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72%, 늙어가는 남편 부담스럽다는데… "놀아줘, 밥좀줘" 은퇴남편 24時 아내는 속 터져
매일 거실에서 빈둥거리는 '공포의 거실남', 온종일 잠옷 차림에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를 귀 쫑긋 세우고 엿듣는 '파자마맨', 어딜 가나 따라오는 '정년(停年)미아', 하루 세끼 밥 차려줘야 하는 '삼식(三食)이'….
은퇴해서 집에 있는 남편을 묘사하는 이 농담들이 고령화가 급진전하는 우리 사회에서 마냥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 16일 발표한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국민인식 조사'에서 여성의 71.8%가 '늙은 남편 돌보는 일이 부담스럽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같은 질문에 남성도 66.4%가 동의했다. 한국 남성들 스스로 '나이 먹으면 아내에게 부담되는 존재'라고 자인(自認)한 셈이다.
◇ 고령화가 가져온 도전, '은퇴 후 40년, 초장기 부부시대'
그럼에도 남편들은 충격받고 분노한다. "평생 고생하며 가족들 먹여 살렸는데, 은퇴하고 돈 못 버니 아내들의 괄시가 시작됐다"며 아내들의 이기주의를 개탄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에 지난 1년간 상담을 요청해온 남성의 44%가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부부 갈등과 이혼을 고민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그중에서도 혼인기간이 25년 이상 된 남성 내담자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이는 30년 전만 해도 생각하기 힘든 고민이다. 1980년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은 65.7세,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다가 65세 정년 채우고 퇴직하던 시절이었다. 은퇴 후 부부가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야 채 10년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고령화가 가속화돼 '100세 시대'가 눈앞에 닥쳤고, 쉰 안팎에 조기 퇴직하는 고용 불안정까지 겹치면서 은퇴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이 30~40년에 달하는 '초장기(超長期) 노인부부' 시대가 도래했다. 노부부 간의 '평화로운 공존'과 '갈등 관리'가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이다.
◇ 빨리 변하는 女, 느리게 변하는 男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누구 일방의 잘못이 아니라 은퇴 이후 30~40년을 함께 살아야 할 부부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방법을 몰라 빚어지는 갈등이라고 말한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늙은 남편이 부담스럽다'는 여성들의 표현은 '싫다' '밉다'는 뜻이 아니라 '불편하다'는 의미"라면서 "눈 뜨면 회사에 나갔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돌아오던 남편과 갑자기 24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데서 오는 불편함"이라고 말했다. "결국 아내는 은퇴한 남편을 위해 새로운 내조를 해야 할 처지가 되는 거죠. 놀아줘야 하고, 점심밥·저녁밥까지 신경 써 차려줘야 하고, 은퇴해 위축된 남편의 기분도 달래줘야 하니까요. 어느 누가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은퇴 남편의 당황스러움도 그 못지않다. 경제발전의 주역으로만 살아왔지 혼자서 놀 줄 모르고, 집안일이라면 숟가락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만큼 무관심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 남편들이여, 영국 남자를 본보기 삼아라
한국 여성들이 유난히 '이기적이고 못된 악처(惡妻)'가 되어가는 걸까. 조주은 여성·가족정책 담당 입법조사관은 "'돌봄 노동'을 여성 몫으로 전담시켜온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성별 분업이 '은퇴 남편 증후군'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남성들은 은퇴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집안일을 별로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남성들의 가사노동시간(1시간 1분)은 미국 (1시간49분)이나 영국 (2시간48분)의 은퇴 남편들보다 훨씬 짧다. 특히 아내들이 하루 평균 1시간 43분을 음식 준비하는 동안, 은퇴 남편들은 단 17분 거든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부장적 권위는 무너지고 부부간 대등한 관계가 필요한데, 어느 일방의 희생을 기반으로 더 이상 부부관계가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 결과로 황혼이혼도 늘고 있다. 1995년 138건에 불과했던 65세 이상 여성의 이혼 건수는 지난해 1734건으로 늘었다. 자생력 없는 가부장적 권위는 법정에서도 단죄받는다. 지난해 11월 법원은 권위적인 남편(80)으로부터 6년 동안 메모지로 살림 지시를 받은 76세 아내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남편은 '생태는 동태로 하고 삼치는 꽁치로 바꿀 것', '두부는 비싸니 각종 찌개에 3, 4점씩만 양념으로 사용할 것' 등의 메모로 아내를 통제했고, 법원은 이런 통제를 이혼사유로 인정했다.
◇ 그래도 열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
지난해 서울에서 부부끼리 사는 65세 이상 노인(26만1399명)이 전체 노인의 28.1%를 차지했다. 서울의 노인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부부끼리 사는 셈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이삼식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은 "자식이 몇 안 되는 고령화 사회에서는 모든 돌봄에서 양성 평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며 "신(新)가족갈등의 해법은 부부가 공평해지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돌봄의 책임을 가족, 특히 나이 든 아내에게만 떠넘기지 말고 사회적 돌봄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는 "노인돌보미바우처사업,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등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은퇴해서 집에 있는 남편을 묘사하는 이 농담들이 고령화가 급진전하는 우리 사회에서 마냥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 [조선일보]그래픽=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 고령화가 가져온 도전, '은퇴 후 40년, 초장기 부부시대'
그럼에도 남편들은 충격받고 분노한다. "평생 고생하며 가족들 먹여 살렸는데, 은퇴하고 돈 못 버니 아내들의 괄시가 시작됐다"며 아내들의 이기주의를 개탄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에 지난 1년간 상담을 요청해온 남성의 44%가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부부 갈등과 이혼을 고민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그중에서도 혼인기간이 25년 이상 된 남성 내담자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이는 30년 전만 해도 생각하기 힘든 고민이다. 1980년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은 65.7세,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다가 65세 정년 채우고 퇴직하던 시절이었다. 은퇴 후 부부가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야 채 10년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고령화가 가속화돼 '100세 시대'가 눈앞에 닥쳤고, 쉰 안팎에 조기 퇴직하는 고용 불안정까지 겹치면서 은퇴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이 30~40년에 달하는 '초장기(超長期) 노인부부' 시대가 도래했다. 노부부 간의 '평화로운 공존'과 '갈등 관리'가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이다.
◇ 빨리 변하는 女, 느리게 변하는 男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누구 일방의 잘못이 아니라 은퇴 이후 30~40년을 함께 살아야 할 부부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방법을 몰라 빚어지는 갈등이라고 말한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늙은 남편이 부담스럽다'는 여성들의 표현은 '싫다' '밉다'는 뜻이 아니라 '불편하다'는 의미"라면서 "눈 뜨면 회사에 나갔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돌아오던 남편과 갑자기 24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데서 오는 불편함"이라고 말했다. "결국 아내는 은퇴한 남편을 위해 새로운 내조를 해야 할 처지가 되는 거죠. 놀아줘야 하고, 점심밥·저녁밥까지 신경 써 차려줘야 하고, 은퇴해 위축된 남편의 기분도 달래줘야 하니까요. 어느 누가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은퇴 남편의 당황스러움도 그 못지않다. 경제발전의 주역으로만 살아왔지 혼자서 놀 줄 모르고, 집안일이라면 숟가락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만큼 무관심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 남편들이여, 영국 남자를 본보기 삼아라
한국 여성들이 유난히 '이기적이고 못된 악처(惡妻)'가 되어가는 걸까. 조주은 여성·가족정책 담당 입법조사관은 "'돌봄 노동'을 여성 몫으로 전담시켜온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성별 분업이 '은퇴 남편 증후군'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남성들은 은퇴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집안일을 별로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남성들의 가사노동시간(1시간 1분)은 미국 (1시간49분)이나 영국 (2시간48분)의 은퇴 남편들보다 훨씬 짧다. 특히 아내들이 하루 평균 1시간 43분을 음식 준비하는 동안, 은퇴 남편들은 단 17분 거든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부장적 권위는 무너지고 부부간 대등한 관계가 필요한데, 어느 일방의 희생을 기반으로 더 이상 부부관계가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 결과로 황혼이혼도 늘고 있다. 1995년 138건에 불과했던 65세 이상 여성의 이혼 건수는 지난해 1734건으로 늘었다. 자생력 없는 가부장적 권위는 법정에서도 단죄받는다. 지난해 11월 법원은 권위적인 남편(80)으로부터 6년 동안 메모지로 살림 지시를 받은 76세 아내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남편은 '생태는 동태로 하고 삼치는 꽁치로 바꿀 것', '두부는 비싸니 각종 찌개에 3, 4점씩만 양념으로 사용할 것' 등의 메모로 아내를 통제했고, 법원은 이런 통제를 이혼사유로 인정했다.
◇ 그래도 열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
지난해 서울에서 부부끼리 사는 65세 이상 노인(26만1399명)이 전체 노인의 28.1%를 차지했다. 서울의 노인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부부끼리 사는 셈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이삼식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은 "자식이 몇 안 되는 고령화 사회에서는 모든 돌봄에서 양성 평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며 "신(新)가족갈등의 해법은 부부가 공평해지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돌봄의 책임을 가족, 특히 나이 든 아내에게만 떠넘기지 말고 사회적 돌봄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는 "노인돌보미바우처사업,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등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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