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호와 함영준의 '라면전쟁'
- 함영준 매주 진라면 맛보며 리뉴얼, 신춘호의 신라면 철옹성 깰 수 있을까
▲ 함영준 오뚜기 회장(좌)과 신춘호 농심 회장(우) |
35억2천만 개.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 동안 먹는 라면의 숫자다.
세계라면협회 발표를 보면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72.4개로 세계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963년 삼양라면이 배고픔을 해결해 주기 위해 처음 라면을 선보인 이후 딱 50년 만인 지난 2013년 라면 시장이 2조 원을 돌파했다.
35억 개의 라면을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이 치열하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4개 업체가 매일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농심은 신라면, 짜파게티 등을 내세워 30년째 라면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2010년 70.7%에서 2013년 66.5%로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철옹성이다.
그 난공불락 같은 농심을 향해 오뚜기가 거세게 공략하고 있다. 오뚜기는 지난해 삼양식품을 제치고 업계 2위 자리에 올랐다. 오뚜기는 2010년 시장점유율 7.4%로 업계 4위였다. 그러나 2013년 13.5%까지 시장점유율을 올렸다. 이 기간에 라면 시장에서 점유율이 오른 것은 오뚜기가 유일하다.
◆ 함영준 오뚜기 회장, 집념의 진라면 세차례 리뉴얼
라면전쟁에서 오뚜기는 이미 강력한 진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 농심이라는 철옹성을 공략하기 위한 전투를 개시하고 있다.
그 중심에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있다. 매주 경영진을 모아놓고 라면 시식회를 열 정도로 라면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함 회장은 오뚜기 창업주 함태호 회장의 외아들이다. 1977년 오뚜기에 입사해 2000년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고 2010년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장이 됐다. 함 회장은 취임 후 차와 건강식품 등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그 다각화의 중심에 라면을 놓았다.
오뚜기가 라면 시장에 뛰어든 것은 1987년이다. 국내 라면회사 중 가장 늦다. 오뚜기는 청보식품의 라면 사업을 1987년 12월에 인수해 라면 생산을 시작했다. 청보식품의 라면은 삼양이나 농심보다 맛이 없다는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이 이미지는 오랫동안 오뚜기 라면을 괴롭혔다.
오뚜기의 주력 라면인 진라면은 1988년 출시됐다. 그러나 신라면, 안성탕면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범한 맛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맛이 맹맹하다는 야박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마디도 가격도 싸고 맛도 없는 라면으로 인식됐다.
함 회장은 진라면을 바꿔내는 데 주력했다. 경영진들을 모아놓고 시식을 한 뒤 맛을 개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라면은 지난 3년 동안 세 차례나 맛을 리뉴얼을 했다. 부족한 매운맛을 강화하기 위해 ‘하늘초 고추’를 사용하고, 스프에 쇠고기 플레이크, 당근, 버섯, 청경채, 대파 등을 첨가해 맛을 보강했다.
매주 경영진을 모아놓고 시식을 하는 등 맛으로 승부를 보자는 함 회장의 전략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이 나왔다. 지난해 초 세 번째 리뉴얼을 한 뒤 신라면보다 맛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냈다.
진라면은 2013년 매출이 33%나 급증했다. 매출도 1040억 원을 기록했다. 라면 제품 중 1천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린 것은 농심의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 안성탕면과 삼양의 삼양라면에 불과하다. 진라면은 6번째로 매출 1천억 원을 돌파했다. 국내 라면의 종류는 판매되는 것만 해도 90여 종에 이른다.
류현진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뒤 그를 기용한 광고도 진라면의 매출 확대에 기여했다. 류현진의 ‘진’과 진라면의 ‘진’을 결합해 인지도를 높인 광고다. 류현진에 대해 2년 계약에 20억 원 가까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현진을 기용한 진라면 광고가 나가면서 진라면의 1~2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나 늘었다. 이대로라면 진라면은 올해 라면 브랜드 ‘삼양라면’을 제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브랜드 삼양라면의 매출은 1100억~1200억 원대다.
함 회장은 올해 라면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포부를 내놓고 있다. 라면시장 2위 자리를 공고히 한 뒤 농심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워놓았다. 함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라면 매출 극대화’를 내세웠다.
◆ 신춘호 농심 회장의 신라면 철옹성
농심은 아직 오뚜기를 라이벌로 보지 않는다. 워낙 1위 자리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2011년 꼬꼬면의 인기로 하얀 국물 라면이 라면 시장의 판도를 재편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으나 결국 한때의 바람에 불과했다. 신라면과 농심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때문에 오뚜기의 진격을 바라보는 농심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다.
▲ 2013년 라면시장 점유율은 농심이 1위, 오뚜기가 2위다. <뉴시스> |
신라면의 이름은 신춘호 회장의 성을 따와 만든 것이다. 신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브랜드다. 그만큼 신 회장은 신라면에 대한 애착이 깊다.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라는 카피 문구 역시 그가 직접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등 다른 라면 카피 문구도 만들었다. 라면 개발부터 광고까지 모든 과정에 힘을 쏟는다.
신라면은 세계 80여 개 나라에서 300만 개가 팔린다. 2013년까지 신라면의 누적판매량은 230억 개다.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를 105바퀴 정도 돌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신라면은 연간 매출 7천억 원을 올린다. ‘식품업계의 반도체’라 불릴 정도다. 한국 대표 수출품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실패도 있었다. 2011년 프리미엄 라면으로 야심 차게 내놓은 ‘신라면 블랙’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심은 신라면 블랙을 내놓으며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고 광고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가 허위 과대광고로 판정해 과징금 1억5500만 원을 부과했다. 신라면과 별 차이 없는 영양가인데도 가격은 두 배가 넘어 소비자들도 외면했다. 결국 신라면 블랙은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러다 1년 만에 신라면 블랙을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신라면 블랙 개발에 쏟은 신 회장의 각별한 관심이 신라면 블랙을 되살렸다. 다시 출시된 신라면 블랙은 나트륨 함량을 줄이고 사골 맛을 보강했다. 박준 농심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신라면 블랙의 파워 브랜드화”를 과제로 내세웠다.
농심은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지난해를 ‘글로벌 시장 공략 원년’으로 정했고 올해는 100개국 수출 목표를 세웠다. 올해 해외 매출 목표는 5억6천만 달러다. 마침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크게 흥행한 데 힘입어 중국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농심의 중국법인인 ‘농심 차이나’는 올해 1~2월 매출 3천만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신 회장이 롯데공업에서 라면 사업을 시작할 때 신격호 회장과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계기로 롯데공업을 농심으로 바꾸고 독립했다. 신 회장의 장남은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고 차남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과 삼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을 슬하에 두고 있다. 신동원 부회장과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은 농심 사내이사로 선임돼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김디모데 기자 Timothy@business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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