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강북5산, 강남7산

곡산 2008. 3. 1. 16:31
21개 산 넘어 서울 한 바퀴 ‘環코스’를 아십니까?

1394년 이래 도읍지이자 수도인 서울. 풍수지리학자들은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을 천하명당이라고 말한다. 서울을 감싸고 있는 대표적인 산이 ‘강북 5산’과 ‘강남 7산’이다. ‘강북 5산’은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강남 7산’은 광교산-백운산-바라산-청계산-우면산-관악산-삼성산이다. 산악인들은 ‘강북 5산’을 사패산을 제외하고 한 글자씩 따서 ‘불수도북’이라 한다. 산악인 사이에는 강북 5산이나 강남 7산을 종주하는 게 오래 전부터 유행했다.

크로스컨트리 동호인 클럽 ‘클럽80’ 회원들은 특히 강북 5산 종주를 즐겨한다. 회사원 조승연(趙承衍·49)씨는 ‘클럽80’ 회원들과 5산종주를 하면서 장거리산행의 맛을 알게 되었다. 이후 강북 5산과 강남 7산을 여러 차례 종주한 조씨는 12산 외에 9산을 추가해 서울을 산으로만 연결한 ‘서울 환코스 21산’을 개발했다. 그리고 지난 1월 21~23일 59시간15분만에 21산을 종주했다. 서울 환코스 21산 종주는 국내 최초다.

조씨의 21산 종주는 장거리산행 애호가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화제다. 조씨는 지난 7월 말 강북 5산을 최단시간에 왕복 종주하는 기록(25시간20분)도 세웠다. ‘클럽80’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조씨의 21산 종주에 대한 회원들의 찬사가 많다. 이 중 박진국 회원이 올린 글을 옮겨본다.

“선달사님(조승연씨 별칭)께서 59시간 만에 서울 외곽 21산을 종주하셨습니다. 저의 직장 산꾼들에게 그 사실을 설명하자 그들은 저의 말을 믿는 것 같지 아니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선달사님과 도봉, 사패, 수락, 불암을 함께 하였고, 선달사님과 같이 출발했던 진성호 선생님의 불암에서 격려 동행 산행, 저보다 먼저 동행하였던 강성민 대장님 등을 통해서 21산 종주하셨음을 분명히 압니다. … 누구도 깨뜨리기 어려울 대기록을 남기신 선달사님이 ‘club80’의 일원이라는 점이 자랑스럽습니다. 오히려 제가 이번 4산 종주시 쩔쩔매던 나약함이 부끄럽고 저를 도와주신 강 대장님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리며 총장님의 동반산행과 호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클럽80’ 가입 후 인생 달라져

지난 8월 16일 오후, 조승연씨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가면서 기자는 21산을 종주한 그가 매우 특별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평범했다. 체격 면에서도 그런 극한적인 장거리산행을 해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평범한 회사원인 그의 얼굴에서 득도(得道) 한 사람의 표정이 읽혔다. “보기가 좋다”고 기자가 말하자 조승연씨는 이렇게 입을 뗐다.

“산을 좋아하다보면 자연을 좋아하게 된다. 자연을 좋아하다보면 물론 체력도 좋아지지만 마음이 좋아지는 게 진짜다. 산에 오르면 복잡한 문제가 명확하게 보인다.”

조씨는 ‘클럽80’에 가입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클럽80’은 1989년 백운대에서 결성된 산악인 동호회다. 숫자 ‘80’은 나이 80세까지 산과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기력을 보유하자는 회원간의 다짐이다. 정영주씨가 회장, 김종석씨가 사무총장, 강성민씨가 등반대장, 김윤재씨가 상임고문으로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6월 6일 조씨는 강성민 대장과 함께 강북 5산 종주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이 산행 다음날 조씨는 걷지 못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조씨는 설악산 지리산 등을 꾸준히 다녔다. 2003년 처음으로 강남 7산을 종주했다.(그는 현재까지 강남 7산을 스물한 번 종주했다.) 강북 5산과 강남 7산을 수차례 종주하면서 그는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강북 5산과 강남 7산을 연결해 ‘서울 환코스’를 종주해보자는 것이었다.

“먼저 도상훈련을 했습니다. 5만분의 1 지도를 펴놓고 들머리와 날머리와 갈림길을 확인하고 숙지했습니다. 그래서 지도를 덮어놓고 누워서도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도상훈련을 한 다음에는 현장에 가서 확인했지요. 낮은 산의 경우 안내판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지점의 들머리를 택해야 할지를 직접 보고 확인했습니다.”

1월 20일 밤, 조씨는 배낭을 꾸리고 일찍 잠을 청했다. 그러나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소풍가기 전날 밤의 설렘’으로 여러 번 뒤척이다가 4시30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씨는 먼저 배낭의 무게를 달아보았다. 13㎏이었다. 장거리산행을 하기에는 너무 무겁다고 생각한 조씨는 배낭을 줄이기 시작했다. 배낭의 무게는 30여분 만에 7.5㎏으로 줄어들었다. 어떤 기준으로 배낭 무게를 절반으로 줄였을까. 그는 “가장 필요한 게 뭐냐로 하나씩 줄여나갔다”고 말한다.

“일단 마실 물이 필요했다. 물은 처음부터 꾸준히 마셔줘야 한다. 갈증을 느낄 때 마시면 늦는다. 그래서 식수(2리터)를 가장 먼저 챙겼다. 그 다음이 야간 산행에 필수적인 랜턴과 만일을 대비한 예비 랜턴을 넣었다. 귀마개 모자와 장갑을 챙겼다. 양말은 최대한 많이 집어넣었다. 땀이 난 상태로 신고다니면 동상에 걸릴 우려가 있기에 수시로 갈아신을 수 있도록 양말을 준비했다. 체온 유지에 필요한 옷을 넣고 아이젠도 두 개에서 하나만 챙겼다. 먹거리는 어디서든지 틈나는 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 최하순위로 챙겼다.”

하남 검단산서 종주 시작

<1월 21일>

오전 5시30분, 조씨는 구로구 오류동에서 전철 첫 차를 탔다. 군자역에서 동료(진성호)를 만나 명일역까지 갔다. 명일역에서 하남행 버스로 바꿔 타고 정거장에 내린 시각은 오전 7시20분. 오전 7시40분 하남 애니메이션 고교 왼편의 검단산 들머리에서 21산 종주 산행을 시작했다.

오전 8시50분, 두 사람은 검단산 정상에 섰다. 두 사람은 “21산, 20산”을 외쳤다. 21산 중 20산이 남았다는 의미다. 두 사람은 9시50분께, 용마산 정상에 도달했다. 이제 남은 산은 19개산. 용마산에서 내려오니 광주와 하남시를 연결하는 국도와 맞닥뜨렸다. 두 사람은 국도 밑으로 난 일명 토끼굴을 지나 우측 은고개로 청량산에 진입했다. 12시00분, 남한산성 벌봉에 도착했다. 12시30분 북문을 통과하면서 잠시 ‘영양보충’을 했다.

14시35분, 성남 검단산 왕기봉을 통과하니 낙엽 위에 수북이 쌓인 눈길이 이어진다. 조씨는 영하의 날씨였지만 푹신한 능선길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15시30분, 갈마 터널을 지났다. 2차선 옛길에서 두 사람은 이동식 차량매점에서 칡즙을 한 잔씩 사서 마셨다. 조씨는 더부룩했던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16시40분, 영장산 정상에 도착했다. 21산 중 5번째다.

19시10분, 영장산 지나 태재를 통과하며 내림길로 접어들었다. 조씨와 진씨는 두런두런 얘기를 하면서 내려갔다. 그러나 한참 뒤 두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는 데 50분이 소요됐다. 첫 번째 실수였다. 조씨의 설명이다.

“혼자 산행할 때는 절대 실수를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얘기를 하면서 가다보면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산속에서 안개가 끼면 랜턴으로 1m 이상을 볼 수가 없다. 특히 낙엽에 이슬이 내리면 작은 길은 정말 헷갈린다. 산은 혼자 외롭게 가는 것이 최고다.”

산행 중 대화는 극도로 단순해진다고 한다. “여기서 뭐 먹고 가자” “소변을 보고 가자” “전망 좋다” “별이 참 동동 떠있다” 등이 전부다.

21시00분, 불곡산 정상에 도착해 두 사람은 야간산행을 위해 영양보충을 했다. 다시 산행, 22시25분께 새터마을 현대아파트 도로에 도착했다. 1월 22일 0시20분께, 오리역 부근에서 김밥 두 줄을 사 배낭에 집어넣었다. 고속도로 밑 토끼굴을 지나 가구단지길로 들어섰다. 한참을 걸어 가구단지를 오른쪽에 끼고 고갯마루에서 한마음교회를 돌아 광교산 능선에 들어섰다. 본격적인 강남 7산의 시작이다.

서울 환코스 21산은 완벽하게 산과 산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흐릿한 산줄기와 개활지가 만나는 지점 여러 곳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섰고 때로는 도로가 나 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수지 읍내에서 광교산 들머리로 들어갈 때 도심을 지나야 한다.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게 가장 힘들다. 이밖에 도로를 건너야 하는 구간은 청계산-인능산, 인능산-대모산, 구룡산-우면산, 삼성산-북한산이다. 이 중 가장 지루하고 힘든 코스는 삼성산에서 홍은동 북한산 입구에 이르는 길이다.

32시간 계속된 산행에 환시현상

<1월 22일>

광교산 들머리에서 정상 시루봉까지는 7㎞. 보통 때 같으면 1시간10분이면 올라간다. 조씨는 쉼터의 나무의자에 붙어 있는 온도계의 수은주가 영하 12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오르막길의 발걸음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등산화 속의 젖은 양말은 발가락 끝을 시리게 만들었다. 시루봉까지 올라가는 데 30분 이상이 더 걸려 1시간40분이 걸렸다. 광교산에서 젖은 양말과 깔창을 갈아신었지만 발끝의 통증은 계속된다. 벌집 모양의 실리콘 깔창은 추운 날에는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는 수 없이 조씨는 깔창을 갈아끼웠다.

03시00분께, 바라산 정상.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바라산 나무표지판이 반갑게 느껴졌다. 건너편 관악산의 웅장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악산 정상에서 반짝이는 철탑의 불빛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04시20분께. 바라산 정상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바라재까지 내려갔다. 바라재에서 425봉의 오름길을 올라 363봉으로 가는 길에서 수십 개의 랜턴 불빛과 만났다. 야간산행 중 처음으로 만나는 산객이다. 한 기업체의 신입사원 극기훈련 중이라고 했다. 대략 60여명은 되어보였다.

청계산 공동묘지를 왼쪽에 두고 국사봉으로 가는 가파른 오르막길. 24시간을 함께 한 진성호씨가 뒤처지기 시작했다. 연말부터 일산호수와 석촌호수 12시간 울트라마라톤, 새해 5산 종주와 설악산 종주를 성공한 그였다. 피로가 덜 풀렸는지 무릎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았다. 너무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조씨는 진씨와 양재동 화물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조씨가 예정대로 인능산, 대모산, 구룡산을 거쳐가고 진씨는 먼저 청계산에서 양재동으로 내려가 휴식을 취하면 컨디션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06시35분께, 청계산 매봉. 이른 새벽인데도 등산객들이 벌써 와있다. 어느 직장 등산팀으로 보였다. 이들이 단체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조씨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조씨의 설명이다.

“산을 지나치는 손님답게 조용히 아니온 듯 다녀가야 한다. 새벽산에서 야호를 외치고 구호를 외치면 새도 생명인데 잠을 못자면 어떡하나. 랜턴 불빛으로도 새들이 놀랄 수 있다. 사실은 야간산행도 산짐승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잠을 못자면 새들도 불임이 온다고 하지 않나?”

조씨는 옛골을 지나 인능산 초입까지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인능산을 넘어 대모산으로 향했다. 헌인능 가구단지 옆으로 내려와 도로를 건너서 대모산 우측 지맥으로 들어갔다. 09시20분, 대모산 정상에 도착했다. 대모산에서 내려와 구룡산으로 이동하면서 육육봉씨와 통화를 해 구룡산 날머리에서 만나기로 한다. 10시, 구룡산 정상에 섰다. 다시 하산해 10시30분께 양재 인터체인지 교차로 부근에서 진성호, 육육봉씨와 만난다. 진성호씨는 “컨디션이 도저히 안되겠다”고 말한다. 그는 육육봉씨가 건네는 꿀차와 드링크제를 마시고 14번째 산인 우면산을 향해 출발했고 12시40분께 소망탑에 이르렀다.

우면산에서 남태령 방면으로 내려와 관악산으로 향한다. 조씨는 군수사령부 왼편으로 이어진 조그만 계곡을 통과해 족적 없는 초행길을 택했다가 고생은 고생대로 한다. 후회막급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조그만 암봉을 무수히 넘는 우여곡절 끝에 15시20분께 관악산 연주대에 도착한다. 삼성산의 국기봉을 거쳐 장군봉으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조씨는 환시상태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바위 위에 예쁜 배낭 두 개가 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배낭만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그것은 배낭이 아닌 조그만 바위 두 개였다. 숲 속에 오리 한 마리가 앉아 내가 접근하는데도 도망갈 생각을 안했다. 가까이서 보니 떡갈나무 가지였다.”

무분별한 개발 스카이라인 붕괴

<1월 23일>

삼성산을 내려와 그는 가장 지루하고 힘겨운 산행을 한다. 홍은동 북한산 들머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안양천길→성산대교→홍제천길을 거쳐야 한다. 16㎞에 달하는 아스팔트 위를 걸으면서 그는 수없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바람 부는 성산대교 위를 건너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다시는 이 길을 걷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0시15분. 풍림아파트를 지나 북한산 들머리로 들어가면서 강성민 대장과 통화를 했다. 강 대장은 “걱정이 돼서 잠이 안온다”고 말했다. 0시25분 탕춘대 매표소를 지나 향로봉을 올려다보며 걸었다.

04시45분, 대동문에 도착했다. 조씨는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더이상 걸을 수가 없어 배낭을 멘 채 주저앉아 토막잠을 청했다. 5분간의 잠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꿈을 세 개나 꾸었다. 눈을 뜨니 몸이 한결 가볍다. 그는 “야간산행 훈련을 하면 점차 잠을 안자고 걷는 게 적응이 된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06시05분, 백운대에 서니 도봉산과 수락산과 불암산의 봉우리들이 저 멀리 보인다. 07시45분, 우이동 입구 식당에서 따끈한 해장국을 한 그릇 먹는다. 다시 산행. 우이암 부근에 이르자 무릎에 이상이 느껴졌다. 통증은 아니지만 무릎에 힘을 줄 수가 없다. 오봉샘을 거치지 않고 칼바위 주능선을 탄다. 12시36분, 사패산을 넘어 내려가는 길에 강성민 대장 일행을 만나 함께 범골로 내려선다.

16시10분, 수락산 정상에 오른다. 오른쪽으로 보현봉에 걸린 일몰이 무척 아름답다. 도솔봉을 거쳐 덕능고개로 내려섰다. 이제 21산 중 불암산만 남았다. 조씨는 남아 있는 모든 것은 아낌 없이 쏟아버리겠다는 심정으로 불암산을 향했다. 양재 교차로 부근에서 헤어졌던 진성호씨가 격려산행으로 합류했다. 18시00분, 암봉을 거쳐 불암산 정상에 올랐다. 조씨는 정상에서 하남 검단산, 청계산, 관악산, 삼성산 등 종주한 산들의 능선을 바라보았다. 1월 23일 18시55분, 중계복지회관 샘터에 다다른다. 1월 21일 오전 7시20분부터 시작된 21산 종주가 마침내 완결되었다.

조씨는 왜 고행하듯 산행을 할까. 그 역시 자신의 산행 스타일을 이해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조씨는 “자신을 완전히 연소시킬 때, 그 다음날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면서 “산행은 버리고 가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조씨는 21산 종주를 통해 서울과 그 주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아파트로 산길이 황폐해지고 무분별하게 들어선 고층건물로 스카이라인이 붕괴되어 너무나 안타까웠다. 특히 삼성산, 광교산, 불곡산을 아파트 단지가 깎아먹고 있는 게 가슴이 아팠다. 아파트는 언제든지 지을 수 있지만 한번 망가진 산은 다시 만들 수 없지 않나.”

조씨는 21산 종주를 하면서 산과 산 사이에 난 많은 도로를 횡단해야만 했다. 때로는 위험하게 무단횡단도 했다. 그는 “도로의 확충이 불가피하다면 도로의 고갯마루에 최소한 동물과 산행하는 사람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작은 이동통로를 만드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mapl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