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스크랩] 인제 진동계곡

곡산 2006. 1. 23. 11:32
 

산간오지의 대명사 "진동계곡

                             하늘찻집"


           진동계곡의 맨끝자락, 해발 700 미터의 고원 산간 지대로

           하늘 아래 첫 집 외딴집이 바로 <하늘찻집: T.041-463-2919>이다.

궁벽한 산골 오지를 파고들어 며칠간이나마 문명을 등지고 원시의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은 삼라(森羅)의 만상(萬象)
어느 것 누구에게나 공통된 상정(常情)이 아닐까. 세속에 얽매어 물질의 편리만을 탐닉하는 삶이 마치 인간이 누리는 축복의 전부인 듯 법썩대지만, 때로는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하게 잊혀지고 싶을 때가 있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조차 던져버리고 무념(無念)의 상태로
아예 돌부처가 되어 굳어 버리거나, 한 마리 산짐승으로 살아가고 싶은 간절함도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나 10월이 중순을 넘어서고 가을이 깊어지면 단풍의 유혹을 주체하지 못해 몸살 기운을 안은 채로낭산(浪山)의 역마는 산길따라 고개를 넘고 산골로 산골로 들어간다.
단풍이야 설악산 능선을 헤매거나 주전골 계곡을 찾는 것이 여늬 사람들의 가을 행락이지만, 사람의 물결에 밀려다니기보다는 나만의 호젓한 행려병을 채우기엔 외지고 궁벽한 곳이 한결 안성마춤이다. 온갖 지도를 펴놓고 산세를 살펴보거나 도로가 아직 제대로 나있지 않아 비교적 찾는 이들이 적을 만한 곳을 뒤져보며 때묻지 않은 청정의 자연을 나름대로 찾아보곤 한다. 평소에 팔방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찍어두었던 곳을 계절에 맞추어 다시 가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정감록에서는 강원도 인제의 후미진 일곱 곳을 들어 '3둔 4가리'라 이름하여 최고의 피난처로 꼽았는데, 지금껏 오지(奧地)의 대명사로 불린다. '둔(屯)'이라 함은 유심한 골짜기로 이어지는 깊은 곳에 사람 몇이 숨어살 만한 작은 은둔처를 가리키고, '가리(갈이:耕)'는 화전을 일구어 한나절 밭갈이 할만한 곳으로, 난세를 피해 터붙이로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3둔은 살둔(생둔)과 달둔(월둔), 귀둔을 세 곳을 지칭하고, 4가리는 아침가리(조경동),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를 말한다.
점봉산, 구룡덕봉, 방태산 등, 크고 작은 산들의 안과 밖으로 사방에 위치하고 있어, 일곱 곳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몇 차례의 발길이 계속 이어져야 하지만, 3둔 4가리의 핵심은 아무래도 조경동과 진동계곡이다. 작년 여름 발자국을 더듬어 이 가을에도 홀로이 배낭을 챙겨, 산 찾아 길 따라 훌쩍 진동계곡으로 떠흐른다.

내린천을 스치고 현리를 들어서니 산봉우리엔 구름 안개가 감돌고 추적추적 내리는 늦가을 스산한 가랑비에 발뒤축이 흠씬 젖어온다. 세상을 멀찌기 외면하고 산골 나그네가 되어 산타령이나 실컷 부르면 되었지, 이 쯤의 빗줄기야 어디 한두 번이었더냐. 다만 청명한 가을 햇빛에 제 빛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축축히 젖은 채로 떨고섰는 색색의 단풍이 아쉽다고나 할까.
허위허위 육십리 골짜기를 거슬러 방동약수를 거치고, 갈터 마을에 이르면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자갈길이 시작되고 갑짜기 바위절벽이 병목으로 좁아지는 양편 협곡은 그야말로 만산홍엽의 경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길 왼편 풀더미에 묻혀있는 해묵은 장승 한 쌍은 최근에 볼거리로 세워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오랜 동안 수호신으로 정성껏 모셔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좁다란 골짜기를 빠져나가면 만여 평의 억새가 펼쳐진 곳이 바람불이. 산 위에서 불어내려 오는 바람에 하얀 억새꽃이 은빛의 평원을 이루고 있다. 다리를 건너 방대천을 왼켠으로 끼고 몇 백 보를 오르면 섶다리가 놓여 있어 전형적인 산간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서 오른편으로 조침령을 넘어 서림으로 갈리는 삼거리가 쇠나드리. 하도 바람이 세어 소도 날아갈 정도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니, 산골 바람이 어디 여기만 드셀 뿐이겠는가.


이 곳의 지명들이 하나같이

우리 고유의 토속적 이름들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저 반갑고 고맙기 그지없다.

내 어릴 때만 해도 시골의 지명들이 대다수 고유어로 불리어 졌는데, 관리들의 유식함이 도로혀 무식을 드러내고 우리 정신까지 어줍잖은 얼치기로 바꾸어 놓고 말았고나.
쇠나드리를 지나면 설피밭- 눈이 한 길 정도로 쌓이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몇 가구가 모여 살고 요즘 한창 새 집도 들어선다.

 

나무로 지어 만든 원형 모습의 <설피산장>도 있어 드물게나마 산을 찾는 객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경기도 고양 출신의 40대 초반의 어설픈 털보는 산장지기로서의 산심(山心)이 아직은 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설피밭이야 아름다운 이름만 기억하면 그뿐이겠고, 발길을 재촉하여 진동계곡의 끝자락 <하늘찻집>으로 향한다.

하늘찻집은 야생화로 유명한 곰배령으로 갈라지는 길목 바로 위에 있다. 찻집 앞을 계속 올라가면 단목령을 넘어 오색으로 빠지는 지름길로 연결된다. 곰배령에서 점봉산을 거쳐 단목령으로 돌아오면 하루 등산로로 아주 적격이다. 곰배령의 야생화 능선이 이태 전부터 보도되면서 늦여름 초가을 한 철엔 몰려오는 인파로 야생화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개인적으로 소수의 인원이 거쳐간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겠으나, 휴일이면 관광버스가 몇 대씩 몰려온다니 야생화가 짓밟히고, 생태계가 파괴될 운명이 몇 해 안에 다가올 것이라는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애초부터 나의 기행은 하늘찻집을 찾기 위함이었다. 25킬로 진동계곡의 맨끝자락, 해발 700 미터의 고원 산간 지대로 하늘 아래 첫 집 외딴집이 바로 <하늘찻집: T.041-463-2919>이다.

 

주인 최정식씨가 27년 간을 처음 지은 모습 그대로 지켜왔으니, 건물의 모습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낡아빠진 통나무와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전형적인 산간마을의 화전민 가옥으로, 까마득히 잊었던 고향에의 향수를물씬 느낄 수 있는 어린 시절의 토방집과 같은 곳이다.


나무판자로 된 천장이며 벽마다엔 이 곳을 찾았던 이들의 이름과 글귀가 빈틈없이 도배를 해 놓았다. 10월인데도 찻집 난로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인적없는 난로가엔 늙은 주인 내외와 산길 나그네 낭산 셋뿐이다. 빗 속에 혼자 찾아온 나그네가 반갑다며 끓고 있던 당귀차를 권하는 인정에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사 가지고 가져갔던 홍시며 백설기떡과 사과, 귤을 내놓았다.


함경도 강계가 고향으로 단신 월남해 곳곳을 전전하다가, 중년에 화전민으로 들어왔다는

77세의 주인 영감은 한많은 세월을 삭이려 힘겨운 한숨을 몇 차례씩 몰아쉰다.
"자식들 객지에서 넉넉지 못한데, 내 죽걸랑 즈덜 어미나 데려갔으면..."
"나도 75살인데, 영감이 있어야 여기서 살지!"
안주인의 목소리는 아직도 까랑하고 통랑하게 들린다만, 올 봄에 수술을 받아 수척한 영감은 병색이 완연했다. 작년 여름에 뵐 때만 해도 죽을 때까지 이 곳에서 내외가 산이나 지키겠다고 하더니, 건강과 함께 마음조차도 쇠약해 있었다.
"죽으면 난 여기서 산신령이나 될거여!"
"영감님 돌아가시기 전, 올 겨울에 눈이 푹 쌓이면 다시 올게요."
후줄근한 빗 속에 오후 시간이 늦어지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에보다 못한 단풍이라고는 하지만 찻집 산장 영감의 일생도 이 가을 황홀한 단풍으로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블로그 > 흙집마을 | 글쓴이 : 비즈니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