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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이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우여곡절이 보이고, 그들이 부르는 각설이타령을 듣고 있노라면 흥겨워지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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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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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있노라면 그들의 너스레에 절로 서글퍼지기도 하고 흥겨워지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어깨가 들썩거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애잔하게 넘어가는 선율에는 통곡같은 아픔이 담겨있고,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노랫말에는 체증까지 뻥 뚫릴 듯한 후련함이 있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타령을 따라하고 싶은 마음에 어느새 입술은 실룩거리고 가슴은 쿵쾅거립니다.
비록 나달나달 떨어지고 겹겹이 기운 옷을 입었고, 제대로 씻지 않아 꼬질꼬질한 모습이지만, 그들이 하는 구구절절에는 피같은 진실이 배어있고 뼈대 같은 철학이 들어있습니다. 인간 누구나가 겪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사고(四苦)가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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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한술, 물 한모금도 나눠먹는 그들의 모습에서 인정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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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내란 놈이 이래 봬도 정승판서 자제로서, 팔도감사 마다하고 돈 한푼에 팔려서 각설이로 나섰네. 각설이라 역설이라 동설이를 짊어지고 지리구 지리구 돌아왔네. 동삼 먹고 배운 공부 기운차게도 잘 헌다. 초당 짓고 배운 공부 실수 없이 잘 헌다. 논어맹자 읽었는지 자왈자왈 잘도 헌다. 목구멍에 불을 켰나 훤하게도 잘도 헌다. 높고 높은 양반님네 심청전을 읽어 봤냐? 난 골백번도 더 봤다. 맘씨고운 심청아씨 삼백석에 몸을 팔아 맹인아빠 눈을 떴소. 심술궂은 뺑덕 어미 남에 것만 탐내더니 용케 죽어서 지옥 갔소. 아가야 아가 울지 마라 열흘 굶은 나도 있다. 올 저녁만 참아다오. 복스러운 주인마님 먹다 남은 찌꺼길랑 없다말고 보태줘여.
각설이 타령에는 살다보면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져야 하는 고통도 담겨있고, 원수 맺고 미워하지만 아닌 척 하고 만나야 하는 고통도 담겨있습니다. 명예·재물·권력·사랑 등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나 얻지 못하는 고통도 담겨있고, 살아 숨쉬는 한 몸과 마음에서 끊이지 않게 생기는 갈등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부르는 타령 속에는 지지고 볶으며 사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하나에서 열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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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나달나달한 옷을 입었지만 그들의 몸동작과 노래에는 신명이 있습니다. -수원‘아줌마 각설이 풍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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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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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영락없는 비렁뱅이 옷을 입었습니다. 깡통을 두드리며 찬 밥을 동냥하고, 굽실거리는 몸동작으로 자신들을 한없이 낮춥니다.
그러나 그들은 떳떳합니다. 그들이 부르는 타령 속에는 부정으로 치부한 자들을 희롱하고, 아첨하는 벼슬아치들을 거리낌없이 꾸짖는 호통이 들어있습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며 입신양명만을 노리는 기회주의자를 조롱하고, 나라를 팔아먹거나 이에 버금가는 행동을 하는 매국노들의 양심에 일침을 가하는 곤장같은 무서움도 들어있습니다.
꼬질꼬질한 행색으로 빈부격차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을 보여주고, 많이 배웠거나 배우지 못했음을 핑계로 인생 자체를 판가름하려는 섣부른 학벌주의를 장타령으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됨됨이가 외양에 달려있지 않음을 역설하며 속박없이 사는 자유로움을 보여줍니다.
누덕누덕 기운 그들의 옷 모양새만을 보면 눈물이 핑돌 정도로 불쌍해 보이지만 구김살 없이 놀고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득도한 듯한 선인들의 여유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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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게 그렇게 힘든 것인지... 각설이의 타령 속에는 애간장을 끊게 하는 아픔도 들었고, 박장대소 하게 하는 웃음도 들었습니다. 백발의 할머니는 각설이들의 너스레에서 무엇을 생각할지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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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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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게 없으니 걸릴 게 없고 걸릴 게 없어 무소유의 자유를 만끽하며 사니,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측은심을 가지게 하고 동냥을 통해 자비를 실천할 기회도 줍니다. 곱게 차려입은 옷 때문에 아무 곳에나 편하게 앉지 못하는 양반들의 허세를 조롱하듯 그들은 엉덩이 붙일 수 있는 곳이면 어떤 곳에서나 털썩 주저앉습니다.
비가 오면 다리 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고, 목이 마르면 흐르는 개울에 넙죽 엎드려 벌컥벌컥 물을 마시지만 가난을 누구의 원망으로 돌리지는 않습니다.
이슬이 나리면 처마 밑으로 들어가 이슬을 피하고, 엄동설한이 찾아오면 움막집을 찾아 동패끼리 옹기종기 모여앉아 서로의 체온으로 한 겨울을 나며 인고(忍苦)를 체험합니다. 그들은 마음가고 발길닿는 대로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돌아다니지만 인심과 소문을 따라 얽매임없이 문전걸식을 할지언정 세상만사를 풍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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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얻어먹어야 하는 각설이들의 애달픈 삶이 얼굴표정으로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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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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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들이 즐기는 진수성찬과 산해진미가 별 것아닌 똥 덩어리임을 장타령으로 말해줍니다. 인간들이 먹고 마시는 게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듯 찬밥 덩어리에 몇 조각 김치만으로도 맛나게 먹고 알뜰하게 소화하니 건강할 뿐입니다.
권선징악을 노래하고 인간 만행의 근본인 효를 들려줍니다. 비렁뱅이가 된 자신의 처지를 신세타령하는 듯 들리지만 거침없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먼저 깨우친 자의 해학적 몸짓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찌그러진 깡통 속에는 달그락거리는 동전소리 만큼이나 여유와 넉넉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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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이라고 먹었는데 안 쌀 수 있습니까. 한 무더기 똥을 누고 시원해 하는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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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얼씨구나 들어간다. 절씨구나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강남 제비 올 봄에도 또 왔소 허어 품바가 들어간다 일자나 한 장 들고 보니 일락서산 해가 지니 엄마 찾는 송아지의 울음소리 애절쿠나 이자나 한 장 들고 보니 이슬 맞은 수선화야 네 모습이 청초롭다 삼자나 한 장 들고 보니 삼월이라 봄이 된 뒷동산에 진달래는 벌 나비 오기만 기다린다 사자나 한 장 들고 보니 사랑하는 우리 님께 꽃 소식을 전해줄까
오자나 한 장 들고 보니 오월 하늘은 천자 및 배각 한 쌍이 춤을 춘다 육자나 한 장 들고 보니 유월 목단 피었다오. 창포물에 머리감고 정든 님 오기만 기다린다 칠자나 한 장 들고 보니 칠성님 전 소원 빌어 노처녀 신세나 면해 볼까 팔자나 한 장 들고 보니 팔월 가배 달 밝은데 오매불망 부모형제 고향 생각 절로 나네 구자나 한 장 들고 보니 귀뚜라미 슬피 울며 가을밤은 깊어가네 십자나 한 장 들고 보니 십자매야 백자매야 우리 민족 오천 자매 품바 타령을 추어보세 허어! 품바 잘도 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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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이 세계일수록 장유유서가 분명한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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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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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그들을 거지·비렁뱅이·품바 또는 각설이라고 합니다. 무위도식하며 허기진 배만 채우려 동냥하는 무리들은 그냥 거지며 비렁뱅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비록 찌그러진 깡통을 들고 나달나달 떨어진 옷을 입었을지라도 타령조에 세상만사를 읊고 다니는 무리들은 배고픔만을 해결하려는 거지들이 아니라 각설이입니다.
각설이를 한문으로는 물리칠 각(却), 베풀 설(說)로 씁니다. 그러나 일설에는 각설이를 깨달을 각(覺), 말씀 설(設), 다스릴 이(理)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인생의 심오함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장타령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무리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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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냥 나가고, 싸우고, 기뻐서 춤추고, 힘들어 한 쉬고.... 각설이의 삶이라고 우리네와 다를 게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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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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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타령에는 체면이 있고 품위가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눈치없이 이집 저집을 찾아다니지만 반갑지 않은 사람이 또 찾아옴으로 맞아야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듯 장타령은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로 시작됩니다.
타령이 시작될 때면 주문이나 입가심처럼 시작되는 후렴 '얼 씨구씨구 들어간다'는 정신의 씨앗인 '얼 씨가 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하니 이리 보면 이런대로 저리 보면 저런대로 뼈가 있는 내용들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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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더기를 걸친 또 다른 각설이들이 사람들의 애간장에 동정을 호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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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바윗덩어리나 바짝 마른 땅에는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어도 살아나지 못하듯 메마른 인성으로는 제 아무리 출세를 하여도 인간사가 다 허세임을 알게 해 줍니다. 촉촉이 내리는 단비가 대지에 생명력을 가져다주듯 흐물흐물 따라부르는 각설이 타령에서 마음의 갈증을 달래 봅니다. 각설이 타령 속에 단비같은 심오함이 있습니다.
듣고 있노라니 어깨가 들썩거리고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며 배꼽을 잡게도 합니다. 살벌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며 촉촉해지니 각설이타령 속으로 빠져 봅니다.
공부하지 않는 선비들을 한바탕 조롱하고 나서는 인생을 노래했습니다. 젖먹는 아기송아지를 빌어 태어남을 노래하고, 이슬맞은 수선화의 함초롬한 모습과 벌·나비의 나풀대는 날갯짓에 처녀총각의 뜨거움을 실었습니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노래한 듯 하지만 거기엔 인생의 유년기와 청장년기 그리고 노년기가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살다보니 가끔은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퍼질러 앉아 육두문자 섞어가며 질펀하게 욕 한 마디 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마음에 끓어오르는 분함이 사그라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각설이 타령을 부르면 될 듯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지는 거지일 뿐'이라고 각설이의 모든 것을 치부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세타령을 하듯 읊어 대는 그들의 타령에는 회초리같은 따끔함과 햇솜 같은 포근함이 있고, 애틋함과 간절함도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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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막입구에 금줄이 걸렸습니다. 비록 움막에 살고 밥을 빌어먹으며 살지만 각설이들 역시 사랑을 하니 아기를 낳았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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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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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진 깡통에 동냥하는 그것들이 비록 눈에는 찬밥 한 술, 반찬 몇 조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거기엔 세상인심과 삶의 지혜가 담겨있고, 방편의 해학과 물길 같은 순리가 담기는 것입니다.
비록 축제의 장에서는 연출에 의해 이루어지는 각설이타령일지라도 각설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맛이 우러납니다. 허리춤에 찌그러진 깡통 하나 둘러차고 팔도유람, 세상만사를 풍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허망한 꿈은 아니리라 자위하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