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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값을 받아야 하는 5가지 이유

곡산 2013. 8. 7. 14:38

제값을 받아야 하는 5가지 이유

 

 

김재문 | 2004.12.10 | 주간경제 810

 

불황이 지속되면서 가격으로 경쟁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가격 인하의 효과는 오래 가지 않으며, 여러가지 부작용이 많다. 가격 인하를 하지 않고 경쟁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요즘 같은 불황에는 가격을 내려서라도 매출을 일으키고 싶은 유혹이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당장 지급해야 할 비용은 많은데, 잘 팔리지 않으니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격을 내리면 일단 팔리기는 할 것 같은데, 줄어들 이익이 또 걱정거리로 등장한다.

그런데, 가격 인하는 진통제와 같아서 그 효과는 오래 가지 않는다. 그 뒤에는 긴 어려움이 뒤따르게 된다.

컨설팅 업체인 매킨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S&P 1500개 기업의 경우, 가격을 1% 내리면 8%의 영업 이익 감소 효과가 있다고 한다. , 5%의 가격 인하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19%의 매출 증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매킨지는 대부분의 산업에서 이 정도 수준의 가격 탄력성을 보이기는 매우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가격 인하는 기업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부정적 영향은 수익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객 만족도 저하

흔히 고객이 제품을 싸게 사면 만족도가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나오기도 한다. , 가격을 인하해서 싸게 판매하면 고객 만족도가 낮아지는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통해 아동복을 판매하는 소호(SOHO) 사업을 운영하는 A씨는 고객의 구매 만족도 평가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다. 똑 같은 제품을 구입한 사람들 중 싸게 구입한 사람의 만족도가 비싸게 구입한 사람보다 대체로 더 낮게 나타난 것이었다.

만족도라는 것이 기대했던 것에 대한 품질이나 성능을 의미한다면, 싸게 구입한 경우 기대가 낮았으니 만족도가 더 높아야 함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모순된 결과가 나왔을까.

가격과 고객 만족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흔히, 고객 만족도는 심리적 기대 대비 만족 수준에 대해서 주로 연구할 뿐, 구매 상황이나 구매 조건에 따른 만족도는 소홀하게 다루어진다. 따라서, 이에 대한 검증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싼 값에 구입한 고객의 만족도가 낮은 이유를 조심스럽게 추론해보면, 인지 부조화를 회피하려는 소비자의 심리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비싸게 구입한 물건에 대해서는 비싼 가격을 지불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스스로 만족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면, 싸게 구입한 상품에 대해서는 스스로 만족해야 할 이유가 없다. 불만족스러워도 싼 게 그렇지. 싼 걸 사는 게 아니었는데라고 부담 없이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생각에 뒤 이어 다음 번에는 좋은 걸로 사야겠다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할수록 그 물건에 대한 만족도는 더 낮아지게 된다.

다만, 싸게 산 사람들 중에도 만족도가 아주 높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그 물건의 적정한 가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곳에서 팔리는 가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더 좋은 조건에 샀다는 생각에 흐뭇해 하게 된다.

,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격을 인하하더라도, 고객이 자신만 싸게 사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고객의 마음을 기업이 좌지우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대부분의 가격 인하는 고객의 만족도를 낮추는 쪽으로 귀결되기 쉽다.

 

 

가치 사슬 부실화

기업이 고객에게 싸게 팔면, 그 다음에는 협력업체의 납품 가격을 깎는 경우가 많다. 이익의 감소분을 협력업체에 전가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단기적으로는 자사의 이익을 보전해준다.

그러나 협력업체가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가격 인하에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협력업체에게 가격 인하를 종용하면, 비용 절감을 위해 새로운 기술 개발에 소홀할 수도 있고,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자사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만일 우리 회사의 협력업체가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면, 우리 회사를 버리고 다른 고객을 찾아 나설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결국 그 협력업체가 생산성 혁신을 하든 못하든 간에 자사 입장에서는 좋은 물건을 공급 받을 기회는 사라지는 셈이다.

혁신 의지 상실

퀀텀 펀드의 설립자인 짐 로저스는 경제적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요인 중 하나로 환율 절하에 의한 가격 우위를 꼽는다. 환율 절하는 일시적인 수익 증가로 이어지지만, 여기에 안주하게 되면 기업은 본원적 경쟁력 확보에 소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가격 인하 시에도 마찬가지로 발생할 수 있다. 가격을 내려서 매출이 일시적으로 증가하게 되면, 기업 구성원들의 위기 의식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기업이 자사의 제품 가격을 자꾸 내리면, 조직 문화나 인재 채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같은 수준의 매출, 이익을 올리는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판매하는 제품의 수준에 따라 기업 구성원들의 가치관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고급 제품을 취급하는 회사의 경우 조직 문화도 고급, 세련된 경우가 많다. 반대로, 중저가 제품을 취급하는 경우 조직 문화도 그와 유사하게 형성된다. 이러한 조직 문화는 신규 채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명품 브랜드를 판매하는 회사의 경우, 급여 등 근무 조건이 특별히 좋지 않아도 인재를 채용하는데 유리한 위치에 서는 경우가 많다.

추가 가격 인하 압박

기업이 가격을 자주 인하하면, 고객은 기업이 또 다시 가격을 인하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같은 기대는 주로 바겐 세일과 같은 일시적 가격 인하 행사에 대해 나타난다. 하지만, 신제품의 가격을 기존 제품보다 더 낮게 책정하는 등 가격으로 승부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기업의 경우, 상시적 가격에 대해서도 고객은 더 낮은 가격을 기대할 수 있다.

고객이 가격 인하를 기대하는 경우, 고객은 구매할 의향이 있는 경우에도 구매 시기를 늦추는 행태를 보일 수 있다. 이럴 경우, 기업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발매 초기의 구매를 이끌어 낼 수 없어, 지속적인 저수익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국내의 B백화점은 가격 인하 행사를 자주 실시했으며, 그 부작용으로 정상 가격의 고급 제품 매출은 감소하고 백화점으로서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잃어버렸다. 프리미엄 이미지를 잃어버린 백화점은 고급 백화점과 할인점 사이의 어정쩡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고객에게 싼 가격으로 승부를 하겠다는 전략이라면, 지금이 가장 낮은 가격이라는 인식을 고객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예컨대, 미국의 월마트는 경쟁 업체에 비해 가격이 더 저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회사는 바겐 세일을 하지 않고 지속적인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사가 항상 저렴하게 판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 결과 고객은 가격 인하를 기대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구매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월마트의 주요 경쟁 상대였던 K마트는 실제 가격은 월마트보다 더 낮은 수준이었으나, 고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더 싼 가격을 요구했다. 결국 고객의 기대만큼 가격을 낮출 수 없었던 K마트는 파산하고 말았다.

위기 대응 능력 소진

많은 기업들에게 가격 인하는 비상 시기에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이 카드를 미리 사용한 기업은 진정한 비상 시에 활용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이미 써버린 형국이 되어 버린다.

매출 압박을 받는 기업은 지금이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정한 위기는 뒤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가격 인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미뤄두고, 다른 방법부터 먼저 실행해보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지금까지 가격 인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물론, 기업에 따라서는 가격 인하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부작용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예컨데, 공격적 영업으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경우, 또 자사의 마케팅 전략이 가격에 매우 민감한 소비자 집단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등은 적극적인 가격 인하를 전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같은 수준의 제품 카테고리에서 더 낮은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여러 가지 면에서 좋지 않다.

가격 인하 함정을 피하는 방법

기업이 가격 인하를 하는 것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더 높은 가격을 받고 싶은 것은 기업지상정(企業之常情)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단정짓기 전에, 가격 인하 외의 다른 대안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유통망 관계 강화

가격 인하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으로는 먼저 유통망과의 관계 강화를 들 수 있다. 고객의 자발적 선택을 강조하는 풀(Pull) 마케팅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유통망에 대한 관계 강화는 다소 진부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유통망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일은 풀 마케팅을 위한 기반이 된다.

예를 들어, 유통망과의 좋은 관계를 바탕으로 우리 회사 제품을 좀 더 좋은 위치에 진열할 수 있다면, 고객에게 선택될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가격 인하 대신 유통망의 관계를 강화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가격 인하분 만큼을 유통망의 이윤이나 판촉 비용으로 돌리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유통업체의 이익만 올려주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사실, 기업이 출혈을 감수하면서 실행한 가격 인하의 혜택을 유통업체가 누리게 하는 것은 속 쓰린 일이다. 그러나 유통업체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고서라도 자사의 브랜드를 강화한다면, 추후 유통업체의 마진을 낮추면서 자사의 이익을 높일 수 있다. , 유통업체와의 관계는 뒤집을 수 있다. 그러나, 고객에게 낮춘 가격은 다시 올리기 어렵다.

브랜드 분리

기존 브랜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가격 민감도가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대표적 방법은 별도의 저가 브랜드를 내는 것이다.

이때, 별도의 저가 브랜드와 기존 브랜드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측면에서는 기존 브랜드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는 시장에 정착시키는데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저가 브랜드를 출시하는 이유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데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충분한 마케팅 비용을 쓰기는 어렵다.

결국 기업들은 기존 브랜드에 EX, AX 등의 수식어를 붙이거나, ‘by ABC’와 같은 식으로 기존 브랜드의 후광 효과를 누리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같은 브랜드 확장은 기존 브랜드의 이미지를 저하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한편, 신규로 출시하는 저가 브랜드에 대해서 장기적으로 육성할 계획을 갖지 않고, 저가 제품 선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희생시키는 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면, 이 브랜드는 기존 브랜드로부터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 이런 브랜드를 싸움꾼 브랜드(Fighter Brand)라고도 하는데, 기존의 자사 제품 브랜드는 물론, 자사의 기업 브랜드도 이 브랜드와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가 아이템 도입

별도의 저가 브랜드를 내는 것은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필요로 한다. 이보다 더 쉽게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은 제품 믹스 내에 저가 아이템을 강화하는 것이다.

기존 브랜드 내에 특정 제품 아이템을 기획 상품 등의 형태로 발매하여 가격 민감형 소비자를 흡수할 수 있다. 흔히 로스 리더(Loss Leader)라고도 하는 이 저가 아이템은 싼 가격으로 팔림으로써 매출을 올려주는 것 이외에, 고객을 유인하는 역할도 한다. , 로스 리더는 이를 찾아 매장에 왔다가 다른 물건을 구입하게 하는 미끼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저가 아이템을 브랜드 내의 기존 제품 믹스와 어떤 차이가 나도록 만들 것인가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기존 제품 믹스에 비해 품질이나 디자인이 크게 떨어진다면 고객에게 외면 당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수준을 높이면, 기존 제품 믹스의 매출이 줄어드는 제살깎기 현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 판매하지 않는 별도의 제품 라인에 로스 리더를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성 의류 업체의 경우, 기존에 취급하지 않았던 악세서리나 가방 등에 저가 아이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패키지 판매

가격 인하 대신 일부 제품을 끼워주는 패키지 판매를 할 수도 있다.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이점을 지닌다.

첫째, 끼워주기의 경우 직접적인 가격 인하에 비해 고객이 싸구려라는 생각을 덜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자사 입장에서는 끼워주기를 통해 재고품을 없앨 수도 있다.

그런데, 패키지 판매가 이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패키지 판매 이전에 구입한 정상 구매 고객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 , 재고떨이 식으로 인기 없는 제품을 끼워 파는 경우는 고객의 불만을 살 수도 있다. 한편, 잘 팔리는 제품을 끼워줄 경우, 그 제품에 대한 매출 감소가 일어나 회사 전체로 보면 매출 증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같은 부작용을 고려해 볼 때 바람직한 패키지 판매는 다른 회사와의 제휴에서 찾을 수 있다. 잡지를 구입하면 잡지 가격보다 더 비싼 제품을 끼워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잡지의 신뢰성이나 품격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좋은 제품을 끼워 줄수록 잡지의 이미지는 올라가기도 한다. 이러한 제휴에 의한 패키지 판매는 다른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예컨데, 여성 의류와 화장품의 경우 마케팅 차원의 제휴가 이루어지기 좋은 대상이다.

가격 인하는 진통제와 같다. 잠깐 동안은 매출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궁극적인 처방은 되지 못한다. 가격 인하 이전에 다른 마케팅 수단을 찾아보고, 그와 함께 본원적인 경쟁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에 힘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