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전반

송기호 변호사의 식품법 칼럼 ② 오프라윈프리 : 식품안전보도가 안전하려면

곡산 2007. 5. 1. 14:39
송기호 변호사의 식품법 칼럼 ② 오프라윈프리 : 식품안전보도가 안전하려면

오프라윈프리 : 식품안전보도가 안전하려면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신을 신발이 없을 만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진행하는 오프리 윈프리 쇼는 1976년부터 미국의 낮 TV 토크쇼의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그녀가 토크 쇼에서 다루는 주제는 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리즈 위더스푼(Reese Witherspoon) 초대와 같은 연예인 사생활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성폭력, 이혼, 학대받는 아내, 소수자의 인권과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하여도 발언한다. 그리고 대중을 움직인다.

1996년, 오프라는 ‘위험한 식품’이라는 주제로 방송을 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에도 광우병이 퍼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다루었다. 이미 영국에서 1985년 광우병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인명피해가 났었기 때문에 미국 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다. 프로그램의 한 출연자가 미국 축산 실태를 볼 때, 미국소도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방송 직후, 미국 쇠고기 시장은 요동을 쳤다. 가격은 폭락하였다. 결국 미국 축산업계는 오프라가 방송에서 허위 비방(false disparagement)을 하였다면서 그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미국 축산업계는 패소하였다. 출연자가 고의로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하여 허위 사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출연자의 주의의무 위반과 허위 주장, 곧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가 입증되지 않았던 것이다. (2003년에 마침내 미국에서도 광우병이 발생하였다.)
 
통조림 포르말린 허위 보도 사건
 
식품 안전 보도에서 언론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언론사가 식품안전과 관련된 보도를 할 때, 지켜야 할 경계는 어디일까?

우리 사법부는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다. 첫째, 언론의 자유로서 보호받으려면 보도의 목적이 비방이 아닌 공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적어도 주요한 동기가 공공의 이익이어야만 언론의 자유로 보호된다.

둘째, 보도 내용이 진실한 것이어야 하며, 만일 일부 허위 내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 질 경우에는 언론사가 진실하다고 믿을 만하였던 객관적인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1998년, 서울지방검찰청은 ‘유해식품사범단속결과’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였다. 그리고 검찰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검찰은 A식품회사 통조림이 포르말린을 넣어 만든 사실을 수사결과 적발하였고, A사에 통조림을 납품한 회사의 대표 B와 공장장 C를 기소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B와 C는 이미 구속 중이었다. 이들은 검찰 수사과정에서 자신들이 통조림에 포르말린을 첨가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일관하여 부인하였다.

이런 와중에도 검찰은 위와 같이 기자회견을 하였다. 신문사들은 검찰 발표 내용 그대로 ‘통조림에 발암물질’, ‘발암통조림 10억대 유통’, ‘식탁에 독극물?’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보도하였다. 신문을 본 소비자들은 경악하였다.

그러나 B와 C는 서울지방법원에서 1999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통조림에서 검출된 것은 포르말린이 아니라, 포름알데하이드(Formaldehyde)라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는 ‘자연 상태의 많은 식품 중에 천연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 결국 A사 통조림에서 검출된 포름알데하이드는 통조림 제조 과정에서 첨가된 물이나 양념에 천연적으로 존재한 것일 수 있었다. 반면 B와 C가 포름알데하이드를 ‘화학적 합성품’으로 통조림에 첨가하였다는 증거는 없었다. 결국 검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신문의 보도는 허위보도가 되었다. 그러나 A사와 B, C의 명예는 이미 땅에 떨어진 뒤였다.  

무죄를 선고받은 A사와 C는 검찰과 신문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검찰의 배상책임은 인정되었다. 하지만 신문사들의 보도가 과연 적법한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앞에서 본 사법심사 기준을 적용하였을 때, 신문사들이 허위 보도 내용을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느냐가 쟁점이 되었다. 법원은 신문사들의 입장을 옹호했다. 보도의 내용이 신속성을 요하고, 수사를 직접 담당한 부장 검사가 공식 절차에 의한 발표 형식을 취하였고, B, C가 구속되어 있어 신문사들이 직접 취재를 통하여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판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과연 A사의 명예는 무죄판결로 회복되었을까? 이 사건에서 신문사들은 A사에 대하여 사실 확인 취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특히 기사의 제목을 ‘발암통조림’ ‘식탁에 독극물?’과 같은 자극적이고 단정적으로 뽑았다. 이는 여론 형성 기여라는 언론 자유의 목적에 적합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넘은 것이다. 
 
식품안전보도에 어떻게 대응할까?
 
식품회사의 입장에서 식품보도의 문제에 대하여 법률적으로 대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헌법에는 언론 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있다고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업계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한 사건을 보자. 1994년 9월 지방의 D 신문사는 ‘수입음료에 표백제’라는 제목을 크게 뽑았다. 그리고 E 사가 수입하는 맥주 대용 미국산 저알콜 맥아 음료에서, 표백제로 사용되는 ‘메타중아황산칼륨’이 검출되었다고 보도하였다. D신문사는 모두 6회에 걸친 시리즈 기사를 실었는데, ‘시약 없다 발암물질 검사 포기’ ‘수입 음료 그냥 통과시켜’라는 제목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E사의 해당 제품명과 제품 사진을 실었다. 또한 같은 기사에서, ‘에리소르빈산나트륨’에 함유된 비소나 중금속의 순도가 기준치 이상 잔류된 상태에서 섭취할 경우 체내에 축적돼 암 등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도하였다. 

그런데 밝혀진 사실은, E사의 제품에서 검출된 위 성분은 어디까지나 식품위생법상 첨가물인 표백제였다. 그리고 검출된 농도도 식품위생법령이 정한 기준치 이내였다. 특히 D 신문사가 발암물질인 것인 양 보도한 에리소르빈산나트륨은 처음부터 검출되지도 않았다. E사는 D 신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법원은 1998년, D신문사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다. E사의 제품이 마치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인체에 유해한 제품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어 E사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인정하였다. 법원은 D 신문사가 보도 내용이 진실한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식품위생법령상의 허용 기준치 이하의 첨가물이 함유된 제품에 관하여 국민의 알 권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E사의 제품 사진과 제품명을 직접 밝혀 게재한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E사의 제품에는 검출되지 아니한, 다른 첨가물에 관한 기사에서 E사의 제품명을 거론하면서 첨가물 검사를 받지 않고 통관되었다고 보도한 것도 언론의 자유로 인정될 수 없다고 하였다.
 
사전 금지
 
비록 D 신문사의 손해배상책임은 인정되었지만, 이미 땅에 떨어진 E사의 명예가 원상대로 복구 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쓰레기 만두’ 라는 언어 폭력적 보도로 인한 피해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식품회사의 명예 훼손과 영업 손실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의 방법은 보도 및 방영 금지 가처분이다.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은 1999년엔 MBC  ‘PD수첩’의 일부 내용에 대하여, 2001년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해당 분 전부에 대하여 방영금지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물론 식품안전 방송 사건들은 아니었다.

서울고등법원도 방영금지가처분이 언론자유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헌법재판소도 실효성 있는 구제를 위하여 가처분에 의한 사전금지청구가 인격권 보호라는 목적에서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사전금지를 활용하려면, 보도의 특정 내용이 객관적이지 않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이 좋다. 
 
정정보도와 반론보도
 
식품회사의 입장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도가 언론중재위원회의 정정보도와 반론보도제도이다. ‘정정보도’란 언론의 보도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진실하지 아니한 경우 이를 진실에 부합되게 고쳐서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달리 ‘반론보도’란 보도내용의 진실 여부에 관계없이 그와 대립되는 반박적 주장을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언론보도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식품회사는 정정보도와 반론보도 및 손해배상을 언론사에 직접 청구할 수 있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할 수 있다. 시한은, 언론보도가 있음을 안 날부터 3월 이내에, 당해 언론보도가 있은 후 6월 이내에 제기하여야 한다. (만일 식품회사가 언론사에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였는데, 언론사로부터 거절된 경우에 조정 제도를 활용하려면 14일 이내에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여야 한다.)

조정 절차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합의를 권유하는 절차이다. 쌍방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조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한편 쌍방은 언론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를 것을 미리 전제하고 중재절차를 신청할 수 있다. 중재결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 곧 더 이상 불복할 수 없다. 

2005년에 883건의 조정신청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있었다. 이 가운데 62%가 합의되거나 조정안에 동의하였다. 다만, 이 제도도 사후적 구제라는 한계가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앞의 사건에서 법원은 D신문사에게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과연 이 돈으로 E사의 명예와 영업 피해가 원상 회복되었을까? 이런 점에서 영미법의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재발 방지를 위한 징벌의 의미로 배상액을 추가 부과하는 것이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의 토론 자료에 따르면, 언론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의 경우 10배까지 추가 배상을 부과하자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이렇게 되면 D 신문사는 3억 원까지를 배상해야 한다. 
 
소비자의 알 권리
 
식품산업이 성장하는 데에 소비자의 신뢰가 필요하다. 그리고 소비자에게는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알 권리는 진실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미디어 오늘’에 기고한 안상운 변호사의 견해처럼, 언론의 자유에 허위의 사실을 알릴 자유는 포함되지 않는다. 식품안전보도는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보도의 진실성을 뒷받침할 적절하고도 충분한 취재가 있어야 한다. 식품안전보도가 ‘안전’할 때, 소비자의 바른 선택에 유익한 언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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