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시장동향

할인점 빵시장 무시 못하네

곡산 2008. 5. 25. 19:12

할인점 빵시장 무시 못하네
성장하는 인스토어(In-store) 베이커리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한 달로와요.
강남 신세계백화점 지하 1층 ‘달로와요’ 매장 앞.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자 매장 앞은 막바지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들른다는 주부 김영임씨(45)는 “식품매장 베이커리 치고 가격이 좀 비싼 편이지만 프랑스 브랜드인 데다 즉석에서 바로 굽다 보니 맛이 좋아 자주 애용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에 입점한 이른바 인스토어(In-store) 베이커리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 저렴한 가격과 고소한 빵 냄새로 쇼핑객들의 얇은 지갑을 열던 방식에서 벗어나 고급 제과 기술을 도입해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고 있다.

정재찬 조선호텔베이커리 팀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만 해도 중저가의 실속형 베이커리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2000년 이후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고급 베이커리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호텔베이커리는 99년 달로와요와 독점계약을 했다.

달로와요는 200년 전통의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 1802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됐다. 제과, 초콜릿,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프랑스 요리 전문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 제빵 기술을 전수받은 조선호텔베이커리는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80여가지 제품을 따로 개발했다. 달로와요는 99년 신세계백화점 광주점에 첫 매장을 연 이후 현재 8개 백화점에서 운영된다. 매장당 일평균 매출은 800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이 2000년 자체 개발한 ‘베즐리’도 고공성장 중이다.

지난 1분기 매출은 8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상승했다. 2006년 16.4%, 지난해는 20% 성장했다. 백화점 일반 식품의 매출이 3% 증가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9배 이상 높은 성장세다. 현대백화점 측은 고급 수제 유기농 빵을 강조한 점이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베즐리는 밀가루뿐 아니라 우유·올리브유 등 모든 재료를 유기농으로 만들고 있다고 백화점 측은 밝힌다. 올해 베즐리의 매출 목표는 310억원이다.

롯데백화점도 지난해 베이커리 매출이 10% 이상 늘었다. 올 1분기 15%가 증가했다고 회사 측은 밝힌다. 롯데백화점에는 관계사인 롯데브랑제리가 만든 ‘보네스뻬’란 베이커리 전문점이 들어간 상태다.

롯데브랑제리 담당자는 “같은 보네스뻬라도 백화점과 병원 등 고급 시설에 입점한 곳은 직접 만들어 굽고, 일반 마트나 슈퍼에 들어간 곳은 냉동 생지(반제품 상태)를 공급해 만든다”고 말했다.

인스토어 시장규모 2000억원

업계 추산에 따르면 인스토어 베이커리의 시장규모는 약 2000억원이다. 국내 전체 베이커리 시장을 약 3조원으로 볼 때 인스토어 베이커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6.7% 정도다.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윈도베이커리(개인 베이커리 전문점)가 각각 1조원 시장인 것을 감안하면 그 비중은 작은 편. 하지만 향후 성장성은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서정웅 대한제과협회장은 “2000년 이후 동네 빵집이 50% 가까이 폐점하면서 그 빈자리를 프랜차이즈와 인스토어 베이커리가 채워나가고 있다”며 “최근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과도한 점포 경쟁을 펼치는 것과 달리 인스토어 베이커리는 안정적인 수요층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인스토어 시장은 점포 수와 고정인구가 많은 할인점이 주도한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 할인점들은 매장 내 베이커리 부문을 대폭 강화했다. ‘할인마트 빵 = 떨이’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호텔과 제휴하거나 자체 베이커리 전문 회사를 차렸다.

이마트는 조선호텔베이커리와 이미 96년부터 협력관계를 맺었고 홈플러스는 지난해 8월 신라호텔과 제휴를 맺었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4월 롯데브랑제리를 통해 보네스뻬란 베이커리 전문점을 출시했다.

롯데 한 관계자는 “식품매장 매출(조리제품 기준)에서 베이커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이른다”며 “기존 베이커리 매장도 매년 10% 이상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베이커리 없는 할인점과 백화점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인스토어 베이커리 시장의 큰손은 단연 조선호텔베이커리다.

전체 시장 매출의 절반인 1000억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조선호텔베이커리의 매출은 1229억원이었다. 전년(867억원) 대비 41.7% 증가한 수치다. 전국 100여개 이마트 매장에 입점한 ‘데이앤데이’ 덕분이다. 데이앤데이는 조선호텔베이커리가 자체 개발한 브랜드로 96년부터 이마트 매장에 들어갔다. 고급 브랜드인 달로와요는 백화점에, 중가 브랜드인 데이앤데이는 할인점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매출에선 단연 데이앤데이가 효자다. 전체 매출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단순히 계산하면 데이앤데이 점포 한 곳당 연간 10억원(매출 1000억원, 매장100개)의 매출을 올린다.

정재찬 팀장은 “할인점 매장이 연평균 10개 정도 증가하는 데다 달로와요 매출도 매년 10% 이상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홈플러스의 아티제, 이마트 추격

이렇게 보면 인스토어 시장 제패의 첫 조건은 뭐니뭐니 해도 점포 수다.

할인점에 많이 입점한 곳일수록 시장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조선호텔베이커리의 우위가 점쳐진다. 현재 점포 수는 조선호텔베이커리가 116개(데이앤데이 108개, 달로와요 8개), 롯데브랑제리의 보네스뻬가 106개(롯데마트 56개, 롯데백화점 14개, 롯데슈퍼 32개, 기타 4개 등), 홈플러스의 ‘아티제블랑제리’가 15개이다. 롯데브랑제리가 106개로 바짝 쫓고 있지만 대형 할인점만 놓고 보면 조선호텔베이커리의 절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앞으로 이 시장은 크게 변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하면서 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마트와 홈플러스의 점포 수는 각각 110개, 64개였다. 홈플러스가 홈에버(38개)를 인수함으로써 매장 수는 총 102개가 됐다. 8개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단번에 따라잡을 수도 있다.

현재 아티제블랑제리는 내년까지 36개 점포로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목표치를 바꿀 수 있다.

오히려 신생 브랜드다 보니 장점도 돋보인다. 브랜드가 도입된 지 1년이 채 안 됐기 때문에 매장 콘셉트나 메뉴에서 우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반면 데이앤데이는 출시한 지 10년이 넘었다.

심희승 아티제블랑제리 팀장은 “인테리어는 일본 전문 디자이너에게 맡겨 세련되고 모던하게 연출했고 제품은 유기농 재료를 중심으로 호텔신라의 고급 베이커리 메뉴를 20% 이상 적용했다”고 말했다. 호텔신라는 최고급 베이커리 카페인 ‘아티제 카페&베이커리’를 직영으로 운영해왔다.

한편 정재찬 팀장은 “기존 매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고급화하는 것과 동시에 매장 확대를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수입 브랜드 빵 왜 안되나? 】

◆ 자체 메뉴 개발로 고급화 실패

오봉팽 매장.
국내 베이커리 시장이 매년 성장하고 있다지만 성공한 외국 베이커리 브랜드를 찾기란 쉽지 않다.

2001년 YBM 시사영어사는 미국에서 시나본(Cinnabon)을 가지고 들어왔다. 시나본은 계피 맛 나는 시나몬 롤로 유명한 베이커리 전문점. 전 세계에 500여개 이상의 매장을 냈지만 국내에선 서울과 지방 몇몇 대도시에 점포를 내는 데 그쳤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제주도에 하나 남은 매장이 문을 닫았다. 파리크라상도 94년 프랑스 최고급 제과 브랜드인 르노뜨루를 가지고 왔지만 현재 동부이촌동에 1개 점포만 운영 중이다.

메뉴 현지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도 있다. 프랑스의 포숑은 95년 롯데백화점을 통해 들여왔다. 국내 소비자 입맛에 맞춰 자체 메뉴를 개발하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펼쳤지만 프랑스 현지 콘셉트와 크게 동떨어진 베이커리 전문점이 됐다. 사업권도 롯데에서 대호물산으로 이양됐다. 현재 롯데백화점 내 10여곳에서 운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 입맛에 맞추기 위해선 메뉴 현지화가 필수인데, 과도하게 현지화를 할 경우 고급 브랜드 이미지가 희석된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성공한 브랜드는 없을까. 달로와요(99년)나 오봉팽(2003년) 등이 그나마 성공한 축에 속한다. 특히 미국 베이커리 카페인 오봉팽은 국내에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샌드위치와 베이글을 주력으로 판매한다. 하지만 오봉팽의 국내 점포 수는 아직 6개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높은 임대료와 인건비, 시장 미성숙 등을 꼽는다.

조혜윤 오봉팽 홍보이사는 “중심상권에서 소비력이 있는 20~30대를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충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