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전반

‘새우가 고래 삼킨’ 정육각의 추락…제2의 티메프 사태, 예고된 재앙이었나

곡산 2025. 7. 21. 20:08
‘새우가 고래 삼킨’ 정육각의 추락…제2의 티메프 사태, 예고된 재앙이었나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07.21 15:39

무리한 인수금융·단기 성과 집착이 부른 유동성 위기…플랫폼 위기론 재점화

‘초신선’ 열풍을 일으키며 푸드테크의 미래로 주목받던 정육각이 결국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7월 4일 정육각과 자회사 초록마을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업계는 또다시 ‘플랫폼 위기론’으로 술렁이고 있다.

2022년 1월 연 매출 400억 원의 스타트업 정육각이 2000억 원대의 초록마을을 900억 원에 인수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해당 M&A는 IT 기술을 통한 유통 혁신이라는 청사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370억 원의 초단기 브릿지론을 포함한 막대한 외부 차입에 의존한 ‘레버리지 성장 전략’이었다. 이는 과거 티메프(티몬·위메프)가 출혈 경쟁으로 몸집을 불린 방식과 유사해 시작부터 ‘위험한 도박’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야심 찬 인수 당시의 포부와 달리 ‘IT와 오프라인의 결합’ 시너지는 요원했고, 오히려 2022년과 2023년 내내 양사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동반 부실의 늪에 빠졌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도 현금 흐름은 마비 상태에 이르렀고, 2023년 말 보유 현금은 6000여만 원에 불과했다. 결국 지난 7월 4일 기업회생을 신청하며 백기를 들었다. 이는 내실 없는 부채 기반 성장에 집착한 플랫폼 기업의 예고된 재앙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육각의 경영 실패는 ‘플랫폼의 실패’라는 비판을 넘어 그들을 믿고 유기농 농산물을 공급해 온 농식품 업계의 생존 기반을 흔들고 있다. 혁신의 그늘에 가려졌던 생산자들의 고통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번 사태의 진정한 피해자는 농민과 중소 식품업체라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시급하고 치명적인 문제는 ‘미지급 대금’이다. 기업회생절차가 개시되며 상거래 채권이 동결돼 수많은 협력업체들은 피해액만 최소 150억 원에 달하는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초록마을과 집중적으로 거래해 온 농가들의 피해는 막심하다. 이는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중소 농가의 연쇄 부도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대금 문제보다 더 막막한 것은 ‘판로 상실’이다. 까다로운 유기농 인증을 유지하며 소품종 대량생산을 해온 농가들은 하루아침에 주력 판매처를 잃었다. 일반 도매시장에서 제값을 받기 힘든 특수 품목들은 창고에 쌓인 채 썩어 나갈 수밖에 없다. 판로를 잃은 신선식품은 곧 ‘폐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피해는 농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초록마을 자체 브랜드(PB)로 우리밀 제품, 건강즙, 반찬류 등을 납품하던 중소 가공식품 업체들과 정육각에 축·수산 원물을 공급하던 업체들 역시 채권단에 포함돼 고통을 겪고 있다.

이번 사태가 단기적인 금전 피해를 넘어 국내 친환경 농식품 생태계의 근간인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점이 지적된다. 안정적인 판로를 약속한 플랫폼을 믿었던 생산자들은 이제 새로운 유통 플랫폼이나 기업과의 협업을 기피하는 보수적인 태도로 돌아설 수 있다. 혁신 농법이나 새로운 품종에 대한 도전 의지가 꺾이면서 친환경 농업 생태계 전반의 활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기업들은 상생과 혁신을 외치지만 정작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힘없는 생산자들”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의 무리한 확장에 제동을 걸고, 협력업체들의 대금을 보호할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육각 측은 이번 기업회생 신청이 사업 중단을 위한 것이 아닌 ‘선제적인 경영 정상화 조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법원 역시 신청 당일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회생절차 개시를 최대 3개월간 보류했다. 이는 채권자들과 원만히 협의해 정상적으로 영업을 유지할 기회를 준 것으로 회사의 회생 의지에 힘을 싣는 조치다.

절박함 속에서 상생을 위한 자발적인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당장 공급을 중단하면 초록마을의 회생 가능성이 낮아져 동결된 채권마저 돌려받기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납품업체와 전국 가맹점주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은 것이다. 일부 납품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후 납품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즉시 정산받는 조건으로 공급을 재개하며 매장 정상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가맹점주들 역시 본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정상 영업을 위해 분투하는 등 무너진 생태계를 되살리려는 상생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