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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대화명 ‘절과 중’에 갑자기 자상해진 부장님(펌)

곡산 2006. 11. 3. 17:27
메신저 대화명 ‘절과 중’에 갑자기 자상해진 부장님
[쿠키뉴스 2006-11-03 08:28]

[쿠키 생활] 2년째 광고업계에 몸담고 있는 조모(29)씨. 회사 업무용으로 컴퓨터 메신저 프로그램을 매일 쓴다. 조씨는 며칠 전 출근하자마자 메신저 대화명을 ‘절과 중’으로 바꿨다. 아이템 개발 압력과 마케팅 성적표가 주는 스트레스로 회사에 정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터여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의미로 만든 대화명이었다.

이날 조씨 메신저에는 “회사를 그만 두려느냐”는 동료와 친구들의 추궁이 쏟아졌고, 조씨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뒤 며칠간 직속 상관인 과장과 부장의 타박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내려오던 신규 업무지시도 거의 없어 밀린 업무를 처리할 여유가 생겼다. 메신저 대화명에 숨은 뜻을 간파한 상사들이 위축된 조씨의 기를 살려주려 숨통을 열어준 것이었다.

영업사원 이모(28)씨는 최근 출근 버스에 올라탄 뒤에야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업무 특성상 거래처 연락 등을 위해 휴대전화는 항상 곁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이씨는 집에 돌아가는 대신 버스 안에서 노트북을 켜 메신저에 접속해 대화명을 ‘휴대전화 집에 두고 옴’이라고 바꿨다. 회사 상사와 거래처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루종일 휴대전화 없이 지냈지만 메신저로 모든 업무 지시와 연락이 이뤄져 아무런 차질 없이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회사원 김모(28)씨는 몸이 좋지 않으면 메신저 대화명에 ‘감기 몸살’, ‘컨디션 난조’ 등이라고 적는다. 굳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동료나 상사에게 구구절절 보고하지 않는다. 김씨는 “일하기 싫어 꾀병 부리는 것 같고 일일이 말하기도 구차해 메신저 대화명에 적어놓는다”며 “그럼 동료 대부분이 알게 되고 일하기도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메신저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과묵해진’ 사무실. 이젠 메신저 대화명에 숨은 뜻을 간파하는 ‘센스’가 직장생활 필수요소로 등장했다.

메신저에 대화상대로 등록된 사람이 로그인을 하면 상대방 컴퓨터에 대화명이 뜬다. 눈치 빠른 사람은 메신저 대화명만 보고도 상대방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한다. 오늘 누가 몇시에 출근했고 기분이 어떤지, 무슨 일이 있는지를 금세 알 수 있는 것이다.

몇글자만 적으면 되기 때문에 대화명을 통한 ‘대화’는 그만큼 효율적이다. 겸언쩍은 말도 쉽게 할 수 있다. 지난밤 회식때 술을 많이 먹고 직장 동료들 앞에서 실수했을 경우 메신저 대화명에 ‘미안합니다’라고만 적으면 동료들이 충분히 의미를 파악한다.

김씨는 “출근하고 메신저에 접속한 뒤 제일 먼저 동료와 지인의 대화명을 죽 훑어본다”며 “그러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이 보인다”고 귀띔했다. 조씨는 “메신저 대화명에는 회사생활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대화명은 이제 ‘처세술의 미학’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메신저 대화명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있다. 모 기업 대표인 최모(39)씨는 “요즘 젊은 사원들은 메신저 대화명에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잔뜩 적어 놓는다”며 “나에게 보라고 시위하는 듯해 메신저 대화명에 불필요한 말을 적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 2년차인 안모(28)씨도 “메신저로 업무를 처리하고 불평·불만도 은근히 드러내다보니 직장 상사 및 동료들과 직접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 같다”며 “눈치 빠르게 서로서로 ‘알아서 기는’ 분위기가 강해지는 듯 하다”고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민성 기자 me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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