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푸드로드] 맨해튼의 K푸드 비틀기

뉴욕 맨해튼의 예술가 거리인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K푸드 식당을 방문했다. 저녁 다섯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식당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았으면 매서운 뉴욕의 겨울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줄을 서야 했을 터이다. 식당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가 전부다. 식당을 찾은 고객들, 심지어는 매니저와 홀 직원, 그리고 주방에도 모두 현지 미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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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촉한 치킨, 파스타 같은 떡볶이
‘국룰’ 깨는 다양한 조리법 정착
좋은 한국 식재료 공급이 우리 몫
」

테이블 위에는 젓가락이 꽂혀 있었고, 국내 식당에서 흔히 보이는, 소주 회사가 판촉용으로 공급하는 두꺼비가 그려진 플라스틱 물통에 물이 담겨 나왔다. 우선 홀 직원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도 할 겸 맥주와 함께 한국 소주를 주문했다. 곧 뉴욕의 수제 맥주와 함께 소주가 나왔는데, 홀 직원은 한국의 ‘소맥’ 문화를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직원의 설명을 꼼꼼히 들은 후, 그가 시킨 그대로 뉴욕의 수제 맥주에 한국 소주를 함께 섞어서 마셨다. 뉴욕에서 미국인 직원이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만든 ‘소맥’이라니! 새로운 감흥이다. 이제는 한국의 식문화뿐만 아니라 음주 문화도 뉴욕 한 중앙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메뉴판에서 ‘한국식 프라이드치킨’과 ‘떡볶이’를 주문했는데,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만난 ‘치킨’의 모습은 닭강정에 가까웠다. 그런데 곰곰이 보니 모양이 조금 독특하다. 닭강정은 튀긴 후 마지막에 양념으로 볶아도 그 겉은 바삭하게 유지하는 게 대한민국 ‘국룰’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곳의 닭강정은 미국의 중식당에서 흔히 먹는 ‘General Tso’s Chicken(제너럴 쏘 치킨·좌종당계)’처럼 웍(wok)에서 꽤 오래 볶아 튀김 옷에 양념이 충분히 밴 촉촉한 음식이었다. 음, 우리나라의 탕수육 찍먹파들이 보면 화를 내겠군. 겉 양념이 고추장 베이스라는 것을 제외하면 튀김 자체는 미국식 중식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음식에는 의외의 방식으로 K푸드의 터치가 또렷했는데, 깍뚝 썰기를 한 하얗고 새콤한 치킨 무가 닭강정 위에 올려져 나왔다. 묘한 조합이다. 따뜻한 치킨 위에 올려진 차갑고 아삭한 치킨 무. 아, 우리는 왜 이런 조합은 상상하지 못했을까? 우리에게 치킨과 치킨 무는 별개의 것이어야 하는 음식들인데, 그런 선입견이 없는 미국에서는 ‘응, 치킨 위에 치킨 무를 함께 올려보자고. 치킨을 바닥에 깔고, 무는 물기를 털어 위에 올려봐. 보기도 좋고 함께 먹으면 아삭이는 식감이 좋지 않겠어?’라는 상상력이 현실이 된다. 이 음식에서 식감의 담당은 튀김옷이 아닌 치킨무다. ‘왜 그래야 해?’라고 묻지 않는다.
이어서 떡볶이가 나왔다. 떡볶이 떡은 기름에 볶았다. 그리고 바삭한 식감을 더하기 위해 일본식 빵가루인 ‘판코(panko)’를 수북이 올렸다. 떡 겉면에 묻어 있는 유분(油分)에 판코가 들러붙어, 마치 떡의 겉면이 바삭하게 튀겨진 듯한, 그러나 입안에서는 매우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식감을 자아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떡볶이 소스였는데, 간 고기와 함께 볶아 마치 이탈리아 파스타에 사용하는 라구(ragu) 소스와 비슷한 질감을 냈다. 그리고 맨 위에 파르메산 치즈를 갈아 올려, ‘여러분, 떡볶이는 말하자면, 한국의 파스타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블랙 올리브처럼 보이는 것이 함께 들어가 있었는데, 맛을 보니 한국식 간장 절임으로 만든 할라피뇨 장아찌다. 이 친구는 강렬함을 담당하고 있다. 떡볶이와 장아찌의 조합. 왜 안돼?
피자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는 피자 위에 감자·고구마 같은 구황 작물을 올리지 않는다. 그런 상상조차 어렵다. 그러나 ‘피자는 이래야만 한다’는 선입견이 없는 우리나라에선 피자 위에 과감하게 감자나 고구마를 얹는 시도를 한다. 실제 인기 메뉴다. 어떤 관행이 규범화되어 그 사회에 문화로 뿌리 깊게 내리게 되면, 그 규범을 깨는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규범이 없는 곳에서는 오히려 자유롭게 비튼다.
비틀린 뉴욕의 치킨과 떡볶이는 잘못된 음식인가?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한국의 좋은 식재료를 공급해 재밌게 가지고 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그들이 우리 식문화를 더욱 다채롭고 풍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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