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신화’ 고 정주영 회장, “피는 물보다 진하다” | ||||||||||||||||||
| [특집기획]재벌가 로열패밀리 범 현대家 2012년 혼맥 분석‘재벌 신화’ 정주영 “피는 물보다 진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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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조경희 기자]1998년 소떼 500마리와 함께 방북하던 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汎 현대家를 만든 국내 재벌기업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신화’의 주인공이다.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와 조선소를 지을 모래사장 사진 한 장으로 선박을 수주한 현대중공업 스토리는 유명하다. 국내 최초의 자동차 고유 모델인 ‘포니’ 수출 등 뚝심 있는 그룹을 만든 범 현대가를 <파이낸셜투데이>가 되짚어 봤다. 무장한 군인들 사이로 철조망을 가로지르는 故 정주영 회장과 소떼는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었다. 분단 이후 민간인이 정부 관리의 동행 없이 판문점을 통과한 것은 역사 상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북한으로 출발하기 전 평화의 집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방북은 개인의 고향 방문이 아니라 남북한 사이에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금은 의미가 많이 퇴색됐지만 현대그룹에 있어 대북사업은 그룹의 상징 그 자체다. 늘 남들이 가지 않던 길을 가는, 뚝심 있는 현대는 고 정주영 창업주와 닮아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살아생전에 입버릇처럼 되뇌던 “시련이란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엎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묵직하게 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15년 11월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을 피해 네 차례에 걸친 가출을 감행해 복흥상회(쌀 소매업)에 배달꾼으로 취직한다. 간난고초의 노력 끝에 주인에게 인정받아 쌀가게를 넘겨받는다. 이것이 범 현대가의 시초가 됐다. 1940년에는 서대문구 아현동에 자동차수리공장 ‘아도서비스’를 창업했다. 이것이 훗날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이 된다. 전후 복구 건설사업에 주력한 현대건설은 1957년 최대 단일공사였던 한강인도교 복구공사를 맡아 일약 대형건설업체로 부상했다. 시멘트 국산화에 뜻이 있었던 그는 1964년 6월 단양에 20만t 규모인 현대의 첫 생산공장(시멘트)을 준공했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주도한 정주영은 그 무렵 현대자동차를 설립하고 포드의 코티나를 조립 생산하면서 자동차 산업에도 진출했다. 세계가 정주영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현대중공업 창업 당시다. 이 때 그 유명한 일화가 등장한다.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와 조선소를 지을 모래사장 사진 한 장으로 선박을 수주한 것이다. 특히 대형선박 건조 경험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정주영은 현대중공업 공장 건설과 동시에 26만t급 대형 유조선 2척을 건조했다. 2년3개월 만에 조선소 건설과 배를 함께 건조하는, 세계 선박 건조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1976년에는 한국 최초의 자동차 고유 모델인 ‘포니’를 수출했고, 1983년엔 현대전자산업을 설립해 중공업·건설·자동·차전자를 주축으로 하는 중화학그룹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화려한 기업 비해 혼맥 수수 사업 만큼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진행했던 정주영 명예회장이지만 혼맥에서는 자유연애를 중시했다. 현대家는 다른 재벌가와는 다르게 남자든 여자든 배경을 보지 않고 자유연애를 인정했으면 단 이혼은 절대 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결혼 승낙 시 평생 이혼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다짐을 받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남자의 경우 어느 집안의 아들이라는 배경은 철저히 무시하고 얼마나 유능한 청년이냐는 장래성을 승낙의 잣대로 삼는다. 고 정 명예회장 스스로도 부인 변중석씨와도 연애 결혼을 했으며 자녀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면 결혼 상대자를 집으로 데려오게 해 간단한 인사만 받고 허락했을 정도로 정략 결혼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 회장은 부인 변중석씨와의 사이에서 정몽필, 정몽구, 정몽근, 정경희, 정몽우, 정몽헌, 정몽준, 정몽윤, 정몽일 남매를 낳았다.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정몽필 사장은 현대양행 과장, 현대건설 상무, 현대상사 부사장 등을 거치며 착실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교통사고가 났던 당시, 정몽필 사장은 적자투성이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정몽필 사장은 부인 이양자씨와의 사이에 은희, 유희 등 2녀를 뒀다. 맏손녀 은희씨는 친구 소개로 만나 현대전자 평사원과 연애 끝에 지난 1995년 8월에 화촉을 밝혔다. 둘째 유희씨는 쌍용가와 사돈을 맺었는데 현대와 쌍용의 두 자녀가 모두 유치원, 초등학교 동창이다. 정 명예회장의 방북 당시 곁에서 줄곧 손을 부축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손녀딸 정유희와 김석원 쌍용양회 회장 아들이 결혼한 것이다. 김지용씨는 또 정주영 명예회장이 사랑하는 손녀딸의 배필에 적합한 인물로 직접 골랐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몽구 회장은 첫째딸 정성이씨, 둘째딸 정명이씨, 셋째딸 정윤이씨와 외아들 정의선씨를 뒀다. 정성이씨는 선두훈 대전 선병원 이사장과 결혼했으며 정명이씨는 정태영 현대캐피탈‧카드 사장과 결혼했다. 정윤이씨는 신성재씨와 현대정공 근무 시절 만나 결혼했다. 외아들 정의선씨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딸인 정지선씨와 결혼했다.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은 선 굵은 외모가 정 회장과 가장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둘은 경복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동문이기도 하다. 정몽근 명예회장은 우경숙씨와 결혼, 슬하에 지선, 교선 등 2남을 뒀다. 정지선씨는 황선덕 전 법무부 장관의 손녀인 황서림씨와 결혼했으며 정교선 현대홈쇼핑 사장은 허재철 대원강업 회장의 딸인 허승원씨와 백년 가약을 맺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하나뿐인 딸 정경희씨는 선진종합의 정희영 회장과 혼인했고, 정희영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해 조선 수주 등에서 뛰어난 수완을 보이며 왕회장의 눈에 들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90년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45살의 나이에 목숨을 끊은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은 숙명여대 출신인 이행자씨와 연애 결혼했다. 당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정일선, 정문선, 정대선씨를 모두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비앤지스틸에 입사시키며 유족을 보살폈다. 정몽우 회장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현재 현대비앤지스틸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고, 차남 문선씨도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다. 막내 대선씨는 현대 비에스앤씨 대표이사로, 노현정 전 아나운서와의 결혼으로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자유연애를 중시한 현대家의 혼례다.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이자 정 회장의 넷째 동생이다.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현영원 전 신한해운 회장의 딸인 현정은 현 현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현정은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중공업 행사에 참석한 현정은씨를 눈여겨보고 혼사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의 사이에 지이, 영이, 영선 등 1남2녀를 뒀다. 故 정몽헌 회장은 2000년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회장에 올랐으나,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던 중 2003년 8월 계동사옥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범 현대가는 왕자의 난에서부터 시작된 양측 간의 앙금은 아직도 남았다. 지난해에는 현대건설 인수전을 거치며 법적 소송이 오갈만큼 벼랑 끝으로 치닫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대선주자이기도 한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은 31살 때 현대중공업 사장이 됐다. 정 의원은 김영명씨와 결혼해 기선, 남이, 선이, 예선 등 2남2녀를 뒀다. 정몽준 의원의 부인 김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막내딸이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은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결혼해 슬하에 정이, 경선 등 1남1녀를, 막내인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은 권준희씨와 사이에 현선, 문이 등 1남1녀를 뒀다.
창업주의 일곱 동생, 현대왕국 건설 정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인 정인영 전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그룹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다. 슬하에는 정몽국 엠티인더스트리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을 뒀다. 정순영 전 성우그룹 명예회장은 1969년 현대건설에서 분리된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독립, 성우그룹을 일궜다. 정순영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정 회장의 사촌인 몽선, 몽석, 몽훈, 몽용씨는 현재 각각 성우그룹, 현대종합금속, 성우전자, 성우오토모티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정희영 여사는 김영주 전 한국프렌지공업 회장과의 사이에 윤수, 근수 등 2남을 뒀다. 한국프렌지공업은 현재 정 회장의 사촌인 김윤수 회장이 경영을 맡아 이끌고 있다. 정 명예회장의 남자형제 중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이는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유일하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조카인 정 회장과 나이차가 불과 2살밖에 나지 않는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슬하에 몽진, 몽익, 몽열 등 3남을 뒀다. 모두 KCC 계열사에 몸담고 있다. 한 다리 건너면 삼성, LG 등 연계 현대그룹 정주영 가문의 혼맥도 역시 화려함에서 전혀 손색이 없다. 현대가문은 삼성가문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그러나 한 다리만 건너뛰면 사돈지간으로 연결된다. 이들 가문을 연결해주는 매개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큰 딸인 숙영씨가 노 전 총리의 큰 며느리다. 노 전 총리는 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인인 홍진기 전 내무장관과 사돈 간이다. 이로 인해 현대와 삼성가문은 직접적인 성혼은 없었지만 한 다리 건너 사돈 지간으로 얽혀 있다. LG와 혼인관계를 형성한 것은 지난 1997년이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4남 몽우씨의 장남 일선씨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장녀인 은희씨와 혼인했다. 당시 두 사람은 미국 유학시절 만나 결혼했다. 이 결혼은 현대가 재벌간 혼맥지도를 넓혀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대는 또 1995년 강원산업과 인연을 맺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장남 의선씨와 정도원 강원산업 회장의 장녀 지선씨가 화촉을 밝혔다. 이는 재계에서 재벌 3세간 성혼의 불을 지피게 한 계기가 됐다. 쌍용도 현대와 사돈지간이다. 정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아버지로부터 총애를 받았던 차녀 유희씨가 김석원 쌍용 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혼례를 올렸다. 현대그룹은 ‘왕회장’으로 불리던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정치입문, 대선출마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또 2000년 이후에는 그룹 회장직을 놓고 ‘왕자의 난’이 벌어지는 등 수수한 혼맥과는 다르게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이 왕자의 난으로 벌어진 앙금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드라마 ‘욕망의 불꽃’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현대그룹. 소박함과 수수한 혼맥으로 ‘배경’을 보지 않고 혼사를 맺었던 현대그룹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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