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500만명 돌파하며 냉동식품·가정 간편식 호황 단순한 한 끼 때우기용 넘어 '나만의 요리'로 소셜미디어 올려
대학가엔 냉동안주 파는 술집도
취업 준비생 김재호(28·가명)씨의 '주방 살림살이'는 137L 소형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전부다. 16㎡(약 5평) 남짓한 대학가 신축 원룸으로 이사한 재작년 봄부터 그는 가스레인지 밸브를 열어본 적이 없다. 냉장고 냉동실에 켜켜이 쌓아놓은 수십 개 냉동식품 덕분이다. "자취 생활 3~4년차까지는 엄마가 서울 올 때마다 장만해온 밑반찬들로 냉장고가 꽉 찼어요. '홀로 서기'가 늦어지면서 엄마의 방문이 뜸해졌고, 상하거나 먹기 싫어 버리는 음식도 늘어났죠. 지금은 냉동식품으로 음식 상할 염려 없이 생활하고 있어요."
/박상훈 기자
'차갑게 얼리다'는 뜻의 '냉동(冷凍)'이 젊은 세대의 일상을 관통하는 단어로 부상했다. 취업 시장이 얼어붙고 소비 심리가 위축될수록 냉동식품이라는 이 '찬밥'은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이들은 삼시세끼도 모자라 '혼술'에 곁들이는 안주까지도 냉동식품으로 연명한다. 이름하여 '냉동 인간' 시대다.
◇'1인 가구'가 데운 냉동식품 열기
2014년 500만명을 돌파한 '1인 가구'는 냉동식품을 비롯한 '간편식'의 부상을 견인했다. 작년 8조8413억원 매출을 올린 CJ제일제당은 전년 대비 9.7%의 매출 신장을 기록한 이유에 대해 "'햇반 컵반' '고메 프리미엄 냉동식품' 같은 1인 가구 소비재 매출액이 늘었기 때문"이라면서 "가정 간편식이 최초로 연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편의점 CU 유통사인 BGF리테일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냉동식품 매출은 25.7% 상승했다.
냉동식품의 인기가 단순히 '한 끼 때우기용'이어서는 아니다. 젊은 세대는 냉동식품을 '나만의 요리'로 변주해 '집밥의 결핍'을 메우면서 인스타그램·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놀이로 소비한다. 인스타그램에 '#냉동'이 들어간 해시태그(검색하기 쉽게 단어 앞에 #을 붙이는 방식)를 검색하면 1만여개 넘는 '냉동 요리'가 떠오른다. 취업 준비생 오경환(30)씨는 냉장고가 빌 때마다 마트를 돌면서 새로 출시된 냉동식품을 구매한다. 그의 인스타그램엔 처음 맛본 냉동식품 사진과 시식평이 일기처럼 올라와 있다. "몇 년째 취업 준비만 하다 보니 '놀거리'라고는 인스타그램이 전부예요. 시식평은 주변인에게 알리는 제 근황이고요."
홍대 한‘편의점 포차’. 냉동만두·라면 등 즉석 식품을 안주로 판다. /인스타그램 캡처
이런 트렌드는 대중문화 콘텐츠에도 속속 반영되고 있다. 작년 4월부터 케이툰에 연재 중인 웹툰 '편의점 만화왕'은 매화 편의점 음식을 조리해 '집밥'으로 바꾸는 줄거리로 인기를 끌었다. 즉석밥, 장조림 통조림, 참기름을 섞어 '장조림비빔밥'을 만들거나 곰탕 컵라면에 냉동 만두를 넣어 '만두 곰탕'을 만들어 먹는 식이다. '편의점을 털어라'(tvN)는 이 만화 코드를 TV로 옮긴 예능 프로다. "편의점 냉동식품에 조예가 깊다"고 자부하는 혼자 사는 연예인들이 자신만의 레시피로 '집밥'을 만들어 맛대결을 펼친다. 가수 딘딘은 이 방송에서 곰탕 컵라면, 냉동 만두, 편육, 계란을 조합해 '차슈딘라멘'이라는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우승을 차지했다.
◇냉동식품 내세운 '술집'도 생겨나
홍대·신촌 등 대학가엔 냉동식품을 안주로 판매하는 '편의점 포차'도 생겨났다. 소주·맥주가 2500원 미만인 데다 안주도 5000원 남짓한 편의점 음식이라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대학생, 청년들에게 인기다. 지난 11일 홍대 앞 한 편의주점에서 만난 취업 준비생 김우준(27)씨는 "안주를 많이 시켜도 1인당 술값이 1만원을 넘지 않아 부담없이 들른다"며 "일반 술집 안주와 비교해도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 냉동식품이 술자리의 대안이 됐다"고 말했다.
'편의점 포차'는 1990년대 후반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며 붐을 이룬 '편의방'의 2017년 버전이다. 저
렴한 가격으로 24시간 영업해 인기를 모았던 '편의방'이 경제 침체 속에서 다시금 부활한 것.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스턴트 식품의 판매량 증가는 가족이 소규모로 재편되고, 경제적으로 불안한 계층이 많아진다는 증거"라면서 "경기 침체가 비단 젊은 층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소비 흐름이 점차 중·장년층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