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전반

일본 농업현장을 가다② 아베 정부 ‘농정 대개혁’

곡산 2017. 6. 14. 08:18

일본 농업현장을 가다② 아베 정부 ‘농정 대개혁’

‘쌀값 보호’ 겐탄(減反) 정책 폐지…농민 개탄
8년 뒤 사료용 10배․가루용 5배 증산 목적

  • 등록2017.05.31 20:55:43

타 작물 재배 늘리려 직불․생산조정제 없애

‘전업농 육성’ 임대차 중심 규모화․단지화
농지 임대차 중개 ‘농지중간관리기구’ 신설
전략작물의 소득대체 여부가 개혁 성패 좌우

도쿄도 메구로구에 위치한 쌀 가게 ‘스즈노부’. 소비자 기호에 맞춘 다양한 품종의 쌀을 판매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품종의 개발을 생산자에게 주문하기도 한다. 쌀 소비량 감소에 따른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쌀 품종 개발로 소비자 입맛 사로잡기에 나선 것이다.
▲ 도쿄도 메구로구에 위치한 쌀 가게 ‘스즈노부’. 소비자 기호에 맞춘 다양한 품종의 쌀을 판매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품종의 개발을 생산자에게 주문하기도 한다. 쌀 소비량 감소에 따른 경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쌀 품종 개발로 소비자 입맛 사로잡기에 나선 것이다.


(한국농업신문=유은영 기자)한국은 2018년 일본의 생산조정·쌀 직불제 폐지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쌀 직불제 폐지는 주식용 쌀 감산으로 수급불균형을 완화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다. 사료용 등 전략작물을 생산케 해 밥쌀용 생산을 줄여 가격폭락을 막아 농가소득을 보전하려는 것이다.


1971년부터 보조금을 주며 쌀 생산량을 조정해온 일본의 겐탄(減反) 정책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폐지되는 것으로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쌀 품질과 가격 경쟁의 시대가 열린다.


일본은 1960년대 후반 처음으로 쌀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자 생산량을 억제해 가격을 유지하는 경작면적 줄이기 정책인 겐탄정책을 폈다.


이제 막 생산조정제 도입 논의가 활기를 띤 한국은 일본의 반세기에 걸친 생산조정제 운영과 폐지 등을 담은 쌀 정책 개혁안을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쌀 생산량, 농민 판단에 맡겨
일본은 2018년부터 정부 주도의 쌀 생산조정제를 폐지하고 생산자의 자율적 판단에 의한 생산체제 구축을 추진한다. 필요할 경우 증산도 가능하게 되는 등 생산자의 경영자율성이 제고되는 것이다. 반면 그만큼 시장에서 품질과 가격을 놓고 경쟁하는 부담도 져야 한다.


쌀 생산조정제는 1971년 쌀 과잉재고를 해결하고자 도입됐다. 논에 벼 대신 대체 작물을 재배하거나 휴경하면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게 주 내용이다. 이어 2010년 쌀 생산 농가에 고정직불제와 변동직불제 지급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은 주식용 쌀 생산에 집중된 논 농업 구조를 생산조정제로는 줄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생산조정제 폐지와 사료용·가루용 쌀 등 전략작물로 대체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아베, ‘공격하는 농업’ 기치 대개혁
생산조정제는 중앙정부가 쌀을 재배하지 않는 면적을 각 광역단체에 배정하는 방식에서 생산량 목표를 제시하는 방법까지 형태를 달리하며 반세기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2013년 ‘공격하는 농업’을 기치로 내세운 아베 신조 총리 정권의 방침에 따라 내년부터 이를 폐지하는 대개혁을 진행 중이다. 총리실 산하에 쌀 정책 개혁 추진과 관련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농림수산업·지역의 활력 창조본부’를 설치하고 아베 총리가 직접 본부장을 맡아 개혁을 주도한다.


정부가 생산목표량을 설정하고 이를 지역별로 할당하던 관행이 폐지되는 것이다. 대신 콩이나 밀, 보리 등 전략 작물에 주는 보조금을 확대한다. 실제 사료용 쌀·가루용 쌀의 직불금은 10a당 8만엔에서 10만5000엔으로 증액했다.


쌀 재배를 금지한 농지에 지급해오던 보조금 정책도 바뀐다. 오랫동안 쌀을 생산하지 않아 논두렁과 수로가 사라진 논은 다른 농산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했다. ‘수입감소영향완화 직불’의 대상자를 확대하고 ‘농지유지직불’을 새로 도입했다. 수입보장보험도 올해 도입을 검토중이다.


‘수입감소영향완화 직불’은 주식용 쌀과 밭작물(맥류 대두 사탕무 전분용감자)의 수입합계가 평년 수입합계보다 낮은 경우 그 차액의 90%를 보전해주는 장치다.


일본 정부는 이런 방침을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했으며, 각 지자체는 올해부터 농지 정리를 실시할 계획이다.


김태곤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지원금을 주어 벼 재배면적을 감소시킨다는 의미에서 생산조정제와 본질이 다르지 않다”며 “전략작물이 쌀 재배 소득을 대체할 수 있을 지가 생산조정·직불제 폐지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료용․가루용 쌀에 집중
아베 내각의 쌀 정책 개혁 목표는 2025년까지 2013년과 비교해 사료용 쌀은 10배, 가루용 쌀은 5배 생산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주식용 쌀 생산비는 2023년까지 농업의 규모화·단지화를 통해 40% 절감시킬 계획이다.


전업농 경작비중은 농지중간관리기구의 활용으로 2013년 48.7%에서 80%로 확대한다. 일본 정부는 쌀 농업을 매입·매매 위주에서 임대차를 중심으로 규모화·단지화하기로 하고 농지임대차를 중개하는 농지중간관리기구를 신설했다.


이같은 로드맵에 따라 2015년 사료용·가루용 쌀 생산량은 전년대비 118% 증대했다. 주식용 쌀 생산비는 2014년 전년대비 1.4% 상승했는데 광열비 증가가 원인으로 꼽힌다. 또 전업농 경작비중은 전년대비 1.6% 상승한 50.3%를 달성했다.


4년만의 첫 상승이지만 농지중간관리기구를 통한 농지유동화 실적이 4분의 1을 차지한다.


직불제 ‘예산폭탄’ 지적
2010년 도입된 쌀 직불제는 쌀에 재정을 집중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고정직불금 지급액은 2010년 1529억엔에서 2011년 1533억엔, 2012년 1552억엔으로 점차 늘었으며, 변동직불은 2010년 139억엔이 지불됐다가 이후 2년 동안 지급액이 전무했다.


이 기간 동안 지급된 직불 예산이 농림수산성 총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2.5%, 6.7%, 7.1%다.


영농규모는 겸업농가가 주를 이루는 영세한 구조였다. 쌀 재배농가 중 겸업농가 비중이 2013년 61%에 달했다. 이후 전업농으로의 경지 집중이 진전되다 2010년 이후 정체현상을 보이는데, 이는 농지의 분산으로 인한 단지화의 어려움과 임대·임차인의 부족 때문으로 분석된다.


1인당 쌀 소비, 반세기만에 반토막
반세기에 걸친 생산조정제 운영과 아베 정권의 쌀 정책 개혁은 모두 쌀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한 데서 비롯된다. 일본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62년 118㎏에서 2012년 56.3㎏으로 두 배 가량 줄었다.


1970년 일본 정부 쌀 재고는 총수요량의 60%에 달하는 720만톤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740만톤을 사료용 등으로 처분하고 1971년 54만ha의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경우 4만엔(10a)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쌀 생산조정제도를 도입했다.


1980년에는 정부재고가 다시 666만톤으로 늘어났고 600만톤을 특별 처분한 후 생산조정을 강화했다. 2001년 생산조정면적이 100만ha를 돌파하자 2004년부터 생산조정면적 대신 수급균형을 이룰 수 있는 생산량 목표를 지역별로 할당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쌀 생산과잉이 지속되는 가운데 쌀값의 지속적인 하락에 대응해 1998년 쌀값보전제도, 2007년 품목횡단적 직접지불제, 2010년 쌀 고정직불제와 변동직불제가 도입됐다.


생산조정제로 감소한 벼 재배면적을 보면 2003년 한해만 102만ha에 달한다. 1969년부터 2003년 사이 감소한 151만ha 중 거의 대부분이 생산조정제로 감소한 것이다. 생산조정 정책에 따라 시장기능이 정지되고 막대한 보조금이 지급돼 왔음을 깨닫자 생산자와 농협 등 당사자 간에 생산조정제도가 한계에 왔다는 공감대가 나타났다.


생산조정으로 쌀 공급량이 감소해 시장가격이 상승하는 이득을 생산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농가가 향유하는 무임승차문제도 꾸준히 제기됐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10년부터 생산조정 참가자만 고정직불을 지급했다.


‘빵’ 학교 급식…국민 ‘입맛’ 변화
일본 농민들도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쌀 수요량을 회복하기 위해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농민운동전국연합회 요시가와 사무국장은 “쌀 소비량이 720만톤으로 매년 8만톤 정도 소비가 줄고 있다”며 “미국의 밀가루가 보급된 것이 학교 급식에서부터였다. 학교 급식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빵이 학교 급식으로 채택된 것이 1948년이다. 이후 1974년까지 학교 급식 식단은 빵으로만 짜여졌다. 1975년부터는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쌀을 급식으로 내자는 움직임이 각 지역에서 시작됐고 점차 밥이 급식으로 나오는 날이 이틀, 사흘씩 늘어갔다.


농민들은 쌀 소비 확대운동과 함께 밀가루에 빼앗긴 입맛을 쌀로 돌리는 운동도 병행한다.


요시가와 국장은 “빵이 학교급식으로 채택돼 밀가루 소비가 늘자 쌀 소비는 자연 감소했고, 이와 함께 ‘빵은 맛있다’는 인식의 변화와 미각의 변화까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한국, 대개혁 결과 지켜봐야
일본의 생산조정제 폐지에 따른 영향은 아직 두고봐야 한다. 생산조정제 도입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한국 정부는 향후 일본의 생산조정제 폐지로 인한 정부의 구속력 약화가 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긴밀히 주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태곤 연구위원은 “앞으로 사료용 등 전략작물 생산을 유도해 밥쌀용 생산을 감소시켜 가격폭락을 막을 수 있을지, 또 전략작물이 쌀 소득을 대체할 수 있을지, 재정부담은 감당할 수 있을지 등을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