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광고]"정원아~"…청정원, 식품업계 '남성 모델' 시대 열다
당대 톱 남성배우 통해 주방의 이미지 바꿔놔
기능보다 감성 앞세운 감성 마케팅의 선두주자

[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식품 광고에 등장한 남성 모델
깔끔한 한 남성이 신문을 보며 등장한다. "청정원 진육수라, 이거 좋은데"라며 턱을 매만진다. "국물은 역시 육수로 끓여야지" "야 역시 미원인데. 국물걱정 끝"이라며 깨달은듯한 제스쳐를 취한다. 이때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국물맛이 확 달라집니다'라는 강렬한 카피와 함께 당당하게 등장하는 청정원 진육수 제품이다. 남성은 결심한 듯 외친다. "슈퍼에 가야지!" 그의 뒤를 이어 여성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나도 가야지"라고 이야기한다. 청정원의 로고가 화면을 장식하며 광고는 막을 내린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식품 광고, 특히 조미료나 장류 광고에서 남성이 메인 모델로 등장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에 가까웠습니다. 요리와 살림을 여성의 영역으로 보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광고는 고두심, 김혜자 등 이른바 '국민 어머니' 이미지의 여성 배우들이 주도했는데요. 소비자들은 이런 어머니와 같은 여성 모델을 통해 "저분이 쓰는 간장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라는 신뢰감을 얻었습니다.

그런 식품업계에서 '식품 광고는 여성의 영역'이라는 공식을 깬 광고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대상 청정원입니다. 대상은 1996년 신생 브랜드였던 '청정원'의 첫 제품인 '청정원진육수' 광고 모델로 배우 박상원을 기용했습니다. 당시 모래시계에서 검사 역할로 큰 인기를 얻은 박상원을 앞세워 '신뢰' 이미지를 강조한 전략이었습니다.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한 드라마의 후광 효과는 곧바로 브랜드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대상은 성공한 남성의 이미지를 앞세우면서 요리가 여성만의 고된 노동이 아닌, 남성도 함께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는데요. 이는 곧 식품업계 남성 모델 시대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건강한 프러포즈
청정원이 연 '남성 모델 전략'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합니다. 대상은 2003년 차승원을 '청정원 순창고추장' 모델로 기용했는데요. 해외여행 중 고추장을 절실하게 찾는 그의 익살스러운 연기는 당시 해외여행 증가 흐름과 맞물리며 소비자 공감을 끌어냈습니다.
차승원 특유의 유머가 더해진 이 캠페인은 2006년 월드컵 시기까지 이어졌는데요. 이는 곧 실질적인 시장 점유율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철옹성 같았던 경쟁사의 해찬들 고추장을 꺾고 순창고추장이 시장 1위를 탈환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 겁니다. 이에 식품업계에는 "잘 고른 남성 모델 열 여배우 안 부럽다"라는 공식이 성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점은 '톱스타 라인업'이 완성된 2007~2008년입니다. 청정원은 2007년 '건강한 프러포즈' 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정원아~ 나랑 결혼해 주겠니?"라는 메시지로 시작된 이 광고는 제품 노출을 최소화하고 브랜드 자체를 각인시키는 전략을 꾀했습니다.
광고 모델로는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배우 장동건이 발탁됐는데요. 장동건이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선택한 식품 브랜드라는 점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강인한 스크린 이미지를 가진 장동건이 식품 광고에 등장한 건 이례적이었지만, 오히려 친근함을 부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런 감성적인 흐름은 2008년 배우 정우성을 통해 절정에 달했습니다. 정우성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가상의 인물인 '정원이'의 이름을 부르는 광고는 대한민국 주부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관통했는데요. 그동안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로만 불리며 정작 자신의 이름은 잊고 살았던 여성들에게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가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콘셉트는 깊은 정서적 위안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당시 광고에는 그의 절친인 이정재가 우정 출연하며 보는 재미를 더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청정원은 '건강한 프러포즈' 캠페인을 통해 브랜드를 의인화하고 소비자와의 관계를 '연인 같은 유대'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정원이' 콘셉트는 이후에도 청정원을 상징하는 대표 캠페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광고를 통해 단순히 "우리 제품이 맛있다"라고 말하는 대신, 소중한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을 '프러포즈'라는 로맨틱한 틀에 담아냈습니다. 요리를 '가사 노동'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가장 건강한 약속'으로 정의한 셈이죠.
감성 자극 마케팅
박상원, 차승원을 거쳐 장동건으로 이어진 광고의 흐름은 식품업계에서 남성 모델이 여심(女心)을 흔드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임을 증명했습니다. 이후 청정원의 행보는 더욱 확대됐는데요. 2010년대 들어 이승기, 김지석 등을 통해 젊고 건강한 이미지를 강화했습니다.
2017년 '미원' 모델로 나선 김희철은 유머러스한 접근으로 MSG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는데요. 기존에 '화학조미료'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던 소비자들에게 친근한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을 결합해 인식을 전환한 사례로 꼽힙니다.
2021년에는 배우 송중기가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정원이' 콘셉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CM송을 직접 부르며 브랜드와 대화하는 형식을 선보인 건데요. 과거 '정원아~'로 대표되는 감성 코드를 유지하면서도, 영상·음악·스토리를 결합한 콘텐츠형 광고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한 브랜드 노출을 넘어 소비자가 '보고 즐기는' 광고로 진화한 겁니다.

청정원이 쏘아 올린 남성 모델 전략은 이후 식품업계 전반으로 확산했습니다. 라면·간편식·소스류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남성 배우와 예능형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가 잇따랐고, '요리하는 남성'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1인 가구 증가와 맞벌이 확대 등 사회 구조 변화와 맞물리며 더욱 빠르게 확산했죠.
대표적으로 동서식품은 배우 공유를 '카누'의 얼굴로 내세워 남성이 직접 커피를 타주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커피 시장의 판도를 바꿨습니다. 아워홈도 외식브랜드 손수의 광고모델로 송승헌과 윤상현, 송중기를 발탁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대상의 청정원 광고는 기능 중심의 메시지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정서적 공감을 자극하며 브랜드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청정원의 광고는 주방을 단순한 가사 노동의 공간이 아닌 소통과 설렘의 공간으로 확장했는데요. 이는 오늘날 식품 마케팅이 나아가야 할 '공감의 기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선구적인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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