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뉴스=김선미 기자] 문화계에서 시작한 한류 열풍으로 한국식품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면서 국내 식품기업들을 중심으로 ‘식품한류’가 거세게 불고 있다. 과거 내수시장 방어에 머물렀던 식품기업들이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식품산업은 미래 성장동력 발굴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한 것. 이들은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자신들만의 노하우와 현지화 전략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발을 넓혀가고 있는 추세다. 이에 <공공뉴스>에서는 국내 식품기업들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성장동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 |
농심의 초석은 지난 1965년 신춘호 회장이 현재 본사가 위치한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에 설립한 롯데공업㈜다. 당시 라면업계에 후발주자로 나선 롯데공업㈜는 출범과 함께 연구개발 부서를 발족해 자체 개발한 제품으로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선발업체의 견제와 극심한 경쟁 속에서 1971년 ‘소고기라면’을 히트시키며 시장점유율 23%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고, 1972년에는 새우깡으로 대표되는 한국 스낵시장을 개척하고 흑자시대를 열게 됐다.
이렇듯 라면 명가(名家)로 자리매김한 농심은 내년 창업 50주년을 맞아 기존 라면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탈피해 식자재 유통, 조미식품 등의 식품 서비스는 물론 건강식품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나섰다.
이 같은 청사진을 대표하는 것이 기업혁신경영전략인 ‘신농심 경영’이다. 구체적인 전략으로 ▲핵심역량강화 ▲신성장동력 개발 ▲고객가치 창출 ▲글로벌사업확대 등이 꼽힌다.
특히 농심은 해외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해 중국을 비롯해 동북아, 동남아, 미주, 유럽 등 전 세계 4대 권역대에 생산판매체계를 확장하고 현재 국내 7개 생산 거점과 해외 7개 생산 및 판매 법인을 갖고 있다. 이 같은 글로벌 브랜드 육성 계획 중심에 생수 브랜드 ‘백두산 백산수’가 있다.
![]() |
‘너구리’·‘안성탕면’·‘짜파게티’ 등 잇단 히트..스낵제품 개발 본격화
농심은 1970년대 히트상품인 ‘농심라면’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농심’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후 1978년 정식으로 사명을 주식회사 농심으로 변경하며 새 닻을 올렸다.
이후 설비 투자와 생산 시스템의 현대화, 업무의 전산화, 영업망의 확충, 연구개발 기능 강화 등 생산·영업·관리 체제 전반에 걸친 질적 고도화를 추진했다.
1980년대에는 라면 맛과 품질에서 차별화를 꾀한다는 방침 아래 안성 첨단 스프 전문공장을 준공했고 안양, 사상공장에 첨단 시설과 시스템을 연차적으로 도입해 본격적인 업무 전산화의 꾀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너구리’·‘안성탕면’·‘짜파게티’로 이어지는 히트상품과 수요창출이 본격화된 용기면, 다양한 스낵제품의 개발도 이뤄졌다. 이에 힘 입어 1980년대 초 35% 수준이던 라면 시장 점유율은 1984년 40%대에 진입 했고, 1985년 3월 40.4%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업계 정상에 올라섰다.
뭐니뭐니해도 농심은 터닝포인트는 ‘신(辛)라면’ 출시다. 신라면은 1986년 출시된 후 1991년부터 현재까지 단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국민라면이다.
농심은 1986년 신라면을 최초 선보인 후 1987년 46.2%, 1988년 53.2%, 1989년에 58%로 시장 점유율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업계 선두 주자를 굳히게 됐다.
여기에 88서울올림픽 라면 공식공급업체 선정을 계기로 라면이 국제적인 상품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체 개발 ‘컴퓨터 통합 제조 관리시스템’ 생산현황 적용
1990년대 들어서는 국제화·개방화의 바람이 거세기 불기 시작했다. 이에 농심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모습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혁신하고 지속 성장을 위한 내실 확충에 힘쓴다는 전략을 세웠다. 새로운 CI (Corporate Identity)를 공포와 그룹 회장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더불어 국제화·정보화 추세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어교육, 정보화교육 등 사원들의 능력개발 교육을 강화했다. 모든 문서관리 업무의 전산화, 영업사원 휴대용 컴퓨터 지급, 전 간부 및 영업사원 무선호출기 지급, 연구소 CAD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업무효율 극대화를 꾀했다.
생산부문에서는 구미공단에 2700여 평의 라면전용공장을 준공하고 지속적인 설비 증설과 물류시스템을 구축한 데 이어 충남 아산시 탕정면 동산리에 대지 2만7810평, 연건평 1만3528평 규모의 대단위 포테토칩 및 종합 쌀과자 전용공장을 준공했다.
소비자들의 본물(本物)지향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안양공장 내에 국내 최초의 무균자동화 ‘생생면’ 공장을 준공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4년여의 노력으로 컴퓨터 통합 제조 관리시스템(CIM: Computer Integrated Manufacturing)을 자체 개발해 생산현황에 적용했다.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고부가가치 소개 개발에 주력하는 가운데 국책 과제인 선도기술개발과제(G7프로젝트) 수행에도 참여했고, 대관령 감자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우량 씨감자 생산과 양질의 원료감자 확보기반 마련에도 힘을 쏟았다.
![]() |
국제화·세계화에 역량 집중..‘백산수’ 앞세워 글로벌 종합 식음료회사 도약
농심의 글로벌 행보는 첫 해외 공장인 중국 상해공장 가동으로 시작됐다.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으로 발돋움 하겠다는 목표아래 ‘세계화’, ‘국제경쟁력 강화’를 내걸고 지식·정보 기술력, 상품경쟁력, 판매력의 선진화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농심은 이제까지 쌓아온 역량을 국제화·세계화에 집중시키는 상황이다. 2000년대를 전후로 중국에 잇따라 생산공장을 준공하면서 급성장하는 중국에서 한국의 맛을 전파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데 노력 중이다.
농심의 글로벌 행보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농심 LA공장을 준공하면서 더욱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지난 2015년 창립 50주년을 맞은 농심은 생수를 중심으로 연관 분야로 사업을 확대, 글로벌 종합 식음료회사로의 도약하고 있는 상황이다. 백산수는 농심이 정한 신성장 미래사업 분야의 대표격이다.
농심은 1998년부터 14년간 제주 지역을 제외한 지역의 삼다수 판권을 맡아 1위 생수로 키워냈다. 하지만 제주도개발공사와 법정공방 끝에 2012년 결별하고, 절치부심한 끝에 2013년 자체 생수 브랜드 ‘백두산 백산수’를 들고 나왔다.
농심은 이후 백산수 마케팅에 집중했다. 2013년 3.7%에 불과했던 시장 점유율을 2016년 말 기준 8.0%까지 끌어올렸다. 같은 기간 점유율 41%를 기록한 삼다수의 5분의1 수준이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매출액은 2015년 380억원에서 전년대비 605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성장률이 60% 수준으로 이는 국내 생수시장 성장률 10%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농심은 2015년 중국 지린성 이도백하에 백산수 제2공장을 설립하고, 본격 가동을 통해 생수사업을 공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향후 연간 200만 톤 규모로 즉각 증설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신공장은 특히, 중국 전역에 확보해 놓은 1000여 개의 라면 대리점 판매망을 적극 활용해 세계 최대 생수시장인 중국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비롯해 농심은 백산수를 신라면을 잇는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인 2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백산수를 농심의 미래를 이끌 새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김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