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박물관]①이렇게 맛있는데 '조만간' 1등 하지 않겠습니까
오뚜기 '진라면', 1988년 3월 출시 이후 시장 2위까지 성장
‘입맛 록인 효과’ 센 식품업계서 파란
한참 앞서가던 '신라면', 이제 턱밑까지 추격
13년째 가격 동결…광고 카피처럼 ‘1등’ 할 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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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10-29 오전 5:10:00
수정 2020-10-29 오전 5:10:00
전재욱 기자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오뚜기 ‘진라면’은 1988년 출시 이후 단 한번도 1등을 하지 못했다. 2년 먼저 나온 농심 ‘신라면’보다 늘 뒤에 있었다.
단지 맛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게 식품업계 섭리다. ‘먹던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들 하지 않던가. 수십 년 된 장수 브랜드가 식품업계에 유독 즐비한 걸 보면, 입맛은 쉬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선점 효과가 중요한 게 먹는 시장이다. 33년차 중견 브랜드(진라면)도 2년 선배 앞에서는 기를 펴기 어려웠다.
‘삼양라면’ 제치고, ‘신라면’과 초 격차
진라면은 굴하지 않았다. 2006년 TV 광고에는 이런 카피도 있었다. ‘이렇게 맛있는데 언젠가는 1등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2009년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닐슨·이하 판매량 기준)은 신라면이 25.6%, 진라면이 5.3%였다. 판매량으로 5배나 차이가 났다. 신라면의 아성을 깨려면 당시 2위였던 삼양식품의 ‘삼양라면’부터 제치는 게 순서였다. 하물며 진라면은 농심의 다른 라면 브랜드인 ‘너구리’나 ‘안성탕면’보다도 판매량에서 달렸다. 1등에 오를 것이라는 진라면의 목표는 허풍에 가까워 보였다.
진라면은 이러한 시장의 평가를 깨나가면서 주목받았다. 2012년 삼양라면을 제치고 점유율 2위에 오른 것이 시작이었다. 출시 24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삼양라면은 1963년 출시된 국내 최초의 라면이었다. 그래서 시장은 진라면의 선전보다, ‘원조라면’ 삼양라면의 퇴락에 주목했다. 라면 시장 주도권은 여전히 신라면이 쥐고 있었다. 당시에도 비관론자들은 이렇게 봤다. 진라면의 파란은 만년 2위에 만족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그러나 진라면이 일으킨 물결은 파도가 돼 퍼져 나갔다. 이제는 라면 시장을 ‘여전한 1위’와 ‘만년 2위’로 구분해 설명하기엔 조심스럽다. 지난해 말 라면 시장 점유율은 1위 신라면이 15.5%, 2위 진라면이 14.6%다. 둘의 격차는 1%포인트(p)대로 줄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더 고무적인 것은 2012년 삼양라면을 이겼을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신라면이 못했다기보다, 진라면이 잘한 결과라는 데에 시장은 주목한다.
맛으로 망한 자, 맛으로 흥하려면
사실 입맛은 변한다. 변하기 어려울 뿐이다. 1986년 나온 신라면도 삼양라면에 비하면 한참 후발주자였다. 그러다가 현재 1위까지 올라온 것이다. 입맛을 바꾼 비결은 결국엔 ‘맛’이다. 진라면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라면이 출시된 배경을 짚어보면 맛으로 승부해온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오뚜기 라면의 전신은 1984년 설립한 청보식품이다. 청보식품은 라면을 주력으로 하는 식품 기업인데 경영난을 겪다가 1987년 오뚜기에 흡수 합병됐다. 청보식품이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유는 여럿인데 맛이 떨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오뚜기는 청보식품을 둘러싼 이런 시장의 인식을 극복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그러려면 맛부터 혹독하게 바꿔야 했다. 그렇지 않고 예전처럼 허투루 제품을 내놓았다가는 안 하는 것만 못했다. 그간 조미와 즉석 식품에서 쌓아온 회사의 명성이 무너질 수 있었다. 라면을 계기로 종합 식품회사로 거듭나겠다는 회사의 구상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환골탈태에 버금가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렇게 맛있는데 언젠가 1등을…”
이런 과정을 거쳐 1988년 3월 탄생한 오뚜기의 첫 라면이 진라면이다. 제품명(名)의 ‘진’은 국물이 진한 라면이라는 의미다. 국물을 선호하는 한국인 입맛을 고려한 작명이다.
제품은 시장의 요구를 유연하게 반영해온 것이 특징이다. 입맛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게 제품에 담긴 철학이다. 출시 초기 나트륨 함량이 높다는 지적을 받고서 대폭 낮춘 게 대표적이다. 쇠고기 맛 플레이크와 당근, 대파, 버섯 등 건더기 양을 늘린 것도 소비자 요구를 따른 것이다. 밀단백을 추가해 면발의 식감을 살린 것도 마찬가지다.
맛은 출시부터 지금까지 매운맛과 순한맛 두 가지로 나뉜다. 진라면 매운맛은 하늘초 고추를 써서 맛이 깊다. 자극적인 매운맛과 결이 다르다는 게 오뚜기 설명이다. 진라면 순한맛을 내놓은 것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매운맛 일색이던 라면 시장에 잠겨 있던 순한 수요를 끌어냈다. 2014년 롯데마트 전국 113개 점포의 진라면 전년대비 매출 성장률은 매운맛이 36.6%, 순한맛 24.7%였다. 덜 매운 맛을 찾는 이가 있다는 의미다.
가격 경쟁력도 진라면의 선전에 힘을 보탰다. 2008년 이래 올해까지 13년째 가격이 그대로다. 맛은 바꿔도 가격은 그대로 둔 점에서 소비자 신뢰를 쌓았다.
오뚜기 관계자는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통해 진라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계획”이라며 “2006년 광고 카피처럼 언젠가는 1등을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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