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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종주국 민낯…중국산이 안방 점령하나

곡산 2025. 5. 28. 21:25

 

김치 종주국 민낯…중국산이 안방 점령하나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05.28 07:57

1분기 수입 4750만 불로 내수 39% 비중…수출 증가 불구 적자 확대
비슷한 맛에 싼 가격…외식 부문선 50% 넘어
무역 적자 말고도 종주국 자존심 걸린 문제
협회 자조금 확대 추진…품질검사비 지원 바라
“공정한 경쟁” 목소리도…비정상적 가격 의혹
 

한국 김치가 세계적으로 위상을 높이며 수출액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내수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중국산 김치의 수입량이 급증하며 김치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있는 것. 이는 한국이 '김치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으로 국내 김치 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올해 1분기 한국의 중국산 김치 수입액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3월까지 김치 수입액은 4756만 달러(약 670억 원)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의 4075만 달러보다 16.7% 증가한 수치로, 분기별 역대 최고 기록이다. 작년 김치 수입량도 전년(2023년)보다 8.7% 늘어난 31.2만톤이며, 수출 물량의 6.6배에 달한다. 수입 물량 중 99.98%가 중국산으로 집계됐으며, 국내 유통 김치 중 중국산 비중은 약 39%로 추정된다.

 

반면 K-푸드 열풍에 힘입어 한국 김치의 수출 실적은 눈부시다. 작년 김치 수출액은 1억6357만 달러로 전년 대비 5.1% 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해 매년 역대 최대 수출액을 경신하며 세계 시장에서 한국 김치의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K-푸드 열풍에 김치 수출은 사상 최대지만 저가 중국산 김치 수입이 급증해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있다. 가격 경쟁력에 밀린 국내 시장 위기에 업계는 자조금 확대, 정부 지원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수입액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김치 무역적자는 2629만 달러로 전년(798만 달러)보다 3배 가까이 확대됐고, 지난 2021년 중국의 '알몸 김치' 파동으로 일시적인 흑자를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김치 무역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로 들어오는 저가 중국산 김치의 물량이 훨씬 더 가파르게 늘면서 김치 무역수지는 오히려 적자 폭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이는 국내 김치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히고 있다.

 

중국산 김치가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가격 경쟁력’이다. 특히 식당이나 단체급식 등 B2B(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는 원가 절감을 위해 저렴한 중국산 김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김치협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상품김치 시장에서 수입산 김치는 외식업체에 17만8000톤이 공급돼 외식업체 총 김치 수요량 35만5000톤의 50%를 이미 넘어섰다. 국내산 배추, 고춧가루 등 원재료 가격이 기상 이변 등으로 급등할 때마다 국산 김치 가격은 인상 압박을 받는 반면, 상대적으로 중국산 김치는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며 공급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배추 생산량이 급감하거나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에는 중국산 김치 수입량이 더욱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슷한 품질이라면 더 저렴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로, 중국산 김치는 이러한 시장의 수요를 효과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문제는 상당수 소비자가 국산 김치와 중국산 김치의 맛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거나 가격 차이를 상쇄할 만큼의 압도적인 맛의 우위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비싼 국산 김치를 고집할 만큼 맛에서 큰 차이를 모르겠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국내 김치 산업에 가장 큰 위협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가격이라는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국산 프리미엄'은 힘을 잃기 쉽고, 이는 중국산 김치의 시장 점유율 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배추 등 원료 수급의 불안과 계속되는 시장 잠식에 김치 제조업체들의 경영난은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 앞에 국내 김치 제조업체들은 단순한 R&D를 넘어선 보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과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 시작점은 업계 스스로의 자구 노력 기반인 자조금 규모 확대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한민국김치협회는 자조금 규모 확대를 통해 다양한 자구책을 실행할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자조금이 확대되고 기능이 강화된다면 정부 및 지자체 지원과 연계해 다음과 같은 핵심 사업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자조금 규모가 커져야 바우처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며 "회원사들의 공동구매 등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을 자조금으로 적립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김치 바우처 사업' 도입이 꼽힌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시행 중인 농식품 바우처 사업에서 김치는 가공식품이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협회는 지자체 지원과 자조금을 통한 바우처 사업을 별도 신규사업으로 구축, 외식업체에 국산 김치의 소비를 지원하면 취약계층의 국산 김치 접근성을 강화하고, 중소 김치 제조업체들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현재 자조금에서 일부 부담하고 있는 '김치 품질안전 검사비용'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받는 것이다. 소비자 신뢰와 직결되는 김치의 안전성 확보는 국내 김치 산업의 중요한 과제이지만 영세한 중소업체들에게는 품질 및 안전 검사에 드는 비용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검사비 지원은 개별 업체가 수행하는 자가품질검사, HACCP 운영 관련 검사 등 필수적인 항목에 집중될 수 있으며, 이는 국산 김치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공고히 하고 국내 김치 산업 생태계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소업체들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돕는 중요한 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한편 이러한 내부적인 노력과 지원책 마련과 함께 외부적으로는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목소리도 높다. 특히 중국산 김치의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에 대한 의혹이 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현지 인건비도 많이 올랐는데, 수입되는 김치 가격이 배춧값보다도 싼 경우가 있다"며 "제대로 된 통관 절차를 거쳐 제대로 된 가격을 갖고 오면 국산 김치도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지금 시장은 왜곡된 부분이 있다. 이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나 통관상의 허점 때문일 수 있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 관계자는 "김치 제조업체가 살아야 배추, 무, 고추 등을 생산하는 국내 농가도 살 수 있다" 며 "단순한 식품 산업을 넘어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인식 하에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