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만두 [중앙일보]
중국 명나라 말기의 농민 반란 지도자였던 리쯔청(李自成·1606~1645)은 비운의 황제였다.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대순국(大順國)을 세워 황제로 즉위하긴 했지만 베이징(北京)성 입성 후 불과 40일 만에 청나라 군사에 패해 천하를 내놨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단명 원인으로 ‘만두’가 거론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소를 넣지 않고 찐 떡을 만터우(饅頭)라 하고, 한국에서 흔히 ‘만두’로 여기는 물만두같이 고기 속이 들어간 것은 자오쯔(餃子)라 한다. 근데 자오쯔의 발음이 ‘交子(자식을 내려주시다)’와 같아 만두는 옛날부터 길한 음식으로 여겨져 왔다. 交에는 ‘오래 지속하다’ ‘영원토록’이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중국 황제들은 왕조와 사직이 영속하길 기원하며 설날인 춘절에만 아껴서 만두를 먹었다. 그런데 리쯔청은 이 불문율을 어기고 즉위 후 매일같이 만두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길조가 떨어져 왕조가 오래가지 못했다는 재미난 설명이다.
만두의 역사는 길다. 기원전 6세기께 중국 춘추시대의 유적에서도 만두를 먹었던 흔적이 발견됐으니 말이다. 만두는 원래 중국의 북방 화베이(華北)지방 요리다. 딤섬(点心)의 일종인 찐만두를 먹는 건 홍콩 등 화난(華南)지방이다.
한편 일본에선 만두를 ‘餃子’로 쓰고 ‘교자’라고 읽는다. 중국 산둥(山東)성의 사투리 발음인 ‘갸오즈’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한국의 ‘교자’(교자상 음식)의 음이 그대로 건너왔다는 설이 엇갈린다. 어찌 됐건 일본인의 식생활에 만두는 절대적 존재다. 가정이나 중국음식점뿐 아니라 술집·라면 가게·편의점에서도 필수 메뉴다. 일본식 만두는 물로 쪄낸 후 밑면만 바삭하게 구워내, 피가 말랑말랑한 군만두다.
중국산 만두를 수입해 먹은 일본인 1000여 명이 구토와 복통 증세를 호소하고 나서며 일본 전국이 난리다. 일부 만두에선 살충제 성분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우연의 일치인지 문제의 만두가 제조된 곳은 만두의 본고향인 화베이 지방의 허베이(河北)성이다. 물만두를 즐겨 먹는 이 지방은 옛날부터 “군만두는 원래 먹다 남은 만두를 모아서 구워 먹는 것”이라고 얕봐 왔다. 이렇게 만두의 ‘격’까지 따지던 원조로서 이번 사건이 중국의 책임으로 드러나면 자존심 구길 일이다. 물론 ‘중국 내 제조과정에서 전혀 하자가 없었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자존심도 좋고, 물만두도 좋고, 군만두도 좋으니 안전하기만 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김현기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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