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어둔골의
외딴지기
이보다 더한 산골 오지일 수는 없다.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어둔골-
김삿갓 묘소가 있는 노루목 마을에서도
천 미터가 넘는 마대산 골짜기를 파고들기 2km 남짓의 거리.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이기에 개울물을 무려 일곱 번을 건너야 한다.
물론 승용차는 들어가지 못한다.
사륜구동 정도라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원시의
계곡이다.
어둔골은 김삿갓이 멸문의 화를 입고 숨어들어 살던 은둔처.
바깥
세상과의 인연을 단절하고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 깊숙하고도 좁은 곳이어야 했다.
한 치의 더함이 없이 하늘 열 평의 궁벽한
두메다.
화전민 두 가구가 살다가
김삿갓이 살던 고가(古家)는 빈 집이 되어 버리고
다만 남은 한 가구가 어둔골 이름이나마
지키고 있다.
바윗돌 축대 위에 얼기설기 엮은 보금자리와
그 언저리에 손바닥보다도 못한 따비밭 몇 뙈기가
전부다.
전형적인 산촌의 화전민 가옥.
낡은 슬레이트 지붕은 폭우 한번
쏟아지면
그대로 날아가고 주저앉을 것만 같다.
200년을 내려온 집이라기에
주인조차 대대로 불밭을 일구던 후예이거니
했더니만,
아서라,
나이 쉰의 현근호 씨는 국가기관의 연구원이었단다.
아내와 단 둘이 이 곳에 들어온 지 열 네해라니
설흔
여섯 젊은 나이에 일찍이도 용단을 내렸고나..
어둔에 들어와 낳은 우국이가 이제 초등학교 2학년.
가족이라야 이렇게
셋뿐이다.
산골 외톨이 우국이는 혼자서 오솔길을 걸어내려가
노루목에서 학교버스를 타고 면소재지 옥동까지 다닌다
했다.
낡은 건조실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옛날 먼저 주인이 약초캐면서 담배
농사도 했나 보다.
한 가구를 위해 여기까지 전봇대를 세웠으니
세속을 떠나왔지만 문명의 그늘을 마저 벗어날 수는 없는
법.
마루에 유리등 하나 걸렸던데-
소쩍새 우는 달밤이면 석유등을 밝히겠지.
단촐한 식구에 장독대가 크다 했더니
고추장이고 된장이고 산 속에서 담은 정갈한 것들이라
찾는 이들이 많아 팔기도
한단다.
된장찌개와 텃밭에서 키운 남새,
지천으로 깔린 산채 무침의 점심 요기는
절간 스님들의 공양보다도 더 담백한
맛이었다.
여름짓이 땅도 별반 없는 산협촌,
바위벼랑에 놓인
토종 벌통이라야 고작 여나믄에 불과한데
산꽃 들꽃이 한창인 이 봄날에
꿀농사라도 잘해 생계에 보탬이나 주었으면-
신문지를 덕지덕지 바른 천장이며
싸리가지를 엮어 만든
발(簾)이며
나무등걸에 거울을 붙인 정경들이
고향의 토담집 살림살이를 떠오르게 한다.
오막살이 추녀 끝에선
초여름 긴긴 날 일렁이는
바람에
뎅그렁~~~ 뎅그렁~~~
저기 하늘 가운데
한가로이 풍경 소리를 매달 줄 알았던
말없는 주인의 깊은
마음이어!
무엌문 옆에 붙은 두어 평 쪽방은 주인의 서재.
방문을 뺀 사면벽
빼곡하게 들어찬 장서가
내 어림으로 2,000여 권은될 듯싶다.
사회과학 서적이 주류를 이루면서도
역사, 예술, 문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퍽 다양하다.
방 한가운데 1인용 나무침대를 놓고
책에 휩싸여 잠을 자는 그
주인은.........?
마당 위으로 통나무 귀틀집을 새로 지어 놓았다.
이름하여 '어둔골
쉼터'.
민박을 치루기 위함이라 하는데,
이 첩첩한 산중을 찾아오는 이
과연 몇이나 되려나?
마대산의 높이가 1,056m라
하지만
산꾼들을 불러모을 정도의 이름있는 산도 아니요,
김삿갓 유허를 애써 찾는 이들이 고작인데.
어제밤을 예서 하루 묵을 걸
그랬나 보다.
귀틀집-
산간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구조로서
통나무를 서로 귀를 맞춰 엇포개어 쌓아 벽을
만들고
나무 사이를 흙으로 발라 메꾸었다
위에서 보면 정자(井字) 모양이라 이를 방틀집이라고도 했다.
안주인이 빚은 좁쌀 동동주.
"아희야, 박주 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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