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거플레이션·코코아 쇼크’…대체 원료에서 생존의 길을 찾다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06.24 07:58
알룰로스 시장 1억4770만 불…연간 14% 고성장
삼양사·대상 혁신 주도…CJ 스테비아 제품 강화
코코아 대안 ‘카로브’ 주목…로스팅·플레이버 R&D
신소재 개발·응용, 기업 생존 좌우…장기적 지원 필수
‘슈거플레이션(Sugarflation)’과 ‘코코아 쇼크(Cocoa Shock)’가 2025년 글로벌 식품업계를 동시에 강타하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가뭄과 병충해, 인도의 사탕수수 수출 제한 등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와 공급망 불안이 설탕과 코코아 국제가격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밀어 올렸다. 원가 압박이 한계에 다다르자 국내 식품업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대체 원료'에서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상황은 심각하다. 2025년 6월 기준 뉴욕 국제선물거래소(ICE)의 원당(설탕 원료) 선물 가격은 연초 대비 30% 이상 급등했으며, 코코아 선물 가격은 같은 기간 2배 이상 폭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단기적 수급 불균형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라고 진단한다. 주산지의 기후 변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엘니뇨와 라니냐가 반복되면서 작황 불안정성은 이제 상수가 됐다. 국내 식품기업들은 수입 원가 부담을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일부 전가하고 있지만, 소비 저항과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 속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는 역설적으로 대체 원료 시장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제로 슈거',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대체 원료는 이제 원가 절감 수단을 넘어, 제품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 중이다. 실제로 2024년 약 1억4770만 달러로 평가된 전 세계 알룰로스 시장은 2034년까지 연평균 14%의 견조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대체 감미료 시장은 '맛의 한계'를 기술로 극복하며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설탕은 알룰로스와 스테비아로 가장 많이 대체되고 있다. '무화과 등에 존재하는 희소당'으로 알려진 알룰로스는 '제로 칼로리'이면서도 설탕과 가장 유사한 단맛과 물성(점도, 보습성)을 구현해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감미료다. 초기에는 높은 생산 단가가 상용화의 걸림돌이었으나, 국내 효소기술 전문기업들이 독자적인 효소 기술로 전환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생산 단가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국내 식품 대기업인 대상과 삼양사다. 수요 급증에 발맞춰 삼양사는 2024년 9월 울산에 연산 1만3000톤 규모의 국내 최대 알룰로스 공장을 준공하며 생산 능력을 기존 대비 4배 이상 늘렸다. 대상 역시 군산 공장에 대규모 생산 설비를 구축하며 양강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러한 생산 기반 확대를 바탕으로 음료뿐만 아니라 소스, 빙과류, 제빵 분야까지 알룰로스의 적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삼양사의 알룰로스 관련 매출은 2022년 이미 100억 원을 돌파했으며, 롯데칠성음료, 롯데웰푸드 등 주요 기업에 원료를 공급하며 '제로' 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다.
반면 오랜 기간 사용돼 온 스테비아는 특유의 쓴 뒷맛이 단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효소 처리 스테비아' 기술을 통해 쓴맛을 내는 성분 대신, 깔끔한 단맛을 내는 '레바우디오사이드 M'의 순도를 높이는 기술이 상용화됐다. 알룰로스, 에리스리톨 등 다른 감미료와 최적의 비율로 혼합(블렌딩)하여 설탕에 가까운 맛을 내는 '프리믹스' 제품 개발도 활발하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실제 시장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스테비아 커피믹스 시장은 2022년 27억 원에서 2023년 91억 원으로 3배 이상 급증했으며, 관련 제품 수도 2년 새 18배 가까이 늘어났다. 과거 알룰로스 사업에서 철수했던 CJ제일제당 역시 스테비아를 중심으로 대체 감미료 B2B 사업을 강화하고 B2C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에 다시 뛰어들고 있다.
급등하는 코코아 가격의 대안으로는 '카로브(Carob)'가 재조명받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는 콩과 식물인 카로브는 △자연적인 단맛 보유(설탕 사용량 감소) △카페인 프리 △코코아와 유사한 색과 향 등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코코아의 하위 호환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초콜릿, 베이커리, 음료 파우더 등에서 코코아 함량을 줄이고 카로브를 일부 대체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특히 카페인에 민감한 어린이나 임산부를 타겟으로 한 '디카페인 초콜릿향' 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한 원료 수입사 관계자는 "카로브 특유의 풍미를 코코아와 유사하게 만드는 로스팅 기술과 플레이버 강화 기술에 대한 R&D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체 원료 시장의 미래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업계가 상용화를 확대하기 위해선 여전히 세 가지 큰 산을 넘어야 한다.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알룰로스, 효소 처리 스테비아 등 고기능성 대체 원료는 여전히 설탕보다 비싸다. 특히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선뜻 도입하기 부담스러운 가격대다. 맛과 물성의 완벽한 구현도 아직 미지수다. 제빵·제과에서 설탕은 단맛뿐만 아니라 보습, 갈변(마이야르 반응), 식감 형성 등 복합적인 역할을 한다. 대체 원료가 이러한 물리적 특성까지 100% 동일하게 구현하기는 아직 어렵다. 수많은 R&D 테스트를 통한 레시피 재개발이 필수적이다.
또한 '인공감미료' '대체재'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체 원료 식품 구매 경험은 있으나 여전히 첨가물에 대한 우려와 맛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소비자가 많다. 원료의 안전성과 장점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의 불안정성은 이제 일시적 현상이 아닌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이는 식품업계에 위기인 동시에, 혁신을 통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단기적인 원가 절감을 넘어, '더 건강하고, 더 지속가능한' 원료를 발굴하고 제품화하는 능력이 미래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의 R&D가 기존 원료 안에서 최고의 맛을 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원료를 탐색하고 이를 기존 제품에 최적으로 적용하는 '소재 개발 및 응용 R&D'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국산 대체 원료 소재 개발 및 기술 상용화를 위한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