.

비릿함, 오만가지 삶의 냄새를 버무려 놓으면 그런 냄새가 날까?

허기지고 아프고, 그늘지고 그리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이 삶의 쓸쓸함.

그런 게 비릿함은 아닌지. 그럴 때 사람들은 바다로 간다. 그냥 갔다가 그냥 온다.

그 그냥 속에서 위로 받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바다에게 술 한 잔을 권할 일이다

소설가 한승원.
그의 작품들이 그렇다. 사람이 바다에게 술 한 잔 권하듯, 바다가 삶에 지친 이에게

권하는 한 잔 술 같은 거, 뭐 그런거 라고 생각했다.

멀었다. 그의 집은. 전라남도 장흥 율산리. 남쪽 바다 끝이다. 하지만 멀다는 건 뭔가.

그의 집에서 보자면 서울이 먼 것 아니겠는가.

먼길을 가면서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바다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길, 그래서 내내 설레었던 길. 전남 장흥 율포해수욕장. 여기도 땅끝이다.

예서 수문포 해수욕장방면으로 삼십여리 정도 달리니 ‘해산토굴’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마을의 몇몇 집들을 거슬러 올라 산기슭, 대숲을 배후에 두고

단정한 매무새로 앉은 한옥집 한 채. 바로 작가 한승원이

오랜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귀향한 후 문학작업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마을 길 그 끝에 늙은 감나무 두 그루, 그 나무 아래 평상, 평상 옆 석탑

석탑 아래 연못, 그 연못 속에 물고기, 그 물고기 바라보는 연꽃, 마치 모든 게 소설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듯 ‘해산토굴’ 문을 열고 그가 나왔다.



▲ 높은 마당을 지키는 감나무와 평상. 보림사 삼층석탑을 3m 기준으로

   축소한 석탑도 보인다.

수행에 탄력이 붙어 대중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도 혼자서 수행할 정도의 스님이

대중생활의 번잡함을 피해 홀로 정진하는 곳 ‘토굴’. 바다에 대해,

내가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해 자신을 낮추고자 하여 지은 집 이름이란다.

해산(海山)이 그의 자호(自號)이고 보면 그가 흘로 용맹정진하는 곳이 된다.


내세에는 누릴 복이 바닥나, 심심할지도 몰라

서울살이를 하는 동안 위장병을 심하게 앓으며, 영양결핍으로 송기 막대기처럼

말라가면서 남은 삶과 양생을 위하여, 앞엔 바다

뒤에는 산을 둔 언덕에 토굴을 지어 살고 싶었다.

바닷가 산책, 해물 먹기, 아침 등산, 산나물 먹기를 할 수 있는 곳에.

그리하여 서울을 버리고 아예 고향바닷가로 이사해 버렸다고 한다.

뒤쪽에는 대숲이 있고, 앞뜰에는 오십년 생 감나무 세 그루와

사십년생 유자나무 두 그루가 있는 헌 집 한 채. 집주인이 쉽게 내주지 않아

몇 해를 기다렸다가 구할 수 있었다.

처음에 그는 거기에 작은 조립식 건물 하나를 지으려고 했지만 형제처럼 지내는

소설가 임철우 후배가 조립식 건물은 말도 안 된다고, 목수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리하여 약 25평 넓이의 목재 토굴이 자리를 잡았다.


▲ 집 뒤에 대 숲과 텃밭

집은 목수와 소설가 임철우, 그리고 부부가 머리를 짜서 설계했다.

그렇게 지어진 집은 은빛 바다를 바라다 보는 산기슭에 단정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집 앞마당에는 그보다 먼저 자릴 잡고 살았던 감나무가 그늘처럼

바다를 들이고 내보내고한다.

그 옆으로는 장흥 보림사의 국보인 삼층석탑을, 높이 3미터를 기준하여

축소하여 만든 석탑이 서 있다.

근처 암자의 젊은 스님이 상좌처럼 부처님 오신날이면 연등을 달아준다고 했다.

그는 별같은 새끼전구 수백 개를 석등과 탑 가장자리에 장식하여 놓고

크리스마스 때에도 부처님 오신 날에도 불을 밝힌다.

그리웠던 사람들이 방문한 밤에도 그 불들을 모두 밝히곤 한다.

마당 아래 마당에는 연못이 있다.

수십 송이의 수련이 둥글게 피어 그 사이를 노니는 물고기들에게 환한 길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명상을 하고 뒷산과 바닷가를 산책하고

바지락국, 생선국, 취나물, 고사리나물, 엉겅퀴국을 끓여먹으며 산다.


▲ 차를 무척이나 즐긴다.

   감나무가 한껏 바다를 불러들이면 그 나무 그늘 아래서 자주 차를 마신다.

여기가 천국인가 싶다가도 외롭지 않을까 싶어, 하루를 어떻게 지내느냐 묻는다.

“5시 반이면 일어나 글 쓰는 작업을 조금 하고, 산책 후 아침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내게 사는 재미는 매끼 포도주 한 잔씩 하고, 차마시고, 소설 쓰고, 연못에 투영된

또 하나의 우주 보기, 거기에 피어난 수련 꽃과 비단잉어하고 놀기가 고작”이란다.

컴퓨터 앞에 앉아 소설을 쓰다가 가슴이 답답해지면 연못 주위를 바장인다.

수련 꽃에는 황금색 꽃술 60여 개가 있다. 꿀벌이 그 속에 들어가 꿀을 빤다.

그 깊은 은밀한 속을 무람없이 드나드는 그놈에게 질투를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일상이 그에겐 하루도 일상적이지 않다.

아침 산을 오르며 만나는 나무며 꽃, 그것들의 오래고 깊은 향기.

향기 앞에서 아득해진다.

그는, 냄새는 형이하학적이고 향기는 형이상학적이라고 어디선가 적었다.


▲ 대숲을 뒤로 두고, 감나무 그늘에 뭍힌 집. 깊고 아늑하기가 바다 같았다.

비 오거나 풀잎에 이슬이 맺혀 있으면 바닷가 모래밭으로 산책을 한다.

자연 바닷가산책과 아침 산오르기를 번갈아 한다. 연못은 그에게 무엇일까.

그는 전생의 복과 현생의 복과 내세의 복까지를 지금 다 누리고 있는 듯 싶다고 했다.

내세에는 누릴 복이 바닥나서 심심할 것이라고도 한다.


가두어 기르기와 풀어놓기

집안에서도 통유리창을 통해 득량만이 한눈에 들어왔다.

큰 고기들이 알을 낳으러 들어온다는 포구, 자궁모양의 바다, 아, 미치도록

그윽한 모양의 암컷이라는 그의 표현은 너무 적절하다.

집의 내부는 노출 서까래와 함께 두어 개의 방으로 단출하다.

거실은 그가 일용할 양식처럼 파먹은 온갖 책들로 가득하다.

최근 그는 가려진 국학자 ‘초의’스님을 재조명한 소설 <초의>를 출간했다.


▲ 해산토굴. 바다가 잘 보이는 산 기슭에 있는 집. 그가 홀로 용맹정진 하는 곳이다.

조선 후기, 초의(법명 장의순 1786~1866년)의 삶과 수행, 사상, 행적 등에 관한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이곳에서 3년 동안 정진하며, ‘초의’의 실체를 잡기 위해

나주 삼향, 해남 대둔사 일지암과 강진의 다산초당을 수없이 다녀왔다고 한다.

그는 책 서문에서 “지난 몇 해 동안 내내 나는 초의 스님과 함께 살아온 셈이고

그윽하고 향기로운 선풍을 쐰 듯 싶다.

자연 초의 스님이 사귄 여러 선비들과 함께 어울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초의 스님속으로 들어가고 초의 스님이 내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 결과가 이 소설이다.

초의 스님의 행적을 쓰면서 느낀 즐거움과 기쁨은, 그 동안 깜깜한 곳에 묻혀 있거나

축소되었던 부분을 찾아내고 복원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소설 <초의>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세 사람이

같은 시대에 만나게 된 인과관계 및 돈독한 교우관계를 그렸다.

또한 초의가 집필한 ‘동다송’, ‘다신전’을 통해 우리나라 차(茶)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그가 대밭에서 직접 따서 말린 차의 맛은 깊고 그윽했다.

그 그윽함 속으로 후두둑 비가 내렸다. 바다를 지나 마을을 지나 감나무를 지나

해산토굴로, 그에게로 장맛비가 오부지게 쏟아진다.


▲ 작업실로 쓰이는 거실.

그는 비를 ‘우주의 율동’ 같은 거라 한다.

우주의 순환. 바다에서 시작되어 한 생을 돌아 다시 바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작가는 그 순환의 어디쯤을 돌고 있으며 우리는 또 어디쯤을 걸어가는 것일까.

“서울을 버리고 내려온 것은 나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과

“미래가 없으면 시간 앞에서 모든 게 소멸되어 가는데, 나는 어떻게 그 미래를

그려낼 것인가”라는 말.

그 끝에 그는 ‘일상이 전설을 만든다’는 어떤 이의 말을 덧붙인다.

 

 마당 한 쪽의 연못. 수련이나 이름 모르는 풀들, 연못 속의 물고기들

 모두 집주인이 나오면 눈인사를 건넨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의 화해, 참 보기 좋았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바다는 영원한 화두”

그는 스스로를 유배시키듯 왜 이 먼 곳까지 왔을까,

그것 또한 소멸되어 가는 자신을 구하고자 함이었을까.

그는 이에 대해 ‘갇혀 살기’를 이야기한다.

세상을 향해 울타리를 치고 자기를 가두어놓을줄 안다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라는 거.

가두어 놓기란 얼마나 답답하고 아픈 삶인가.

다들 어울려 즐기고 사는데 자기 혼자만 따돌림당한 채 밑지고 사는 것처럼

억울하고 분하고 우울해한다.

결국 자기 외로움을 이겨내는 힘이 없는 사람은 자기를 가둘 수 없다.

가두어놓는 삶을 살며 고독을 씹어보아야 놓여나기, 자유 혹은 초월의 삶을 살 수 있다.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누구나 할 수 있을 만만한 일인가?

더불어 그런 생활을 스스로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니. 오, 안쓰러운 예술가의 영혼이여.

풍경의 바다에서 삶의 바다로, 다시 생명의 바다로.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바다에 관한 한 독보적이다.

그런 그에게 바다를 소재로 소설을 쓸 만큼 썼으면서, 바다가 지긋지긋하지도 않아

다시 바닷가로 왔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그는 그냥 웃는다고 했다.

육지는 다 파먹어서 거덜이 났지만

바다는 미지의 블랙박스이고 인류의 희망이라고 한다.

가시적인 바다와 비가시적인 바다가 있는데, 비가시적인 바다를

화엄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단다.

자신은 그 미지의 세계와 희망과 화엄의 바다에 대하여 얼마든지 더 공부해야 하고

그 결과로 말미암아 찾게 된 진실 속에다가 자신을 파묻기 위해 이리로 왔다고 했다.

“내가 살아있는 한 바다는 영원한 화두”라는 말이 그 뒤를 잇는다.

 

‘이끼류의 체질인 나에게 있어서 바다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짙은 숲그늘이고 습기이다. 


  

봄비가 장미꽃의 님이고 부처가 중생의 님이듯이 바다는 나의 님이다. 
나는 미친 듯이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호흡하고, 
광신도처럼 피가 마를 때까지 바다를 찬미하다가 그것을 끌어안은 채 죽을 것이다’

       - 한승원 산문집<바닷가학교>중에서.


 
출처 : 블로그 > 흙집마을 | 글쓴이 : 비즈니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