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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베이커리 & 북카페 ‘피스 오브 마인드’ 김종헌·이형숙 부부의 맛있는 인생 | ||
대한민국 성인 남녀라면 누구나 은퇴 후 삶으로 전원 생활을 꿈꿨을 법하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나무가 우거져 있는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슴 설렌다. 소일거리로 카페를 운영한다면 금상첨화. 그러나 꿈은 상상으로만 그친다. 치열한 삶 속에서 막연한 계획은 실천하기 어렵고, 또한 사회에서 자신이 일궈낸 것들을 선뜻 버리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런 꿈을 현실화한 이들이 있다. 춘천시 석사동에 위치한 베이커리 겸 북카페 ‘피스 오브 마인드’를 운영하는 김종헌(62)-이형숙(57) 부부. 남편 김씨는 2003년 여름 강원도 홍천에서 처음 개업(2006년 춘천으로 이전)하기 전 비비안 ㈜남영 L&F의 CEO였다. 억대 연봉을 미련 없이 박차고 나온 남편의 결단력이 놀랍거니와, 그 뜻을 존중한(사실은 맞장구였지만) 부인의 이해심도 대단하다. 개업한 지 6년이 지난 지금 피스 오브 마인드는 춘천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주말에는 월정사 주지 스님 일행이 오셨다. 불경을 몇 권 꺼내 보여 드렸더니 깜짝 놀라면서 기증해 달라고 하더라.”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달 30일 김씨는 평생을 걸쳐 모은 컬렉션이 뿌듯한 듯 이렇게 자랑했다. 글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 했던가. 김씨가 카페를 운영하며 틈틈이 쓴 3권의 책 속에는 그들 부부의 인생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피스 오브 마인드> 2004년 여름 결혼 30주년을 기념해 부부가 공동으로 저작한 책이다. ‘빵 굽는 아내와 CEO 남편의 전원 카페’라는 부제는 카페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100평 남짓한 실내 공간에는 이들 부부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서를 비롯한 책이 1만5000점, 음반이 3000점, 서화 관련 물품이 500점, 나머지 기타 물품이 1500점 등 어림잡아 2만여 점. 흡사 개인 박물관에 온 느낌이다. “얼마 전 명창 조상현씨가 오셨는데 옛날 축음기로 판소리를 틀어줬더니 무척 좋아하시더라.” 2만여 점의 소장품 가운데 북카페를 내기 위해 전시용으로 구입한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책·음반·서예 등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뉜 공간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소장품들은 그가 어릴 적부터 하나 둘씩 모아 온 것이다. 단원 김홍도의 목판화가 새겨져 있는 문화재급 고서 <오륜행실도>에서부터 1978년 어린이회관 무지개극장에서 공연된 어린이 뮤지컬 ‘플란다스의 개’ 팸플릿까지, 심지어 부인 이씨의 초등학교 생활통지표까지 진열돼 있다. “우리집은 무엇이든 들어오면 버리는 법이 없다. 서울에서 68평 주택에 살았는데 창고 두 개를 꽉 채우고도 집 내부,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책을 쌓아놨다. 잠을 잘 공간마저 없어질 정도였는데 책에 의해 우리가 쫓겨난 셈이다.” 남편의 책사랑과 수집벽을 설명한 이씨는 “서울에서 홍천으로 이사갈 때 1톤 트럭 14대에 이삿짐을 싣고 갔는데, 3년 전 홍천에서 이곳 춘천으로 올 때는 25대를 불렀다”라고 덧붙였다. 통로 오른쪽에는 각종 허브가 든 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실내 정중앙에는 한눈에 봐도 먹음직하고 고급스러운 케이크가 진열돼 있다. 제빵·제과·전통음식의 전문가인 이씨는 이곳의 맛을 책임진다. “이 사람도 많이 공부했다. 음식 관련 대학을 무려 다섯 개나 나왔다. 허브는 독일에서 들여오고, 밀가루는 호주 청정 지역에서 나는 것을 수입해 쓰고 있다. 음식의 맛과 질, 그리고 정성은 아마 서울 일류 호텔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것을 ‘춘천 가격’으로 받고 있는 셈이다.” 이번엔 남편 김씨가 부인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 김씨가 2005년 10월 펴낸 ‘2막 인생’의 경영론이다. 그가 북카페 개업을 본격적으로 구상한 시점은 1980년대 초, 자신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나이 마흔과 거의 일치한다. 당시 그는 유럽 지사장으로 일했다. 유럽 전역을 돌면서 수출입 업무를 하다 보면 중세 고성을 개조해 만든 호텔 및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옛 성주의 서재를 리모델링해 만든 카페였다. 이후 뉴욕과 홍콩으로 근무지가 바뀌면서도 그곳의 북카페를 찾아다니며 2막 인생을 위한 자료 수집을 했다. 2000년, 회사에 당당히 사직서를 냈다. 맏딸 세경(33)씨를 대학 졸업 후 출가시킨 바로 다음날이었다. 사직 사유란에는 ‘북카페를 열기 위해’라고 적었다. “30년 다녔던 회사이고 사장·부회장까지 역임해 원한다면 일흔 살까지 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더 나이가 든다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식을 빨리 결혼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내가 제빵 기술을 배운 시기도 남편이 북카페를 구상한 시점과 비슷하다. 독일에서 유명한 빵집 ‘헤라클레스’라는 곳에서 3년간 도제식으로 수업받았다. “남편에게 도움을 주려고 배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해외에 나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터라 ‘이렇게 혜택을 받았으니 무엇이든 한 가지 배우고 돌아가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이후 이씨는 음식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귀국 후 한국제과학교를 졸업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 농무부와 소맥협회가 세운 AIB(American Institute of Bakery)라는 학교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2년간 공부했다. 다시 귀국해서는 수능시험을 준비해 아들(김형태·32)과 같은 학번으로 배화여전 전통조리과에 입학했다. 그곳을 졸업한 뒤 산업대 식품공학과에 편입했고, 고려대 생명과학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대학에서 전통조리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씨는 최근 문화관광부 산하 사찰음식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게 됐다. “오늘에 충실하고 열정을 쏟으니 이런 기회가 온 듯하다.” 서울에서 새벽 4시면 일어났던 부부는 요즘도 5시면 일어나, 남편은 글을 쓰고 아내는 산행을 한다. 카페가 문을 닫는 시간이 밤 10시께니 하루 24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있는 셈이다. <추사(秋史)를 넘어> 서예 애호가이기도 한 김씨가 2007년 12월 발간한 책이다. 추사 김정희와 그를 전후로 한 서예가 6명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김씨는 서울중 1년 때 세창서관 등 고서점에서 한문과 한자로 된 책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예에도 관심을 가졌다. 카페 주방과 나란히 한, 실내의 맨 안쪽 공간은 여러 가지 휘호와 서예 작품으로 도배돼 있다. 갤러리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김씨는 카운터가 있는 입구 바로 옆 공간을 개인 집필실로 꾸몄다. 책상에는 컴퓨터가 있고, 바로 옆 책장에는 글을 쓸 때 필요한 참고 서적들이 가득 꽂혀 있다. “앞으로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려 한다. 지난주 서울에서 불교 관련 책을 두 권 쓰겠다는 계약을 하고 왔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불교·한문학·서예 등 다방면에 걸쳐 박식한 그가 북카페를 낸 데에는 책을 읽기보다 글을 쓰겠다는 욕구가 강했을 법했다. 부부의 취미는 이웃과 나눔에도 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지역 주민들을 위해 남편은 영어 강좌를 개설해 가르치고 있으며, 아내는 전통요리 강좌를 열고 있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나누면서 살자는 게 우리 생활 신조다.” 아내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은 가장 높이 걸려 있는 표구를 가리킨다. ‘見利思義(견리사의).’ “눈앞에 이로운 것을 보거든 그것이 의에 어긋나지 않는지 먼저 헤아리라는 뜻의 우리집 가훈입니다.” ‘은퇴했다’고는 하나 정작 은퇴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부는 여전히 치열함과 정직함, 그리고 나눔이 어우러진 삶을 살고 있었다. 다만 모든 것을 즐긴다는 점이 다를까. 앞으로 나올 책에는 부부의 어떤 삶이 들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춘천=글·정회훈기자 hoony@ 사진·안윤수기자 ays77@ | ||
작성일 : 2009-04-01 오후 6:5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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